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책을 통해서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 그곳에는 새로운 이야기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소개하는 책은 조선이라는 나라로 데리고 가 조선왕족실록을 지킨 우리 선조들의 이야기부터 무엇이든 먹을 수 있는 상상속 가게, 지독한 구두쇠로 유명한 스크루지까지 현실에서는 만날 수 없는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다.





◆지켜라, 조선왕족실록

박운규 지음/푸른숲주니어/48쪽/1만2천 원

책의 주인공은 우리 기록 문화의 큰 발자국 ‘조선왕족실록’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긴 왕조실록으로 꼽히며 조선이라는 나라의 500년 역사를 촘촘히 담아낸 독보적인 기록 유산이다. 국제 제151호로,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에 등재돼 있다. 역사 이래 편찬된 대부분의 역사책은 불타거나 도난당해 사라졌다. 그런데 어떻게 조선왕족실록은 우리에게 전해질 수 있었을까?

책은 임진왜란 당시 위험에 빠진 실록을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꾸려진 ‘실록 이안대’의 숨 가쁜 여로를 열세 장면 글과 그림에 담았다. 이안은 무언가를 안전하게 이동시킨다는 의미다. 피란을 떠나는 전쟁 통에 금은보화도 아닌 역사책을 이안하겠다 나선 이들의 이야기다.

지금으로부터 400년도 더 된 1592년(임진년) 봄, 일본군이 부산 앞바다로 몰려왔다. 해안선을 까맣게 메우고 부산진성을 수십 겹 둘러쌀 만큼 많은 수였다.

일본 군사는 한양으로 거침없이 진격했다. 일본군이 성주·충주·서울의 춘추관 사고(역사책 보관소)를 불태워 귀중한 역사책이 잿더미가 됐다. ‘전주 사고’를 지켜내지 못하면 딱 한 벌 남은 ‘조선왕조실록’마저 불탈 위기에 처했다. 대지는 불바다가 되고, 임금마저 도성을 버리고 피란길에 올랐다.

그때, 늙은 시골 선비 두 사람이 가솔과 우마를 모아 전주 사고로 향해 간다. 바로 ‘안의’와 ‘손홍록’이다. 두 선비는 전주 사고 실록을 빈틈없이 챙겨서 깊고 험한 내장산 산골짜기로 이안대를 이끌고 갔다. 6월22일, 실록 이안대가 정읍 내장산에 무사히 도착한다. 이안대는 책궤를 지고 산비탈을 기어올라 더 깊숙한 산속 암자 ‘비래암’으로 숨어든다.

일본군의 점령지가 확대되면서는 이안대는 내장산을 떠나 아산에서 배를 타고 해주를 거쳐 임금에게 이른 뒤에도 2천 리나 되는 여정을 계속해 나간다.

그들은 왜 이런 고된 길을 자진해서 가려 했을까? 책을 읽다보면 ‘기록’의 가치와 과거를 온전히 보전하는 것뿐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고 개척하는 일이라는 걸 느끼게 된다.



◆세상에 없는 가게

김선정 지음/라임/99쪽/9천500원

아토피 때문에 음식을 가려 먹는 데 질린 환이. 나중에 어른이 되면 먹고 싶은 음식을 큰 그릇에 잔뜩 담아 싫증 날 때까지 마음껏 먹는 게 소원이다. 그런 환이 앞에 바로 ‘그 가게’가 나타났다. 어느 날에는 라면집이었다가 다음 날에는 치킨집, 또 분식집이었다가 과자집으로 변하는 이상한 가게가, 배가 터질 만큼 먹는데도 자꾸 꼬르륵 소리가 나는 건 왜일까?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먹지 못하는 환이는 세상에 없는 가게에서 그토록 바라던 음식들을 양껏 먹지만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다. 가게를 벗어나는 순간, 포만감은 사라지고 입안을 감돌던 음식의 맛도 기억나지 않기 때문이다.

보물 창고를 찾은 듯한 짜릿한 기쁨도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손잡이가 말을 하고 오싹한 얼굴을 한 여자아이와 무서운 마녀 아줌마를 만나는 등 오금 저리는 순간마저 이겨 내던 식욕도 어느 순간 사라지고 만다. 환이가 느끼는 허기는 사실 몸이 아니라 마음과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마녀 아줌마가 몰아세우는 말에 환이가 흔들리는 것은, 그 말들이 환이 내면에서 뿌리내리고 자라던 부모에 대한 의구심을 또렷이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히 환이에게는 든든한 조력자가 있다. ‘엄마가 환이를 엄청 좋아한다는 걸 믿어야 집에 갈 수 있다’는 외침은 마녀의 마법을 푸는 열쇠이자 악몽을 깨우는 다정한 손길이 된다. 그리고 그동안 억눌려 있던 마음은 짠맛 나는 눈물 폭포가 되어 환이를 싣고 가게 밖으로 쏟아져 나온다. 카타르시스와 뭉클함, 그리고 안도감을 동시에 선사하는 후련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어디에도 털어놓지 못하는 아이들의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그 헛헛한 마음을 뭉클하게 안아 주는 이야기이다. 마음을 살피고 나누는 일의 어려움을 섬세한 시선으로 포착한 것은 물론이고, 믿음을 회복해 나가는 과정을 환상성 가득한 이야기 속에 능수능란하게 풀어놓았다.

◆옐로우 큐의 살아있는 경제 박물관

양시명 나일등기행단 지음/안녕로빈/224쪽/1만3천 원

주말 체험활동으로 경제박물관에 간 송이와 친구들은 생각지도 못한 사건에 휩싸인다. 전시관에 진열된 금덩이가 커다란 유령으로 변하더니, 송이를 금화로 바꿔 데려가 버린 것. 깜짝 놀란 친구들은 의문의 유령을 쫓다가 고전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의 이야기 속까지 들어가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만난 유령의 정체는 바로 소설 속 주인공 스크루지의 생전 동업자 말리.

유령이 된 말리는 아이들에게 스크루지를 도와 ‘이웃과 함께 하는 행복한 사업 계획서’를 만들면 송이를 돌려주겠다는 황당한 제안을 한다. 송이와 친구들은 미션을 마치고 무사히 현실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까.

책은 화폐 금융을 비롯해 경제에 관한 정보를 망라한 판타지 모험 동화다. 초등학생 눈높이에 맞춘 스토리텔링과 삽화로 어려울 수 있는 주제를 흥미롭고 재미있게 풀었다. 영국의 작가 찰스 티킨스가 1843년에 발표한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을 활용한 점도 눈길을 끈다. ‘크리스마스 캐럴’에는 지독한 구두쇠로 유명한 스크루지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크리스마스 유령’을 만나 우연히 자신의 미래 장례식을 보게 되는데, 인색하게 살았던 탓에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이에 큰 충격을 받은 스크루지는 지난 삶을 반성하고 이웃을 돌보기로 마음먹는다.

책에서 송이의 친구들은 스크루지와 함께 좋은 사업가가 되는 방안을 찾는다. 이 과정에서 경제 시스템과 기업의 역할에 대해 배우게 된다. 미래 CEO를 꿈꾸는 어린이들이 참고할 만한 정보도 풍부하게 담겨 있다.



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