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역 유일하게 거리의 모양에 의해 이름 지어져||명나라 두사충 장군의 흔적들 곳곳에 남

▲ 대구 남구 대명동에 있는 삼각지 네거리. 중앙에 교통섬을 두고 차량들이 돌아서 들어가는 로터리 형식의 구조다. 교통섬에는 테마공원이 조성돼 있고 섬유도시 대구를 상징하는 ‘가배놀이’ 조형물이 눈에 띤다.
▲ 대구 남구 대명동에 있는 삼각지 네거리. 중앙에 교통섬을 두고 차량들이 돌아서 들어가는 로터리 형식의 구조다. 교통섬에는 테마공원이 조성돼 있고 섬유도시 대구를 상징하는 ‘가배놀이’ 조형물이 눈에 띤다.








대구의 ‘9호 광장’은 대구 남구 대명동의 ‘삼각지 네거리’ 일대다.

삼각지 네거리는 중앙에 교통섬을 두고 차량들이 원형으로 회전해서 들어가는 로터리 형식의 구조다.

대구에 산재하는 70여 개소의 로터리나 네거리의 이름은 대체로 동명(洞名), 지명(地名)을 따거나, 혹은 행정 편의상 붙여진 번호에 의해 붙여졌다.

하지만 ‘삼각지 네거리’는 대구에서 유일하게 거리의 모양에 의해 이름이 지어진 곳이다.

중앙의 교통섬이 삼각형의 모양이어서 ‘삼각지 네거리’로 지었다.

예전에는 ‘삼각로터리’라고 부르기도 했다.

인근에 계명대 대명캠퍼스가 위치해 대학로가 조성돼 있고, 일대 노후한 주택가에 주택재개발 뉴타운이 곧 조성될 계획이다.

삼각지 네거리는 남북으로 뻗친 현충로가 북으로는 계대 네거리, 남으로는 앞산 로터리를 지나 앞산 순환도로까지 이어지며, 서쪽으로는 달서구로 향하는 통로다.

도시철도3호선 남산역이 인근에 있다.

남산역은 3호선 역 중 유일하게 지상과 붙은 가장 큰 규모의 역사다.



▲ 15년 전 삼각지 네거리의 모습. 교통섬이 비어 있어 지금보다는 다소 황량한 느낌을 준다.
▲ 15년 전 삼각지 네거리의 모습. 교통섬이 비어 있어 지금보다는 다소 황량한 느낌을 준다.






◆교통섬에 테마공원 조성

삼각지 네거리에는 중앙에 큰 교통섬이 있다.

1937년 도시계획에 따라 계명 네거리에서 앞산순환로에 이르는 현충로가 개설됐고, 이어 1987년 삼각지 네거리에서 성당 네거리까지 이어지는 양지로가 개통하면서 이들의 교차지점에 삼각형 모양의 교통섬이 만들어졌다.

이 교통섬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 남구청은 그동안 다양한 시도를 해 왔다.

남구청은 1997년 교통섬에 대형 분수대를 만들었으나 3년여 만에 가동을 멈췄다.

2002년에는 토끼를 방목해 키웠다가 토끼가 도로변으로 나오면서 교통사고가 발생해 다음해 방목했던 토끼 20마리를 달성군농업기술센터에 분양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2009년에는 교통섬에 테마공원을 조성하고 소나무와 야생화 등을 심었다.

특히 섬유도시와 컬러풀 대구를 상징하는 대형 조형물 ‘가배놀이’를 만들었다.

민족의 명절놀이인 ‘가배놀이’에서 착안해 만든 이 조형물은 높이 16m, 폭 18m에 달하며 섬유와 패션도시인 대구에 걸맞은 원뿔 형태로 역동적인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다.

야간에는 조형물을 중심으로 LED조명이 밝게 비춰 주변경관을 한층 더 아름답게 꾸며주고 있다.

교통섬으로 들어가는 횡단보도는 설치돼 있지 않아 눈으로만 즐길 수 있다.

남구청 관계자는 “‘가배놀이’ 조형물은 아름답고 산뜻한 이미지를 발산하며 지역의 랜드마크가 됐다.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관광객도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 1957년 대구 남구 삼각지 네거리 인근의 모습. 넓은 들판이 펼쳐진 가운데 저멀리 대구 시내가 보인다.
▲ 1957년 대구 남구 삼각지 네거리 인근의 모습. 넓은 들판이 펼쳐진 가운데 저멀리 대구 시내가 보인다.




◆명나라 두사충 장군의 흔적

대구 남구청에 따르면 대명동(大明洞)의 명칭 유래는 임진왜란과 정묘재란 때 조선에 원병 온 명나라 두사충(杜師忠) 장군에서 유래됐다.

두사충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명나라 제독 이여송과 함께 조선을 도우러 왔다.

그는 이여송의 일급 참모로서 작전 계획 수립에 참여했고, 조선군과의 합동작전을 할 때도 조선군과 전략 전술상의 긴밀한 협의를 하는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는 장수였다.

