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외조청으로 만드는 한과(韓菓)||교육과 열정을 만들어 낸 한과로 부농을 꿈꾸는 강소농 |

▲ 수미담 가족들이 직접 만든 유과 포장작업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배철환(아들) 도용구 대표, 배복환(남편)
▲ 수미담 가족들이 직접 만든 유과 포장작업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배철환(아들) 도용구 대표, 배복환(남편)
역사라고 하면 너무 거창해 보이지만 크고 거창한 것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알듯 모를 듯 우리 곁을 스쳐간 작은 것들도 층층이 쌓이면 역사가 된다.

먹거리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밀가루나 쌀가루에 설탕과 우유 등을 섞어 굽거나 튀긴 과자의 역사는 어떠했을까? 출출하거나 심심할 때 주로 먹던 과자는 언제부터 먹었을까?

▲ 수미담 가족들이 기름에 튀겨낸 유과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참외 조청을 바르고 튀밥가루를 묻히면 유과가 완성된다. 왼편부터 도용구 대표, 배철환(아들), 배복환(남편)
▲ 수미담 가족들이 기름에 튀겨낸 유과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참외 조청을 바르고 튀밥가루를 묻히면 유과가 완성된다. 왼편부터 도용구 대표, 배철환(아들), 배복환(남편)
4천여 년 전에 빵이 등장한 때와 같을 것으로 추정한다. 우리나라에서 과자에 대한 이야기는 ‘삼국유사 김유신 전’에 처음으로 나온다. 고구려 첩자 ‘백석’의 꾐에 빠져 납치될 위기에 빠진 김유신을 ‘내림’과 ‘혈례’, ‘골화’를 지키던 호국신들이 여인으로 변장하고 나타나 과자를 주면서 밖으로 불러 내 백석의 정체를 알려주어 위기에서 벗어나게 했다는 내용이다.

▲ 도용구 대표가 남편 배복환(왼편)씨와 함께 방금 기름에 튀겨낸 유과를 살펴보고 있다. 여기에 참외 조청을 바르고 튀밥가루를 묻히면 유과가 완성된다.
▲ 도용구 대표가 남편 배복환(왼편)씨와 함께 방금 기름에 튀겨낸 유과를 살펴보고 있다. 여기에 참외 조청을 바르고 튀밥가루를 묻히면 유과가 완성된다.
우리 역사 속에 등장하는 최초의 과자다. 밀의 재배가 적었던 우리나라에서는 과자보다는 쌀로 만든 떡이 발전했지만 오래전부터 과자도 있었다. 성주에서 우리의 전통과자인 한과(유과)로 부농을 꿈꾸는 강소농이 있다. 수미담(手味啖)의 도용구(63) 대표와 남편인 배복환(68)씨가 주인공이다. 도 대표는 참외 조청을 활용한 한과를 만들어 연간 4억5천여만 원의 소득을 올린다.

◆ 교육 마니아 농산물 가공에 도전

도 대표는 대대로 농사를 지어온 평범한 농부였다. 벼농사를 지으면서 사슴을 사육했다. 지금도 사슴 50마리를 사육하고 있다. 농산물 가공에 발을 들인 것은 교육에 대한 열정의 결과다. 농사일로 바빴지만 교육이라면 빠지지 않고 들었다. 농업기술센터 문턱이 닳을 정도로 드나들었다. 자신과 상관없는 작목도 닥치는 대로 공부했다.

▲ 도용구 대표가 참외조청을 만드는 대형 솥의 사용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도용구 대표가 참외조청을 만드는 대형 솥의 사용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요리에 대한 관심이 많아 우리음식연구회원으로 오랫동안 활동했다. 떡과 한과류와 같은 향토요리에 대한 교육을 많이 받았다. 참외요리 개발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런 열정과 솜씨를 눈여겨본 농업기술센터에서 농산물 가공품 생산을 권했다.

