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진짜 기생충인가?

박운석

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짜파구리(짜파게티+너구리)를 먹었다. 흔히 먹는 음식이 아님에도 최근 한 달 사이 두 번이나 먹었으니 자주 먹은 셈이다. 첫 번째는 설 연휴 때 20대 조카들이 해 먹는 라면요리를 얻어먹은 것이었다. 명절 음식에 조금은 느끼함을 느끼고 있던 설 다음날, 조카들이 나서서 라면을 사오고 자기식대로 요리를 했다. 쏭쏭 썬 대파를 고명으로 얹은 걸 보니 나름대로의 레시피로 몇 번 만들어본 솜씨인 듯 했다.

두 번째는 영화 ‘기생충’이 미국 최고 영화상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4관왕에 오른 후였다. 이 영화에서는 부잣집 박사장네가 짜파구리에 한우 채끝살을 넣어 먹는 장면이 나온다. 아카데미 4관왕 효과인지 짜파구리는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화제몰이를 하고 있다. 실제로 구글에서는 시상식 후 짜파구리(영화 자막 으로는 ‘Ram-don’) 조리법 검색 양이 400% 이상 늘기도 했다. 국내외 ‘짜파구리’ 열풍에 참을 수가 없었다. 동네 마트에서 두 가지 라면을 사와서 설 연휴 때 먹었던 기억을 더듬어 그대로 만들어 먹었다.

희한하게도 맛이 달랐다. 똑같은 종류의 라면에 똑같은 분말스프인데…. 아마 두 번째 먹을 땐 영화 기생충을 떠올리며 이것저것 생각이 많아서 그렇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영화 기생충은 우리나라 사회의 계층갈등과 불평등, 양극화 현상을 다룬 영화다. 감독은 의도한 것일까? 짜파구리는 두 개의 라면을 소비자들이 직접 섞어서 만들어 먹는 요리다. 요즘 유행어로 말하면 ‘꿀조합’이다. 두 개의 라면을 섞어 하나로 버무려 새로운 맛을 내듯 양극단으로 치닫는 계층갈등, 이념갈등을 하나로 잘 섞어 꿀조합을 만들어내라는 게 감독의 의도 아니었을까.

사실 영화 속 짜파구리가 우리 사회의 계층문제를 비유한 게 아니냐는 해석은 기생충 개봉 당시부터 있었던 이야기다. 두 개의 라면은 반지하의 두 가족을 빗댄 것이고 토핑으로 얹은 한우 채끝살은 부자 가족을 의미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그럴듯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짜파구리를 먹으며 온갖 상상을 하는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있다. 누가 진짜 기생충인가 하는 문제다. 영화는 누가 기생충인지 명확하게 이야기하진 않는다. 다만 가난한 사람들이 기생하는 걸로 묘사되어 있긴 하다. 학력을 속인 김씨 집안 아들과 딸은 박사장 집에 영어와 미술 과외교사가 되어 기생한다. 김씨 부부는 운전기사와 가정부로 들어가 들어앉은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기생충이 이들 뿐일까. 부자인 박씨네는 운전부터 시작해 집안일, 일상생활 거의 모두를 다른 사람의 노동력에 기생하고 있다. 물론 대가를 지불할 능력이 있어서다.

한국미디어문화학회가 최근 펴낸 평론서 ‘천만영화를 해부하다-기생충’(출판사 연극과인간)에서 김형래 교수는 “영화는 서로 공생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듯하다”고 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생하기 때문에 누가 기생충인지 명확하지 않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서로에게 기생한다는 것은 결국 공생하고 있다는 말이다.

영화 ‘기생충’ 열풍에 기생하려는 정치인들이 볼썽사나운 것도 이 때문이다. 4월 총선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홍보전략을 위해 어떻게든 영화 기생충과 엮어보려는 시도가 안쓰럽다. 애초부터 공생의 의도가 없어서 더 안타깝다.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등 4개 부문을 휩쓴 건 전 세계가 안고 있는 계층갈등이나 빈부간의 격차, 불평등, 사회부조리 등을 다뤄서다. 그래서 세계인들의 공감을 이끌어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영화 기생충이 말하고자 했던 양극화 등의 메세지엔 입을 닫고 단지 총선용 마케팅에만 신경을 쓰는 정치권이 보기 좋을 리 만무하다.

우리 사회가 불평등한 건 현실이다. 영화에서처럼 퀴퀴한 반지하에 살며 온 세상을 고루 비춘다는 햇빛마저 평등하게 소유하지 못하는 세상 아닌가. 지금 정치권은 영화 기생충에 기생해 이득을 보려고 할 때가 아니다. 영화가 이야기하는 사회의 양극화, 불평등, 불합리, 부조리에 대한 적극적인 논의와 대책을 내놓아야 할 때 아닌가. 단순히 영화의 인기에 숟가락만 얹으려는 건 또 다른 기생의 한 형태일 뿐이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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