‘이 또한 지나가리라’

정명희

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까만 밤, 선별진료소 문을 나서 병원 마당에 내려섰다. 달은 보이지 않고 늘어선 방송국 로고가 박힌 차량들 사이로 밤하늘은 어느 새 푸르스름한 빛을 띠고 있다. 밤 촬영에 필요하여 세워둔 것일까. 커다랗고 밝은 조명등 불빛에 비친 나뭇가지에는 어느새 노르스름한 새순들이 돋아있다. 가까이 다가서서 보니 산수유 꽃이다. 어느새 봄은 소리 없이 다가와 살며시 꽃을 피우며 묻고 있다, 건강하시지요? 얼어붙어 걱정으로 가득한 우리 마음을 위로라도 하려는 듯이.

갑자기 불어나기 시작한 코로나19 의심환자들을 우선으로 가리기 위해 선별진료소를 두 곳으로 늘려 24시간 쉼 없이 전 진료과장이 순번제로 가동하는 체제로 돌입하였다. 며칠 사이 너무도 긴급하게 돌아가는 상황이라 입원한 환자들을 급히 다른 곳으로 보내고 병동을 통째로 비워야만 했다. 더러는 집에 가서 조리하면서 지내다가 이런 사태가 마무리되면 다시 오리라 다짐하면서 퇴원하였다. 일시에 병동을 비우고 시설을 재정비하고 환풍구를 막아 격리시설을 갖추느라 전 직원이 동원되어 땀범벅이 되어 응급사태에 대처하기 위한 상황으로 돌아간다. 의료진을 믿고 이제껏 장기 치료받던 환자들은 혹여 퇴원하고 집에서 다시 아프면 어떡하느냐며 걱정한다. 코로나19확진 환자가 입원한 병원에 있었다고 하면 다른 병원에서 받아주기나 하겠느냐며 앞일이 태산이라며 우울해한다. 긴급 상황이 마무리 되면 언제든 다시 찾아오라며 마스크 낀 얼굴로 눈인사를 건네며 전송하였다. 그렇게 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지만, 정말 가슴 아프다. 차마 끝까지 마주 볼 수가 없어 손을 흔들며 건강 잘 챙기시라 인사하였다. 우리 환자들이 모두 어디에서든지 치료 잘 받고 언제까지나 건강하기를 비는 마음으로 그믐 밤 하늘을 하염없이 올려다본다.

세 자리 숫자를 훌쩍 넘긴 접수번호를 받아들고 쓸쓸한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이들, 떨리는 몸에 마음은 얼마나 쑤시고 아릴까. 모르는 사이 확진자와 접촉하게 되어 검사에서 혹시나 양성으로 나오면 어쩌나 하는 마음인지 얼굴엔 수심이 가득하다. 밤이 깊어 갈수록 대기는 차갑게 식어 입김이 하얗게 묻어난다. 우주복처럼 생긴 레벨 D 방호복을 입고 눈에는 고글을 쓰고 마스크를 코가 아프도록 눌러서 끼고서 장갑을 낀 채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진료기록을 입력하고 검사 처방을 내기를 반복하다보니 어느 순간 대기 순번을 들고 오는 이의 기록이 아무리 찾아 봐도 전산시스템에는 이름조차 뜨지 않는다. 웬일인가 싶어서 접수에 확인해보니 조회 날짜를 바꾸어야 된다는 것이 아닌가. 쉴 틈 없이 문진하고 처방을 내느라 어느새 날짜 변경선을 넘듯, 시각은 자정을 넘어 새날이 되었던가 보다.

차가운 겨울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따스했던 날들은 세상인심에 저절로 식어 가는가. 다시 얼어붙을 듯한 바람이 불어댄다. 겨울이 다시 찾아올 것처럼. 문을 여닫을 때마다 틈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이 참으로 차갑다. 진료소를 찾은 이들의 안경은 뿌옇게 안개가 낀 듯 눈만 빠끔하게 보인다. 새벽까지 두려운 마음으로 무던히도 기다렸을 가슴 아픈 이들, 얼른 검사받고 괜찮은 결과를 얻어 다시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라며 정성스레 문진한다.

이럴 때 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무엇일까. 바로 긍정의 주문이지 않겠는가. 라이온 킹의 그 말. 하쿠나~! 마타타~! “문제없어요, 다 잘 될 거에요.” 이 상황 어쩌겠는가. 내내 걱정하기보다는 우선 급한 일부터 차근차근 처리해가면서 긴박한 위기를 잘 극복하여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하지 않겠는가. 발열체크에서 신호만 울려도 푸드 코트 안으로도 못 들어가고 선별 진료소 가서 확인해오라고 할 정도로 극도의 공포로 얼어붙지 말고 차분하게 대응하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마음을 크게 먹고 건강을 잘 챙기면서 모두가 힘을 합치고 똘똘 뭉쳐서 이 상황을 무사히 넘겨야 한다는 목표, 그리하여 환자들이 원래 자주 가던 병원을 다시 찾게 되어 믿고 의지하던 의료진에게 진료를 받으면 신뢰가 더 깊어지지 않을까 싶다. 우리 모두 서로 힘을 합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면 어려움을 이겨내고 승리의 기쁨을 다함께 맛보는 날이 오지 않겠는가. 가장 기본적인 것이 어쩌면 가장 최선의 예방책일지 모르겠다. 평소에도 손을 자주자주 또 바르게 30초 이상 꼼꼼하게 잘 씻고, 타인을 위해 기침이나 재채기할 때는 꼭 입과 코를 휴지나 옷소매로 가리는 개인위생을 철저히 지킨다면 이까짓 바이러스는 언젠가는 스스로 우리 곁을 떠나게 될 것이니. 두터운 눈밭을 뚫고 화사하게 피어나는 복수초(福壽草)처럼 우리도 서로에게 병이 아닌 복을 주고받는 관계가 되기를 소망한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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