▲ 도용구 대표가 유과의 원료로 사용하기 위해 물에 담근 찹쌀의 숙성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온도에 따라 다르지만 통상 20일 정도 숙성을 시킨다.
▲ 도용구 대표가 유과의 원료로 사용하기 위해 물에 담근 찹쌀의 숙성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온도에 따라 다르지만 통상 20일 정도 숙성을 시킨다.
처음에는 참외 조청에 도전했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성주의 특산물인 참외를 활용한다는 생각은 좋았으나 다른 조청과의 차별화가 어려웠다. 다시 한과에 도전했다. 유과와 정과, 강정, 다식 등 많은 한과 중에서도 유과에 집중했다.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전통기법과 농업기술센터에서 배운 향토요리 교육, 자신만의 손맛을 보탰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설날과 추석을 중심으로 소규모로 시작했으나 한번 맛을 본 소비자들의 재구매가 이어지고 소문이 나자 점차 생산량을 늘려나갔다.

▲ 도용구 대표가 완성된 유과를 봉지에 담고 밀봉작업을 하고 있다.
▲ 도용구 대표가 완성된 유과를 봉지에 담고 밀봉작업을 하고 있다.
2012년 농촌여성창업자금을 지원받아 현대식 시설을 갖추고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갔다. 현재는 아들 부부도 합류해 연중 생산체계를 갖추었다.

◆ 손맛을 먹는다는 수미담 유과

농장이름이 독특하다. 한자어로 手(손 수) 味(맛 미) 啖(먹을 담)을 조합해 만들었다. 손맛을 먹는다는 의미다. 손맛을 강조하는 것은 어머니의 손맛을 이어받았고, 중요한 공정은 수제 공정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 도용구 대표가 상호인 수미담의 의미를 새긴 명판을 들고 있다. 수미담을 손맛을 먹는다는 의미다.
▲ 도용구 대표가 상호인 수미담의 의미를 새긴 명판을 들고 있다. 수미담을 손맛을 먹는다는 의미다.
한과 제조공정은 간단해 보이지만 까다롭다. 먼저 깨끗이 씻은 찹쌀을 20일 정도 물에 담근 상태에서 발효과정을 거친다. 한과(유과)의 기본이 되는 떡(바탕)을 만들고 건조해 기름에 튀기고 조청을 발라서 튀밥가루를 묻히면 완성된다. 이때 떡을 만드는 것이 가장 힘들고 어렵다.

▲ 도용구 대표가 선물용 유과상자를 들고 한 컷 찰칵.
▲ 도용구 대표가 선물용 유과상자를 들고 한 컷 찰칵.
할머니들이 칼국수 반죽을 밀듯이 안반(반죽을 하거나 떡을 칠 때에 쓰는 두껍고 넓은 나무판)에서 일일이 손으로 밀어서 만든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두께다. 두께가 균일해야 튀겼을 때 똑같은 모양의 유과가 나온다. 기계로 만들면 쉽지만 손으로 직접 만들 때의 그 맛을 내기 어렵다.

◆ 가족 간의 역할 분담

유과 제조에는 전 가족이 참여한다. 각자의 역할도 구분되어 있다. 떡을 만들고 튀기는 제조과정은 도 대표와 남편의 몫이다. 건조한 떡의 수분 함량과 기름의 온도, 튀기는 시간은 오랜 경험과 감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손으로 만드는 떡의 두께는 고도의 감각이 필요해 초보자는 만들기 어렵다.

▲ 완성 된 유과, 튀밥가루 사이로 노랗게 보이는 것이 참외조청을 바른 모습이다.
▲ 완성 된 유과, 튀밥가루 사이로 노랗게 보이는 것이 참외조청을 바른 모습이다.
2014년 합류한 아들(배기철·38)은 주로 판매에 주력하면서 제조과정에도 참여한다. 2018년 미국 LA와 필리핀의 식품박람회에 참여해 직판행사를 열고 소량이지만 캐나다에 수출의 길을 연 것도 아들의 젊은 마인드와 노력 덕분이다.

▲ 완성된 유과
▲ 완성된 유과
며느리는 축제장이나 식품박람회, 프리마켓 등에 참가해 시식행사를 통한 홍보와 직판을 담당한다. 포장작업은 인근 아주머니들의 손길을 빌린다. 도 대표의 손을 보면 검지의 첫째 마디가 볼록하게 솟아있고 안쪽으로 살짝 휘었다. 오랜 시간 동안 유과를 만들면서 생긴 노동의 결과인 동시에 영광의 상처다.