수륙지획주사로서 그의 활동과 공적은 높이 평가 되고 있다.

그는 당시 수군을 총괄하던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아주 친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임진왜란이 평정되자 고향으로 돌아갔다가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그의 매부인 진린 도독과 함께 다시 우리나라로 왔다.

이때 두사충은 충무공과 다시 만나게 됐다.

이 같은 일은 그가 쓴 ‘두릉두씨세보(杜陵杜氏世譜)’에서도 알 수 있다.

충무공은 명나라의 장수가 수만리 길을 멀다 않고 두 번씩이나 나와 도와주자 감격해 그에게 한시를 지어 마음으로 표하기도 했다.

그 후 정유재란도 평정되자 그는 고국에 돌아가지 않고 조선에 귀화했다.

두사충이 귀화하자 조정은 그에게 대구 시내 경상감영공원 일대를 주고 거기서 살도록 했다.

그 후 두사충이 받은 땅에 경상감영이 들어서자 그는 자기가 받은 땅을 모두 내어놓고 계산동으로 옮겨 편안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또 계산동 주위에 많은 뽕나무를 심었는데 이로 인해 이 지역을 ‘뽕나무 골목’이라고 부르게 됐다는 것.

수만리 떨어진 타국에서 누리는 행복이었기에 고향에 두고 온 부인과 형제들 생각에 두사충은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고 한다.

이에 그는 최정산(현 앞산) 밑으로 집을 옮겨 고국인 명나라를 생각하는 뜻에서 동네 이름을 대명골, 대명동이라 붙이고 단을 쌓아 매월 초하루가 되면 고국의 천자를 향해 배례를 올렸다고 전해진다.

대명단(大明壇)이 있었던 마을이라 해 대명골이라 불렸으며, 이 대명골이라는 지명에서 지금의 대명동이 됐다.







▲ 대구 남구 대명동에 있는 계명대 대명캠퍼스. 설립 초기 지어진 건물이 잘 가꾸어진 정원과 어우러져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곳은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 대구 남구 대명동에 있는 계명대 대명캠퍼스. 설립 초기 지어진 건물이 잘 가꾸어진 정원과 어우러져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곳은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영화 촬영의 명소 계명대 대명캠퍼스

삼각지 네거리와 인접한 계명대 대명캠퍼스는 1953년 미국 북장로회 주한 선교부 대표였던 안두화 선교사와 최재화 목사, 강인구 목사 등 교회 지도자들이 대학 설립 준비위원회를 구성해 1954년 계명기독학관을 설립한 것이 그 시작이다.

1978년 본격 종합 대학으로 승격해, 계명대학을 계명대학교로 교명 변경 인가를 받아 지금에 이르렀다.

대학본부는 개교 당시부터 1996년까지 남구 대명동에 있었으나, 1996년 달서구 신당동으로 이전했다.

현재 대명캠퍼스에는 대구디지털문화진흥원이 입주해 있고, 미술대학, 패션대학 그리고 평생교육원이 있다.

계명대 대명캠퍼스는 설립초기 지어진 붉은 벽돌과 담쟁이 넝쿨이 감싸고 있는 아름다운 건물과 잘 가꿔진 정원이 어우러져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다.

특히 영화 및 드라마 촬영지로도 각광받고 있다.

‘모래시계’부터 ‘동감’, ‘그해 여름’, 드라마 ‘사랑비’까지 많은 영화와 드라마가 이곳에서 촬영되기도 했다.







▲ 삼각지 네거리 인근에 조성된 대명공연문화거리 입구. 대명공연문화거리는 대구지역의 100여 개의 예술단체와 예술인 550여 명이 활동 중이다.
▲ 삼각지 네거리 인근에 조성된 대명공연문화거리 입구. 대명공연문화거리는 대구지역의 100여 개의 예술단체와 예술인 550여 명이 활동 중이다.
◆대구의 공연 문화 일번지

대구 삼각지 네거리 인근에는 ‘대명공연문화거리’가 조성돼 있다.

대명공연문화거리는 남구 계명대 대명캠퍼스 앞에 위치한 공연문화거리로 예술단체 약 100개와 예술인 550여 명이 음악, 공연, 미술, 복합문화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24개의 연극단체와 19개의 소극장 및 공연장이 조성된 지방 유일의 공연문화거리이다.

대명공연문화거리는 1996년 계명대학교의 대학본부가 달서구로 이전하게 되면서 번화했던 대명동의 대학가, 젊음의거리가 쇠락해 그 비워진 공간들을 예술가들이 채우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곳이다.

매년 로드페스티벌도 개최돼, 여러 극단의 각양각색의 작품들이 대명문화거리에서 동시상영된다. 올해 벌써 7회째를 맞이했다.

대명공연거리 일대는 2020년까지 문화특화지역으로 선정돼 있으며, 대명문화마을 조성사업도 곧 진행된다.

남구청 관계자는 “대명문화거리는 지역문화를 관광자원화하고 명품관광 도시의 이미지를 제고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전했다.





이승엽 기자 sylee@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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