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우리도 신청해도 되나요?'

발행일 2019-12-30 16:22:57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교육기부 공모전 최우수작.. 경서중 조양희 교사

경서중 조양희(오른쪽)와 강은희 대구시교육감


가을장마가 잠깐 구름 뒤에 숨은 수요일 오후, 내일 있을 방과후 버스킹 준비를 했다. ‘함성소리’(함께 성장하고 소통의 행복을 누리고자 하는 우리학교의 인성브랜드 명칭)’라는 이름으로 열리는 방과후 버스킹은 학생 스스로 갈고 닦은 특기적성 활동을 교내외에서 ‘공연 기부’의 형식으로 발표하는 장이다.

전교생을 대상으로 다채로운 특기적성활동을 개설한 학교는 매주 금요일 POP, 댄스 등 다채로운 강좌를 열어 전교생이 ‘1인 1특기적성’ 기르기를 하고 있다.

방과후수업은 달성군청 지원금

으로 운영되는데 지원과 기부를 다시 나눌 수 없을까 고민했다.

학교는 올해 새로 지은 신축 건물로 이전했다. 2~3층을 연결하는 계단과 계단 아래 작은 광장이 자리하고 있다. ‘저 아담하고 예쁜 공간인 어울 터전에서 점심시간 행복한 음악 소리와 아이들의 노래 소리가 울려 펴지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학생회 아이들과 머리를 맞대고 구상했고, 그 결과 점심시간 버스킹을 계획하게 됐다.

지난 5월9일, 기타+보컬반 학생들 17명의 공연이 시작됐다.

“선생님, 성공한 거 같아요, 정말 좋아요. 아이들 반응이 대박이에요” 등 버스킹을 주관한 학생회 임원들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고, 발표 공간에는 따뜻한 음악과 함께하는 노래가 어우러져 있었다. 무엇보다 감동적이었던 것은 학습도움실(특수학급) 학생도 기타를 잘 치지는 못하지만 함께 스트로크를 하면서 참여했다는 점이다.

‘함께’의 가치는 참 멋있는 일이다.

댄스부 학생들의 춤 발표와 듀엣 노래까지 15분여 간 첫 버스킹을 무사히 마치고 몇 명 학생들이 교무실에 찾아 왔다.

“선생님, 저희도 참여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학생 몇 명이 버스킹 무대에 서고 싶다는 의사를 보내왔다. 호숫가에 던진 작은 돌이 중심에서부터 멀리까지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듯 아이들이 무언가를 스스로 해보겠다고 말해 줘 무척이나 기뻤다.

항구의 부둣가에 배를 묶어 놓으면 높은 파도도 격량도 겪지 않고 안전하다. 하지만 묶여있는 배는 배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무엇이라고 하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며 우리 아이들의 자발적인 행동은 교정에 웃음꽃을 피울 수 있으리라 생각됐다.

(중략)

군청 지원금으로 운영하고 있는 특기적성활동을 학교뿐 아니라 사회로 환원할 수 있는 길이 없을지 고민하던 중 아이들과 ‘공연 봉사’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지역에 있는 요양병원에서 투병 중이신 어르신들에게 흥겨운 시간을 제공해 드리고, 우리 아이들은 갈고 닦은 실력을 발표함으로써 기부하고 봉사하는 뜻깊은 추억을 만들 수 있을 듯했다. 전교생을 대상으로 방과후 공연 봉사 활동 희망자를 조사한 결과 40여 명의 학생들이 신청했다.

신청한 학생 중에는 학습도움반(특수학급) 학생도 있어서 은근히 잘 할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솔직하게 도움반(특수교육전담교사) 담당선생님께 상황을 말씀드리고 의논드린 결과 흔쾌히 학생 이동과 지도, 관리 등을 함께 해주시겠다고 말씀해주셨다. 평소 봉사에 관심이 있었던 또 다른 선생님도 동참해 공연 봉사를 가기로 했다.

7월, 공연 봉사 준비, ‘무조건, 내 나이가 어때서, 어머나, 땡벌.’ 어르신께서 익히 알고 좋아할 것 같은 트로트부터 율동까지 연습했다. 노래 선정부터 안무까지 2~3명이 그룹을 짜서 연습하고, 자체 리허설도 가졌다. 연습 과정에서 시간, 노력, 땀, 의견 조율 등 애로사항도 있었지만 스스로 만들어내고 짜 보는 과정을 통해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학습도움반 학생과 한 조를 이뤄 함께 노래를 선정하고, 안무를 만들었던 급우들이다. 평소 자주 불렀다는 쉬운 노래 ‘숫자 송’을 귀여운 율동을 넣어 즐겁게 연습했다.

드디어 7월의 어느 토요일, 우리는 요양병원에서 연습했던 공연 봉사를 했다. 기타, 우쿨렐레, 리코더 등의 악기 연주와 함께 밝고 화사한 칼라플한 옷을 입고, 예쁜 머리띠도 하고 중간 중간 신나는 트로트와 율동으로 어르신들 앞에서 끼를 발휘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여름날의 태양만큼 긍정적인 밝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공연 후 준비해간 두유와 파이를 나누어 드리고 건강을 기원하는 인사로 마무리 지었다. 봉사와 기부는 아무런 보답을 바라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아이들의 맑고 선한 눈빛에서 읽을 수 있었고 기획자로서의 보람도 느낄 수 있었다.

교내외 공연 봉사를 추진하면서 힘든 마음이 들 때면 ‘해도 되고 안 해도 아무런 지장이 없는 일을 기획, 추진하고 있네’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선생님, 참 좋은 프로그램같아요,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라고 말해주는 아이들의 말과 눈빛에서 우리가 나눔으로 함께 쌓은 추억이 우리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아 행복을 주었다고 생각하니 ‘보람’이란 것을 느낀다.

보람의 사전적 의미인 ‘어떤 일을 한 뒤에 얻어지는 좋은 결과나 만족감 또는 자랑스러움이나 자부심을 갖게 해 주는 일의 가치’는 마음을 살찌우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자세히 보면 멀리, 더 깊이 볼 수 있고, 높이 날면 더 멀리 볼 수 있다’는 말을 되새기며 아이들과 선생님은 함께의 가치를 믿고 실천해 나갈 것이라 다짐해 본다. 사랑받는 것보다 사랑하는 것이 더 벅찬 기쁨을 주듯 함께의 가치와 나눔의 바닷 속에 행동이라는 걸음걸음을 내딛으리라 생각해 본다.

윤정혜 기자 yun@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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