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논단…이번엔 프레임부터 바꾸자

발행일 2020-02-04 15:31:54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이번엔 프레임부터 바꾸자

박운석

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몇 년 전 오랫동안 타던 자동차를 바꿨을 때의 일이다. 어떤 자동차를 고를까 고심 끝에 한 자동차 모델을 선택하고 계약을 했다. 새 차를 기다리는 며칠 동안 희한한 경험을 했다. 도로에 평소에 많이 보이지 않던 그 모델의 자동차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니는 것이었다. 다른 자동차보다 유독 계약한 모델의 자동차만 강렬하게 눈에 들어왔다. 분명 며칠 사이에 그 자동차만 많이 팔린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또 다른 경험도 있다. 얼마 전 속이 좋지 않아 병원을 다녀온 이후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약을 복용하며 이틀간 멀건 흰죽을 먹고 지낼 때였다. 힘없이 TV를 보고 있는데 웬 먹방(먹는 방송)이 그렇게나 많은지…. 채널을 돌려도 먹방 일색이었다. 드라마에서도, 오락프로그램에서도, 예능프로그램에서도 맛있게 먹는 출연자들의 모습만 비췄다.

물론 이런 먹방도 다른 날보다 그날 하루만 더 방영된 것도 아닐 것이었다.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나를 바꾸는 심리학의 지혜, 프레임’이라는 책에서 이 현상은 배가 고팠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세상을 온통 ‘음식 프레임’으로만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거리의 자동차도, 먹방도 그날 갑자기 많아진 건 아니었다. 결국은 세상을 보는 나의 관점이 바뀐 것이었다. 나의 프레임이 바뀌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인 것뿐이었다.

프레임(frame)은 틀이다. 고정관념처럼 박혀버린 생각의 틀이다. 그래서 한번 만들어진 프레임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여러 프레임 중에서도 가장 걱정되는 건 자기중심적 프레임이다. 최인철 교수는 이를 경계한다.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프레임을 통해서 채색되고 왜곡된 세상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며,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하는 채색된 세상은 보수와 진보 프레임이 명확한 정치권이 대표적이다. 정치인들은 자기들의 잇속을 챙기는 하나의 수단으로 ‘보수 대 진보’라는 프레임을 사용한다.

어차피 정치는 프레임 싸움이기는 하다. 때문에 기를 쓰고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어 상대에게 불리한 프레임을 뒤집어씌우려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경험한 바 있다. ‘친일 프레임’ 대 ‘종북 프레임’이다.

지난 해 일본의 무역보복이 시작됐을 때 정부·여당은 반일을 내세우며 친일 프레임으로 야당을 비판했다. 보수진영인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조금이라도 일본에 대해 우호적인 제스처를 취하면 어김없이 ‘친일’이라는 덫에 걸려들었다. 야당은 문재인정부의 대북정책을 퍼주기라 규정하며 종북 프레임으로 공격해 왔다. 진보진영에서 북한을 도와야한다는 뜻만 내비쳐도 바로 ‘종북’이라는 프레임에 갇혔다.

21대 총선이 7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총선도 프레임 전쟁에서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여전히 보수 진영에서는 종북 프레임을, 진보 진영에서는 친일 프레임을 휘두를 것이다. 하지만 분열을 조장하는 것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갈등을 조장하고 나의 편을 결집시켜야 더 쉽게 표를 모을 수 있어서다. 적과 동지를 명확하게 구분해주는 것이 친일 프레임이고 종북 프레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프레임이 두드러질수록 선거가 끝난 이후 부작용은 클 수밖에 없다.

이제는 리프레임을 고민할 시기다. 최인철 교수는 우리의 착각과 오류, 오만과 편견, 실수와 오해는 프레임 때문에 생겨난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중심적 프레임을 깨고 나오는 용기, 편견과 오해를 인정하는 지혜를 발휘해 프레임을 리프레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신년 초 한 일간지의 새해특집 여론조사에서 의미 있는 결과가 나왔다. 이 조사에서 ‘친일이나 종북과 같은 이념논리로 정치권이 공방을 펼치는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하느냐’는 질문에 78.8%가 공감한다고 답한 것이다.

이제는 프레임을 바꿔야 한다. 이번 총선에서는 친일과 종북 프레임이 아니라 좀 더 건설적이고 공감 가는 프레임을 들고 나와야 할 것이다. 국민들은 바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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