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농 현장을 가다 (55) 칠곡 보람농장

발행일 2020-02-12 15:00:0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30년 전에 억대 농민에 등극한 농사의 달인

3천㎡의 오이재배로 억대 소득을 올리는 농사의 고수

윤주섭 대표가 수확한 오이 모양과 색깔, 크기 등 품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나는 언제쯤 억대 연봉을 받을까.”

억대 연봉은 셀러리맨의 로망이다. 모두가 선망하는 억대 연봉자는 2017년 기준 72만 명이다. 셀러리맨들은 봉급명세서에 찍히는 9자리 숫자를 위해 앞만 보고 달린다.

농업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18년 기준 억대 농민은 3만6천여 명이다. 전체 농민의 3.6%에 해당한다. 우리나라 농가소득 목표가 5천만 원이다. 올해 추정 농가소득이 4천335만 원인 점과 비교하면 꿈의 소득이다.

윤주섭 대표가 운반기를 활용해 만든 이동식 의자에 앉아 오이를 수확하고 있다. 이동식 의자에 앉아서 수확 작업 노동력이 크게 줄어든다.
꿈의 소득인 억대 농민의 자리에 이미 30년 전에 올라앉은 강소농이 있다. 칠곡군에서 오이를 재배하는 보람농장 윤주섭(65)대표와 부인 배옥련(61)씨가 주인공이다. 윤 대표는 3천㎡의 연동하우스에서 오이를 재배해 연간 1억3천만 원의 소득을 올린다. 크지 않은 면적에서 고소득을 올리는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재배기술과 경영비 절감”이라는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농업을 천직으로 삼은 오이 농사 달인

윤 대표는 평생을 농촌에서 농사를 짓고 살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한때 농기계 수리점을 운영했고, 소 중개인으로도 활동했었다. 1986년부터는 오이 농사에 전념했다. 농사 이력이 30년을 훌쩍 넘겼다.

윤주섭 대표가 농장의 오이작황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연간 2기작으로 오이를 재배해 30년째 억대소득을 올리고 있다.
지금 윤 대표에게는 많은 수식어가 붙어 있다. 농사의 달인, 농사의 신, 억대농부, 맥가이버 등 수없이 많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해 얻는 농사 기술과 맞춤형 농기구 제작으로 노동력을 줄이고 농사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나간 결과다. 그 덕분에 30년 전인 1990년에 모든 농민의 로망인 억대농민의 꿈을 이루었다.

방금 수확한 오이를 들고 있는 윤주섭 대표와 부인 배옥련씨.
이후 한 번도 억대 밑으로 소득이 내려간 적이 없다. 농사 경력 10년 만에 농협중앙회에서 주는 ‘새농민상’을 받는 영광도 누렸다. 억대농민의 조기 등극과 오이작목반 자재 공동구매와 출하, 집하장 설치 등의 공로를 인정받았다.

오이를 수확하고 있는 윤주섭 대표와 부인 배옥련씨.
이보다도 농사의 달인이라는 평을 받는 이유는 오이에 대한 일편단심이었을 것이다. 언제나 오이만을 생각하고 공부하면서 집중한다. 심지어는 꿈속에서도 오이를 기른다고 할 정도였다.

◆나만의 기술력으로 승부

보람농장이 있는 칠곡 낙동강변은 오이 재배의 최적지다. 비옥한 사양토를 기반으로 풍부한 일조량과 지하수, 겨울철 따뜻한 기온 등 오이재배를 위한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이다.

윤 대표가 오이재배 달인이라는 말을 듣는 것은 좋은 자연환경과 특별한 재배기술이 보태진 결과다. 오늘날 전국에서 알아주는 ‘금남 오이’의 명성을 굳힌 것도 이런 좋은 환경과 윤 대표를 비롯한 작목반원들의 노력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싱싱하게 자라고 있는 보람농장 오이.
하우스 내 오이 이랑에는 진한 녹색의 오이 줄기가 길게 늘어져 있다. 내림 재배라는 특별한 재배방식 때문이다. 넝쿨식물인 오이의 특성을 이용한 방식이다. 오이가 자라는 과정에 밑에서부터 오이를 수확하고 잎을 제거하면서 남은 줄기를 아래쪽으로 내리면서 옆으로 이동시키는 방식이다. 이때 위쪽의 줄기는 계속 자라지만 유인 끈과 집게를 이용해 끝 부분의 높이를 맞춘다. 일반적인 상부적심방식(순지르기)과는 다르다.

항상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고 있는 보람농장, 바닥에 볏짚을 깔아 습도 유지와 잡초발생을 억제하는 효과를 동시에 얻고 있다.
내림 재배를 하면 수확기간이 4∼5개월 정도로 일반 재배방식보다 두 배 이상 길다. 수확기간이 늘어나는 만큼 수확량이 늘어나고 소득도 높아진다. 보온을 위해 천장에도 이중 수평 커튼을 설치해 온도조절을 쉽게 했다. 환기창도 상·하에 각각 설치해 환기과정에 온도변화에 따른 작물의 스트레스를 감소시켜 병 발생을 억제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오이 재배의 환경과 품지관리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있는 윤주섭 대표(왼쪽)와 이준화 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전문위원.
이 밖에도 꽃 따기 재배를 통해 곰팡이 발생을 줄이고, 과육을 단단하게 해 상품성을 높이는 등 자신만의 기술력으로 고수익을 올리고 있다.

◆맞춤형 농기구 제작으로 편한 농사

윤 대표는 맥가이버다. 그의 손을 거치면 모든 것이 재탄생한다. 수많은 농기구를 직접 만든다. 농장 일손을 줄이기 위한 것이다. 일손이 줄어드는 만큼 경영비도 준다.

