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시편2―뼉다귀집/ 김신용

뼉다귀집을 아시는지요/ 지금은 헐리고 없어진 양동골목에 있었지요/ 구정물이 뚝뚝 듣는 주인 할머니는/ 새벽이면 남대문 시장바닥에서 주워온/ 돼지뼈를 고아서 술국밥으로 파는 술집이었지요/ (중략)/ 날품팔이지게꾼부랑자쪼록꾼뚜쟁이시라이꾼날라리똥치꼬지꾼/ 오로지 몸을 버려야 오늘을 살아남을 그런 사람들에게/ 몸 보하는 디는 요 궁물이 제일이랑께 하며/ 언제나 반겨 맞아주는 할머니를 보면요/ (중략)/ 뼉다귀 하나로 펄펄 끓는 국물 속에 얼마나/ 분신하고 싶었던지, 지금은 힐튼 호텔의 휘황한 불빛이/ 머큐롬처럼 쏟아져 내리고, 포크레인이 환부를 긁어내고/ 거기 균처럼 꿈틀거리던 사람들 뿔뿔이 흩어졌지만/ 그러나 사라지지 않은 어둠 속, 이 땅/ 어디엔가 반드시 살아있을 양동의/ 그 뼉다귀집을 아시는지요

- 무크지 『현대시사상』 1집(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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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의 전력만큼 ‘버라이어티’한 직업군이 또 있을까만 1988년 김신용 시인의 등장은 문단에서도 가히 충격적이었다. 열여섯 나이에 부랑을 시작하여 서울역 지하도와 대합실이 숙소이자 놀이터였던 그는 동냥은 물론 끼니를 해결하고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매혈과 각종 ‘치기’범죄도 불사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풀빵구리에 쥐 드나들 듯 감방과 양동을 오가면서 별을 5개나 달았다. 그러는 동안 장르불문 그가 감옥에서 읽어치운 엄청난 독서량은 놀라울 정도였고, 그 독서와 사유를 바탕으로 마흔넷에 ‘陽洞詩篇’을 발표하며 시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 시는 지금은 도려내진 서울의 환부 ‘양동’에서 화염처럼 살았던 지게꾼출신이 무림고수로의 등극을 예고하며 내뽑은 칼날 위 섬광 같은 작품이라 하겠다. ‘陽洞’은 경주 양동마을과 동네 이름은 같으나 그 속살은 천양지차이로 과거 서울역 앞 대우빌딩에 가려진 슬럼가를 말한다. 바깥에서 보면 치부이지만 도시의 부랑자, 똥치(창녀), 쪼록꾼(매혈자), 일용잡부, 마약중독자, 양아치 등 밑바닥 인생의 총집결지이며 본산이었다. ‘오로지 몸을 버려야 오늘을 살아남을 그런 사람들’ 하루하루가 고단한 인생들에게 뼈다귀 국물은 거의 유일한 보양식이다.

시인은 그걸 안주삼아 작살주(막걸리에 소주를 탄 것) 몇 잔 들이키면 내장 곳곳이 가로등 켠 것처럼 환해지고 마침내 똥구멍 끝이 노글노글해지면 ‘씨부랑탕’ 욕이 나오고 노래가 나오고 그런 다음에 시가 나온다고 했다. 그렇게 시가 그에게로 가서 그를 살려냈다. 문학은 선택된 재능을 지녔거나 가방끈 긴 사람들의 전유물은 아니다. 돈과 출세를 위해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가라는 자기 자신에 대한 진실한 물음만 있으면 누구라도 들이댈 수 있는 장르이다. 인간과 자연, 사물과 현상에 대한 끊임없는 회의와 성찰의 자세만 가진다면.

‘톰 소여의 모험’의 마크 트웨인은 초등학교만 나왔고 헤밍웨이는 시골의 평범한 고등학교 출신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오랫동안 인생 밑바닥을 헤매고 다닌 알콜 중독자였다. 불우하고 험한 생을 살았던 시인은 말할 수 없이 많다. 다만 그들의 공통점은 세상을 흐물흐물 순응만하지 않고 뜨겁게 살았다는 점이다. 김신용 시인 역시 둘레의 삶을 뜨겁게 연민하고 처절하게 번민하였다. 그렇게 빚어진 시이기에 시인의 체험 공간을 한번 가보지 않고 ‘뼉다귀집’국물을 마셔보지 않아도 그 연민을 공감할 수 있는 것이리라.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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