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일반

‘라키비움’의 부상

‘라키비움’의 부상

김상진

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

정보기술(IT)의 발달로 책과 예술품, 유물, 영상 등 다양한 유형의 정보자료가 디지털화되면서 관리 또는 서비스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이에 관련 정보를 한 곳에서 찾거나 즐기려는 이용자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라키비움(Larchiveum)’이 부각되고 있다. 라키비움은 도서관(Library), 기록관(Archive), 박물관(Museum)의 합성어로 시민들에게 정보와 지식을 제공하는 문화기관의 기능을 한 곳에서 수행하는 복합문화공간을 뜻하는 신조어다.

프랑스의 퐁피두 국립미술문화센터를 비롯해 20세기 후반 유럽에서 등장한 복합문화공간은 2008년 미국 텍사스대학의 메건 윈젯 교수에 의해 ‘라키비움’이란 이름을 갖게 됐다. 윈젯 교수는 다가올 미래에는 도서관, 기록관, 박물관의 정보를 집약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뒤 이러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기관으로 라키비움을 제안했다. 미국 펜실베이나주에 있는 카네기자연사박물관이 대표적인 라키비움으로 손꼽힌다.

정보가 곧, 힘인 현대사회에서 효율적으로 정보를 취득할 수 있는 라키비움은 국내에서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도서관계에서는 국립도서관들이 앞장섰다. 국립중앙도서관 문학실은 벌써 지난 2016년 라키비움으로 변신했다. 5단 양면서가들이 줄지어 있는 기존 자료실의 모습에서 탈피해 다양한 높이의 서가와 진열장, 카페를 연상시키는 열람석 등을 설치했다. 또한 한국근대문학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는 연대기 코너와 장르별 코너 등을 마련해 희귀자료 등 다양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국회도서관도 2017년 국립민속박물관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본격적으로 라키비움 확산에 나섰다. 국립민속박물관은 국회도서관이 구축한 서지와 원문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박물관 이용자에게 지식정보를 확산함으로써 학술 및 연구기능을 강화하고, 국회도서관은 전시기획 컨설팅과 전시업무를 지원받기 위해서였다. 같은 맥락에서 2021년 개관 예정인 국회도서관 부산분관은 초대형 라키비움으로 건축 중이다.

박물관계에서는 적극적인 변신을 도모하고 있다. 지난 8월 서울 서초구에 재개관한 국립국악원 국악박물관은 음악도서관 기능을 추가하면서 최종적인 목표를 라키비움으로 삼고 있다. 전시를 중심으로 한 박물관 기능을 수행하는 동시에, 우리나라의 전통악기는 물론 전 세계의 다양한 악기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지난해 말 연초제조창을 리모델링해 문을 연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의 두드러진 특징도 라키비움이다. 전시공간에 작품과 함께, 전시 중인 작가의 작품세계를 충분히 파악할 수 있는 도록 등 정보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전북 전주시에 있는 국립무형유산원 책마루도 대표적인 라키비움이다. 2020년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 인근에 개관할 임시정부기념관은 국가기념식을 거행할 수 있는 공간을 비롯해 자료 수집과 전시, 교육 등의 기능을 더한 라키비움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기존 기념관과 차별화를 노리고 있다.

수성구립 용학도서관도 라키비움 대열에 합류했다. 용학도서관은 지난 10월부터 대구시인협회와 함께 도서관 3층에 마련한 ‘시(詩)라키비움’을 본격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이 달의 시인’이다. 대구시인협회가 한 달 단위로 지역 시인을 ‘이 달의 시인’으로 선정해 시인의 작품집을 비롯해 육필원고, 초상화, 팸플릿, 서화 등을 시(詩)라키비움에 전시하고 있다. 프로필과 출간한 시집, 수상한 문학상 등 시인의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다. 특히 영상시대에 걸맞게 시인이 출연한 TV 프로그램이나 인터뷰 내용을 편집하거나 직접 촬영한 영상물을 제공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전시기간 중 한 차례 시인과 독자들의 만남도 마련하고 있다. 형식은 강연, 토크쇼, 콘서트 등 어떤 것이든 시인이 원하는 대로다. 지금까지 시(詩)라키비움에 등장한 시인은 10월에 이태수 시인, 11월에 이하석 시인, 12월에 이기철 시인이다. 내년 1월에는 박정남 시인이 등장한다.

용학도서관이 시를 주제로 한 라키비움을 조성한 이유는 최근 시집이 발간되어도 판매가 되지 않을 정도로 출판시장이 위축돼 있기 때문에 도서관에서 지역 시인의 시집을 수집하는 한편, 전시와 이벤트 등 다양한 방법으로 시의 향기가 지역사회에 퍼지도록 하기 위해서다. ‘시 흐르는 우리 마을’이란 슬로건도 내걸고 있는 용학도서관은 올해로 3년째 지역 어린이들이 참여하는 ‘우리 마을 동시암송대회’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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