◆ 한과로 신지식농업인에 등극

도 대표는 2018년 식품가공분야 신지식농업인으로 선정됐다. 농식품부에서 선정하는 신지식농업인은 농업·농촌의 변화와 혁신을 주도하는 농업인을 대상으로 창의성, 실천성, 가치 창출성, 자질 등을 기준으로 선정한다. 지금까지 전국에서 454명의 신지식농업인을 선발했다. 2018년에는 66명의 후보자가 치열한 경쟁을 거쳐 16명이 최종 선발됐다.

▲ 완성된 유과
▲ 완성된 유과
식품가공 공장을 설립하고, 지역 농산물인 쌀과 참외를 활용해 전통식품인 한과를 생산, 판매해 전통의 맥을 잇고, 지역농산물 판매에도 기여한 것이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 유과를 만드는 재료인 건조한 찹쌀떡, 3㎝ 정도의 길이로 잘라서 기름에 튀기면 유과가 된다.
▲ 유과를 만드는 재료인 건조한 찹쌀떡, 3㎝ 정도의 길이로 잘라서 기름에 튀기면 유과가 된다.
2015년에는 6차 산업 인증업체로 선정되면서 이마트와 신세계백화점 등 대형 유통업체에도 입점했다. 햇섶(HACCP)인증 절차를 진행 중이다. 식품산업의 위생관리 국제표준화 규격인 ISO 22000(식품안전경영시스템) 인증도 받았다.

◆ 손주에게 먹이는 마음으로 만드는 한과

도 대표가 추구하는 경영원칙은 하나다. 손주들에게 안심하고 먹일 수 있는 한과를 만든다는 것이다. 좋은 재료에서 좋은 먹거리가 나온다는 원칙을 고수한다. 한과의 원료가 되는 쌀과 조청을 만드는 참외도 지역에서 생산된 것만을 사용한다. 청결을 유독 강조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이런 노력 덕분에 재구매 고객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어떤 고객은 신혼 초에 시댁에 수미담 한과를 들고 갔다가 시아버지로부터 ‘이런 한과는 처음 본다’는 칭찬을 듣고는 매번 한과를 사들고 간다고 한다. 2018년 LA식품 박람회에서 한과를 구입한 고객이 국제전화로 주문했으나 택배요금이 너무 많아 보내지 못했다. 그 고객은 얼마 뒤 한국 방문기회가 생기자 성주까지 직접 찾아와서 한과를 구입해 가기도 했다.

▲ 완성된 유과의 속 모습
▲ 완성된 유과의 속 모습
그러나 그동안 꽃길만 걸은 것은 아니다. 가정용으로 소비하는 소량 생산과 대량 생산해 상품화하는 과정은 많이 달랐다. 대량생산을 하면서도 전통의 손맛을 살리는 제품을 만들기까지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이 과정에서 버린 찹쌀만 해도 4~50여 가마에 이른다. 덕분에 농장에 있던 사슴들이 호강했다면서 부부는 웃는다. 소비자들로부터 호평을 받는 것은 수많은 밤을 새우면서 노력한 결과로 보인다.

◆ 사슴과 연계한 한과 체험농장

수미담 식구들의 꿈은 한결같다. 전통식품인 한과를 널리 보급해 그 우수성을 알림으로써 한과시장을 확대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과를 주제로 한 체험을 할 수 있는 체험교육농장을 만들려고 한다.

또 자신의 한과 제조기술을 주변 농가에도 공개해 참여 농가들과 함께 가고 싶어 한다. 농장에서 사육 중인 사슴과 한과를 연계시키는 특별한 체험농장의 그림도 그린다. 성주의 특산물인 참외를 이용한 참외식혜를 만드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전통식품인 식혜에 달콤한 참외를 가미시킴으로써 젊은이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다는 것이다. 거리를 활보하는 젊은이들의 손에 커피 대신 참외식혜가 들리는 날을 기대해 본다.



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

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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