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진보주의자의 하루/ 신동호

오전 여덟 시쯤 나는 오락가락한다/ 20퍼센트 정도는 진보적이고 32퍼센트 정도는 보수적이다/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막둥이를 보며 늘 고민이다/ 늘 고민인데 억지로 보내고 만다/ 정확히 오전 열 시 나는 진보적이다/ 보수 언론에 분노하고 아주 가끔 레닌을 떠올린다/ 점심을 먹을 무렵 나는 상당히 보수적이다/ 배고플 땐 순댓국이, 속 쓰릴 땐 콩나물해장국이 생각난다/ 주식 같은 건 해본 일 없으니 체제 반항적인 것도 같은데,/ 과태료나 세금이 밀리면 걱정이 앞서니 체제 순응적인 것도 같다/ 오후 두 시쯤 나는 또 오락가락한다. (하략)

- 시집 『장촌냉면집 아저씨는 어디 갔을까?』(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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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이후 기존 보수 정당에 대한 심판 여론이 확산되자 동시에 보수와 진보에 대한 개념 논의도 활발해졌다. 진보를 좌파로, 보수를 우파로 규정짓기도 하는데, 프랑스혁명 때 열렸던 국민의회에서 왼쪽은 왕정을 무너뜨리고 프랑스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려는 공화파가, 오른쪽엔 예전 왕정체제의 근간을 유지하려는 귀족 중심의 왕당파가 앉았던 데서 유래했다.

보수주의자들은 자유시장의 원리에 맡기자고 한다. 개인 각자가 자유롭게 부를 얻고자 열심히 경쟁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불평등은 자연의 법칙이라는 생각이다. 오히려 욕구를 자극해 사회발전에 도움이 되고 국가도 함께 부유해진다는 논리로 자본주의의 근간이 됐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원칙적인 생각이라지만 시장경제에 마냥 맡겨둬 버리면 승자독식의 우려가 있고 실제 우리 사회 불평등 구조의 대부분은 그에 기인한 결과이다.

역사에서도 대비되는 인물들이 있다. 포은 정몽주는 왕이 썩고 탐관오리가 판쳐도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보수적 입장인 반면에, 심상정 대표가 존경하는 역사 인물로 꼽은 삼봉 정도전은 왕이 썩고 탐관오리가 판치면 나라를 바꿔야 한다는 진보적 입장이었다. 전자는 나라가 우선이고 후자는 백성이 먼저다. 문 대통령의 과거 선거캠페인이 “사람이 먼저다”였다. 하지만 이제 보수와 진보를 무 자르듯 구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시대착오적이기도 하다. 결국 좋은 세상 만들어서 다 함께 잘 살자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는 뇌 자체가 다르다는 말도 있지만 공존할 수밖에 없다. 시에서처럼 어느 순간엔 진보적이었다가 또 어느 땐 보수적이 되기도 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고 오락가락 이다. 웬만큼 진보적이고 웬만큼 보수적일 뿐 진보적 가치를 배제하는 보수나, 보수적 가치를 깡그리 무시하는 진보는 곤란하다. 남북 화해, 복지 확대, 민주화 등의 기치가 우리 삶을 핍박할 리는 없지 않은가. 다양한 가치들을 조화롭게 잘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건전한 보수와 진보가 공존해 서로 인정하고 보완하면서 견제와 균형을 이룰 때 국가는 발전하고 개인의 행복과 존엄도 실현된다. 삶의 기쁨과 행복을 위한 4가지 조건으로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는 것’을 꼽은 유시민 작가가 정의하는 진보도 타인의 고통과 기쁨에 공명하면서 함께 사회적 공동선을 이루어나갈 때, 가장 아름답고 품격 있는 인생이라고 했다. 그는 이러한 ‘연대’가 이루어내는 아름답고 유쾌한 변화를 ‘진보’로 보았다. 진중권 씨는 그 연대를 향해 “집단 속 승냥이, 뇌 없는 좀비”라고 독설을 퍼부은 것이다.



김현수 기자 khso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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