윤주섭 대표가 30년째 사용하고 있는 온풍기 사용실태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정기적인 점검과 정비를 통해 농기계 수명을 획기적으로 연장시켜 경영비를 절감한다.
전동 드릴을 이용한 식혈기((植穴機), 무인분무기 호스 도르래, 예취기 고정 고리, 운반기, 외발 관리기 롤러 등 수없이 많다. 정작 자신도 얼마나 많은 농기구를 만들었는지 모른다. 모두가 각종 농기구의 기능을 보강하거나 재활용 자재를 이용한 맞춤형 농기구다.

어느 농가에나 있는 전동 드릴을 활용해 만든 식혈기는 나무나 모종을 심을 때 구덩이를 뚫는 농기구다. 이걸 이용하면 하루에 7천 개를 뚫을 수 있다. 5~6명이 해야 할 작업량을 혼자서 할 수 있을 정도로 성능이 좋다.

하우스 운반기와 경합한 작업용 의자. 프라스틱 끈을 활용해 만든 것으로 통풍이 잘돼 오랜 시간 앉아서 작업을 해도 땀이 차지 않는다.
예취기 고정 고리는 등받이와 작업 봉을 연결한 것이다. 하루 종일 풀베기 작업을 해도 피로함을 모를 정도로 작업이 편하다. 부부는 3천㎡의 하우스에서 2기작으로 오이를 재배하면서도 외부 인력을 전혀 쓰지 않는다. 이것은 맞춤형 농기구를 이용해 노동력을 획기적으로 줄인 결과다.

이뿐만 아니다. 무슨 기계든지 윤 대표의 손에 들어오면 20년 이상 사용한다. 30년이 된 관리기와 온풍기는 아직도 힘차게 돌아간다. 언제나 점검과 정비가 일상화됐기 때문이다.

오이 재배 소득률이 80%에 이를 정도로 높다. 2017년 기준 오이촉성재배 평균 소득률이 46.8%인 것과 비교하면 얼마나 경영비를 절감했는지를 알 수 있다. 국내 굴지의 농기계회사 직원들도 수시로 농장을 방문해 아이디어를 구할 정도다.

◆토양관리는 농부의 절대 과제

하우스 오이는 1년에 두 번 재배하는 2기작이다. 봄 재배는 1월에 모종을 심어 2월 말부터 6~7월까지 수확한다. 가을 재배는 9월에 심어 10월 말에서 다음해 1월 말까지 수확한다. 그렇다 보니 7~8월 2개월 동안은 쉬는 기간이다. 땅의 입장에서 보면 쉬는 기간이면서 땅심(지력)을 보충할 수 있는 기간이다. 땅이 건강하고 힘이 있어야 작물이 잘 자랄 수 있다는 것이 윤 대표의 생각이다.

농사일이 없는 날에는 부부가 함께 즐기기 위해 구입한 대형 비이크. 농사꾼도 즐길권리가 있다고 윤주섭 대표는 말한다.
그래서일까 유독 토양관리에 신경을 쓴다. 휴식기인 7~8월에는 땅을 깊이 갈고 물을 가둬 그동안 땅에 쌓인 염류 성분을 제거한다. 쌓인 염류를 제거해 건강한 토양을 만드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노지재배를 하면 빗물 등에 의해 염류성분이 씻겨나가지만 하우스 재배에서는 그대로 쌓이기 때문에 연작장애를 많이 일으킨다. 그래서 인위적인 관수 작업으로 염류를 제거하는 것이다.

땅심을 돋우는 작업도 특별하다. 오이 수확이 끝나면 싹을 틔운 볍씨를 뿌려서 벼를 키운다. 키운 벼는 가을 재배 직전인 9월께 예취기를 활용해 3단으로 절단한 후 다시 갈아엎는다. 물을 가둔 상태에서 벼를 재배함으로써 토양에 쌓인 염류도 제거하고 퇴비로 활용해 땅심도 높이는 것이다.

봄 재배가 일찍 마치면 쌀을 수확할 정도로 자라지만 과감하게 포기하고 퇴비로 사용한다. 땅에서 나온 것을 땅으로 돌려준다는 생각에서다. 오이를 심은 후에는 고랑에 볏짚을 깔아 잡초발생을 막으면서 습도조절이 되도록 한다. 물론 썩으면 퇴비가 되기때문에 3중의 효과를 거둔다.

◆즐기면서 농사짓는 욜로족

‘농사꾼이라고 해서 일만 하라는 법은 없다’는 것이 윤 대표의 주장이다. 일할 때 열심히 하고, 쉴 때는 여유롭게 쉰다. 계절적으로 노동력이 집중되는 농촌에서는 어려운 일이지만 워라벨(일과 생활의 균형)을 실천한다.

규모를 확대해 소득을 높이라는 주변 권유도 사양하고 현재의 규모에 만족한다. 1t 트럭에 탑재하는 캠핑카를 제작해 가족들과 함께 캠핑을 떠난다. 1천300㏄ 대형 바이크를 구입해 부인과 함께 거리를 질주하고, 한적한 시골길에서 드라이브도 즐긴다.

집 앞에는 소나무를 심고 잔디를 심어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었다. 간혹 주변에서 농사지을 땅에 정원을 만든다고 질책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 농민도 즐길 권리가 있다. 30년 전에 이미 억대 농민의 반열에 오른 농사의 고수이자 달인이면서도, 여유를 가지고 현재의 생활을 즐기는 욜로족(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고 소비하는 태도)이라고 할 수 있다.

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

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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