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이 통하는 한 해의 ‘덕담’

발행일 2020-01-20 16:00:55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상식이 통하는 한 해의 ‘덕담’

김창원

독자여론부장

몇일 후면 다시 맞는 설이다. 신정은 ‘왜놈 설’이라는 오명으로 국민 대다수는 구정을 쇠고 있다. 일제 강점기, 일제 당국은 구정인 설날을 배척하고 신정을 지내도록 강요했다.

양력설을 ‘신정’이라는 이름으로 공식 지정하면서 고유 명절인 음력설은 ‘뒤처진 구식 설날’이란 의미의 ‘구정’으로 이름 붙였다.

국민대다수가 구정을 쇠는 이유는 일제 강점기 이후 도입된 양력 설에 따른 반감의 결과다.

설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설’이라는 말은 조심한다는 뜻인 ‘사린다’, ‘사간다’에서 온 말로 한 해를 시작하며 모든 일에 조심스럽게 첫발을 내딛는 뜻 깊은 날로 여겨왔다. 또한 설은 지난해를 돌아보고 다가오는 새해에 대한 각오를 다지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설을 앞두고 지난해를 돌아본다. 지난해는 상대방의 말은 뒤전으로 하고 귀를 닫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 한 해로 기억됐다. 정치, 경제, 외교, 안보, 사회 등 각 분야에서 터질 수 있는 악재는 다 불거져 나왔다. 특히 정치는 정쟁으로 시작해 정쟁으로 끝났다. 시작은 김태우 전 특감반원이 제기한 청와대의 민간인 사찰,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이었다.

4월부터 이어진 패스트트랙 정국 속에서 터져 나온 ‘조국 사태’는 블랙홀처럼 정치, 경제, 사회의 모든 국정현안을 빨아들였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을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내정한 8월 이후 국민들까지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무한 대립을 해왔다. 하지만 해를 넘겼지만 조국 전 장관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하다. 비록 조 전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은 기각되었지만 당분간은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둘러싼 극한대립 양상도 수그러들 기미가 없다.

데이터 저너리즘을 추구하는 빅터뉴스가 2019년 한 해 동안 누적된 기사와 댓글, SNS의 게시물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대립양상은 명확해진다. 지난 한 해 동안 네이버에 올라온 기사에 대한 댓글은 총 9509만 3573개였다. 이 중에서 조 전 장관 이슈 관련 찬·반 댓글은 1207만4828개로 1년간 네이버 뉴스에 발생한 전체 댓글에서 12.7%를 차지했다.

이 같은 대치는 연말까지 계속됐다. 연동형 비례제를 골자로 한 선거법 개정안은 지난달 27일,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개정안은 30일 처리됐지만 제1야당의 거센 반발로 ‘극단의 정치’는 1년 내내 이어졌다.

이 과정에는 상대에 대한 이해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며 서로가 상대를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자연히 대화는 실종됐다. 오로지 정쟁화해서 힘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해결된 현안은 하나도 없었다.

상식이 통하도록 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상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풀 수 있는 대화다. 대화를 시작하겠다는 마음가짐 자체가 꼬인 실타래를 풀어보자는 적극적인 자세이자 신호인 셈이다. 대화를 하려면 먼저 양보하는 수밖에 없다. 지난해는 양보가 없었다. 여당의 밀어붙이기와 야당의 장외투쟁으로 기억될 만큼 갈등과 대립뿐이었다. 이 과정에서 듣기 민망할 정도의 막말에 말싸움을 이어나가기도 했다.

해는 바뀌었지만 천지개벽할 만큼 세상이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총선을 앞두고 갈등이 더 심화될 가능성도 있다. 지난해 심어놓은 분열, 분노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설날이 되면 으레 그렇듯 ‘희망’을 이야기한다.

새해 희망은 ‘막말 안하기’로 시작할 것을 권유한다. 막말은 대립과 갈등을 키울 뿐이다. 정치인을 포함해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설 인사가 쏟아지고 있다. 다 듣기에 좋은 말들이다. 하긴 설이 되면 덕담을 나누는 게 우리 민족의 풍습이다. 이왕이면 올 한 해는 배려와 설득이 담긴 덕담으로 대화를 시작해 남의 이야기를 듣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선조들은 새해 덕담을 나누는 방법도 남달랐다. 조선시대 신년 덕담은 바라는 바를 확정된 사실처럼 과거형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그렇게 되기를 축원하는 것이 아니라 벌써 그렇게 되었으니 축하한다는 형식이었다. 당시의 표현대로 독자분들에게 덕담을 나눠본다. “2020년은 상식이 통하는 한 해가 되었다니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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