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역 광장의 역사 (1) 반월당 네거리

발행일 2020-01-05 19:00:0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1호 광장’ 반월당 네거리…대구의 정치·문화 일번지

도심 동성로의 관문…2호선 개통으로 상권 급부상

대구 대중교통의 중심지, 지하도시도 조성돼

대구에는 지명 대신 ‘광장’이라고 불리는 곳들이 있다.

‘7호 광장’으로 불리는 대구 서구 두류네거리가 대표적이다.

또 북구 만평네거리는 ‘8호 광장’이다.

대구시가 1965년 ‘1차 도시계획재정비’에 나서면서 대구의 12개의 교통 요충지에 ‘광장’이라는 이름과 함께 번호를 매겼다.

단순히 도면 확인의 편의를 위한 번호로 시작된 대구 광장의 역사는 시간이 흐르면서 광장이 현재 60여 개까지 늘어났다.

‘2호 광장’처럼 현재 군부대 안에 위치해 본래 광장의 기능을 상실한 곳도 있지만, 대부분의 광장들은 여전히 대구 교통의 요충지로 남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대구 도시의 확장과 함께 성장해 온 대구지역 ‘광장의 역사’에 대해 알아본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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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광장으로 지정된 대구 중구 남산동 반월당 네거리의 현재 모습. 반월당 네거리는 대구의 정치·문화 중심지로서 대구시 도시계획의 중심축이다.
“반월당에서 만나요.”

1965년 발표된 ‘대구도시계획도’에 따르면 당시 계획된 12광장 중 가장 먼저 지정된 ‘1호 광장’의 위치는 현 대구 중구 남산동의 반월당 네거리 일원이다.

반월당 네거리는 동성로와 함께 대구에서 가장 유동인구가 많고 붐비는 곳이다.

현재 대구지역 대부분의 대중교통이 반월당 네거리를 중심으로 지나고 있다.

대형백화점들이 위치해 있고 대구 번화가로 들어가는 관문이어서 예전부터 만남의 장소로 사랑받아 왔다.

‘반월당’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먼저 후삼국 당시 후백제군과의 전투에서 패배한 왕건이 몸을 피해 이곳에 도착했을 때 반달(半月)이 떠 있었다는데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시절 대구 최초의 백화점인 ‘반월당’의 명칭이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지도상으로도 대구의 가장 중심부에 있는 반월당 네거리는 대구 교통의 심장과도 같은 곳으로 대구의 정치·문화의 일번지로서 대구의 역사와 함께 성장해 왔다.

◆대구 도심의 역사 ‘반월당’

대구근대역사관에 따르면 반월당 네거리 일대는 조선 후기 전국에서도 손꼽혔던 서문시장과 약령시를 찾는 상인들로 늘 북적였다.

1906년 대구읍성을 헐고 조성된 ‘중앙통’ 거리가 현재의 대구 동성로 번화가의 시초로 추정된다.

1936년 당시 약전골목의 상인이었던 차병곤씨가 고급화장품, 수예품, 메리야스, 양산 등의 잡화류를 판매하는 목조 2층 건물로 된 ‘반월당’이라는 가게를 연 것이 반월당의 시초다.

특히 대구 최초의 백화점이라는 의미가 있다.

당시 반월당은 현 중구 남산2동 반월당역 22번 출구 인근에 세워졌으며 고객은 여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1943년 경영난으로 다른 사람에게 넘겨져 ‘공신백화점’으로 상호가 바뀌었고 해방 이후 백화점은 문을 닫았다.

이후 여러 상점 등으로 분리돼 운영됐지만 1981년 도로 확장 공사로 인해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반월당은 사라졌지만 반월당이라는 지명으로 여전히 통용될 만큼 당시 화려했던 명성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 동아쇼핑과 현대백화점 등이 옛 반월당의 명맥을 잇고 있다.

1960년대 반월당 네거리 전경. 동그라미 부분이 현재의 반월당 네거리 교차로 자리다. 당시에도 반월당 네거리는 대구의 중심지로서 많은 차량이 통행하는 곳이었다. 광장 조성 전 반월당 네거리는 교통섬 등이 조성돼 있지 않고 도로 폭도 좁은데다 신호체계마저 제대로 잡혀있지 않아 차량의 통행이 불편했다.


◆대구 관문을 넘어 중심상권으로 성장

경상감영 사백년사에 따르면 대구지역 최초의 도시계획은 1937년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들이 실행했다.

당시 대구의 인구 15만 명을 기준으로 30년 후인 1965년에는 35만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해 만든 계획이었다.

하지만 1965년에는 대구의 인구가 80만 명에 달해 계획은 무용지물이 됐다.

