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박세현

오늘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뉴스는 없습니다// 우리나라 국영방송의 초창기 일화다

나는 그 시대에 감히/ 행복이란 말을 적어 넣는다

- 시집『꿈꾸지 않는 자의 행복』(청하,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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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가 없다고 해서 행복해질 수 있을까. 어쩌면 뉴스가 없으면 심심하고 허전해서 되레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뉴스 중독자도 꽤 있으리라. 내가 아는 누구는 볼일 보러 화장실을 방문할 때마다 신문을 집어 들고 가는 버릇이 있다. 나중엔 신문을 보면 없는 똥이 마려워진다고 했다. 날이면 날마다 쏟아지는 경악을 금치 못할 끔찍한 사건사고와 어이없는 죽음들, 새삼스러울 것 없는 정치인의 오래된 추문들, 탐욕에 찌든 투기꾼들, 검찰이 무시로 양산해내는 각종 의혹들, 곳곳에서의 파열음들은 일용할 삶의 메뉴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시와 같은 상황이 실재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국영방송의 초창기 일화’라고 하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과는 비교 안 될 정도로 정보망이 빈약했을 터이고, 삶의 구조가 그다지 복잡하지 않아 방송으로 내보낼 마땅한 뉴스거리가 없을 수도 있으리라. 그리고 뉴스란 들어서 기분 좋은 내용 보다는 안 듣는 게 차라리 나을 것이 더 많으므로 사회적으로도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그런 시대에 찍는 행복의 방점도 수긍이 간다. 이 시의 탄생이 이른바 ‘땡전뉴스’가 뉴스의 맨 초장을 장식했던 시기임을 환기하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특별한 뉴스가 없는 시대를 사는 것만으로 행복을 말하기는 삶이 너무 소극적이지 않을까. 삶에서 마주치는 불행한 사건은 뇌리에 오랫동안 머물러도 행복의 순간은 그리 오래 기억되지 않는 속성이 있다. 아무 탈 없는 건강하고 평온한 상태를 행복이라고 말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일상의 상태를 거의 자각하지 못한 체 살아간다. 그러나 만약 큰 병을 앓다가 고통에서 구제되는 순간을 맞는다면 명명백백한 행복을 느끼게 된다. 병으로 힘들었던 기간은 고스란히 불행으로 인식됨은 물론이다.

그렇듯 행복은 우리의 삶에서 극적인 개선이 이루어졌을 때에만 강렬한 형태로 존재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맛보는 안도감이나 기대감이 그랬다. 의미 있는 진전이 꽤 있었지만 눈에 확 띄는 성과를 별로 내지 못했음에도 비교적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는 이유 또한 어떤 경우일지라도 예전의 정권보다는 낫다는 믿음을 허물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국민들의 자존심을 일그러뜨리지 않으리란 기대가 유지된 탓이리라. 앞으로도 그 지지가 유지될 지는 지켜볼 일이다. 그리고 행복은 느끼는 자의 차지라는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행복의 눈금을 올리고 총량을 늘리는 방법은 행복의 조건이 한두 가지밖에 없다는 생각을 우선 버리는 일이다. 옛날엔 행복의 3가지 조건을 섹스, 돈, 명예를 들기도 했다. 이 생각은 오래갔지만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우리가 정말로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3가지를 다르게 말했다. 행복은 큰 저택보다는 마음 맞는 친구들과의 우정, 독립된 인간으로서의 자유, 매일 자신과 대화할 수 있는 사색의 시간을 꼽았다. 일상과 주위를 잘 살피면 사소한 것들에서 수많은 행복의 숨은 광맥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마음만 먹으면 뉴스에 보도되지 않을 ‘행복어 사전’의 단어들은 얼마든지 널려있다. 그런 시대에 살면서 ‘행복이란 말을 적어’넣고 싶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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