대구시는 1965년 ‘1차 도시계획재정비’를 발표하며 대구에 12개 교통광장을 설치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 중 반월당 네거리를 ‘1호 광장’으로 지정했다.

대구시 도시계획정책관 민병룡 팀장은 “건축법시행령에 따르면 교통광장으로 지정 시 복잡한 도로환경의 정리와 더불어 보행자들과 차량들을 위한 다양한 편의시설 설치가 용이해진다”며 “반월당 네거리를 대구 교통의 중심축으로 두고 대구의 도로들을 재개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양한 도심과 부도심들이 공존하고 있는 비슷한 규모의 타 도시들과는 달리 대구는 유난히 상업지구가 단일 도심인 동성로에 집중돼 있다.

반월당 네거리는 동성로의 입구인 동시에 대중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하며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2005년 도시철도 2호선 개통과 2011년 현대백화점 대구점 개점으로 주변상권도 다시 개편되는 등 관문을 넘어 중심상권으로 변모 중이다.

2·28시위 당시 현장의 모습. 2·28 시위는 광복 이후 최초의 자발적 학생민주화 운동으로 아시아 최초의 민주시민혁명인 4·19 혁명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진 제공: 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


◆대구 ‘광장 민주주의’의 성지

반월당 네거리는 많은 유동인구와 넓은 공간이라는 장점으로 예전부터 각종 모임 장소로 활용됐었다.

특히 1960년 당시 이승만의 자유당 독재정권에 맞서 항거한 2·28시위가 열린 곳이기도 하다.

2·28시위는 당시 대구지역 8개교 학생들이 부패한 정권의 불의와 부정에 항거해 자발적으로 일으킨 광복 이후 최초의 학생민주화 운동이다.

특히 아시아 최초의 민주시민혁명인 4·19혁명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최근 도시철도 반월당역의 지명을 2·28역으로 바꾸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밖에도 1972년 유신반대시위에서 1987년 6월 항쟁에 이르기까지 대구의 굵직한 민주화 시위들이 모두 반월당 네거리에서 열린 까닭에 대구 ‘광장 민주주의’의 성지로 불리기도 한다.

현재도 대구지역의 대형 집회와 걷기행사 등이 반월당 네거리에서 열리고 있는 등 대구지역 집회·시위의 상징적인 공간으로 통한다.

반월당 네거리 밑 지하상가 메트로센터 ‘만남의 광장’의 모습. ‘만남의 광장’은 대구시민의 대표적인 약속 장소이다. 이곳에서는 시민을 위한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리고 있다.


◆대구 시민의 만남의 ‘광장’

대구 시민의 대표적인 만남의 장소는 바로 반월당이다.

특히 반월당 네거리는 대구에서 유일하게 도시철도 1호선과 2호선이 만나는 지점으로, 대구를 가로와 세로로 가르는 달구벌대로와 중앙로가 교차하는 곳이기도 하다.

위치상으로도 대구의 중심에 있으며 신천대로, 북대구IC 등 대구 주요도로의 진입이 용이해 다양한 교통 인프라를 갖춘 대구 교통의 최중심지다.

도시철도 1호선과 2호선이 환승하는 반월당역의 출구는 무려 23개.

반월당역은 전국 도시철도역 중 출구가 가장 많은 역이다.

또 반월당역은 대구 도시철도 전 구간을 통틀어 가장 승하차 인원이 많은 역이다.

두 노선을 합쳐 작년 기준으로 하루 평균 7만5천여 명의 이용객이 반월당역을 찾고 있다.

이는 비수도권의 도시철도역 중 두 번째로 많은 숫자다.

반월당 네거리는 대구 유일의 도심지이자 최대 번화가인 동성로의 입구에 있다.

2005년 도시철도 2호선 개통 이후 뛰어난 접근성으로 인해 상권의 중심지의 명성을 다시 찾았다.

반월당 네거리 지하에 조성된 메트로센터 지하상가는 7만5천900㎡(2만3천 평) 규모다.

점포수는 400여 개이며 도시철도 이용객은 물론 메트로센터를 찾은 이들로 늘 북적인다.

메트로센터 상가 중앙에는 분수대가 있는 넓은 공간의 광장이 있다.

‘만남의 광장’으로 불리는 이곳은 시민들의 대표적 약속장소다.

또 2009년 반월당 네거리~대구역을 잇는 1.05㎞ 구간이 국내 최초로 대중교통전용지구로 지정되기도 했다.

영남대 도시공학과 윤대식 교수는 “반월당 네거리는 대구의 모든 교통이 관통하고 있는 대중교통의 중심지로 대구 도심의 얼굴이자 상징”이라며 “대중교통의 시작점으로 반월당 네거리를 중심으로 대구의 도심이 점차 재개편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엽 기자 sylee@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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