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운석
▲ 박운석
술의 참맛은 입술만 적시는 데 있다

박운석

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12월, 몇 번의 송년모임을 가졌다. 술을 즐기는데다가 술과 관련된 몇몇 일을 하다 보니 술 권하는 계절, 12월이 반갑다. 시선(詩仙)이라 불리는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 701~762)의 시를 보고 무릎을 칠 만큼 말이다.

하늘이 술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 하늘에 술별(酒星 주성)이 있을 리 없고 / 땅이 술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 어찌 땅에 술샘(酒泉 주천)이란 지명이 있겠는가. 하늘과 땅이 다 술을 사랑했으니 / 술 좋아하는 게 어찌 부끄러우랴.

월하독작(月下獨酌)이란 시의 한 구절이다. 그는 권주가 장진주(將進酒)에서 “한번 마셨다 하면 300잔은 마셔야 하지 않겠느냐(會須一飮三百杯)”고 할 만큼 주선(酒仙)으로도 알려져 있다.

하지만 12월이 무작정 반갑기만 한 것도 아니다. 이맘때면 하루가 멀다 하고 술자리가 이어져서다. 이백이 말하는 삼백잔은 아니더라도 송년모임에선 폭음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개인차가 있기는 하겠지만 폭음은 어느 정도 마시는 걸까?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가 발표하는 ‘국민건강영양조사’를 참고하면 될 듯하다. 이 조사에서는 월 1회 이상 한 번의 술자리에서 7잔 이상의 술을 마시면 폭음으로 본다. 맥주든 소주든 상관없이 7잔(여자는 5잔)이 기준이다. 지난 10월말 발표한 ‘2018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서는 여성들의 폭음이 문제였다. 이 조사에서 남성 월간폭음률은 2015년 55.3%에서 50.8%로 소폭 감소했다. 반면 여성의 경우는 같은 기간 17.2%에서 26.9%로 증가했다.

이 기준으로 12월 한 달을 견주어보면 연이은 술자리를 자랑삼아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겐 뜨끔할 듯하다. 그렇다면 술은 어느 정도 마시는 게 적당한 양일까? 충남대병원 가정의학과 김종성 교수 연구팀이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인을 대상으로 연구된 알코올 문헌들을 조사해 적정음주량을 제시했다. 김 교수팀은 한국인의 체질을 감안한다면 남자들은 일주일에 8잔(여성은 4잔), 1회 최대 3잔(여성은 2잔)을 넘지 않아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연구팀은 또 술을 마시고 얼굴이 빨갛게 변하는 사람은 이 양의 절반 이하로 음주량을 줄여야 한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하지만 12월인데, 송년모임인데 그러다보면 훌쩍 적정음주량을 넘기기 일쑤다. 어떻게 보면 딱히 12월만 문제인 건 아닌듯하다. 음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도 급격하게 증가하는 추세다. 2018년 기준 음주가 문제가 되어 치료받은 연간 환자수는 연인원 2,880만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건강보험 총진료비와 급여액 등 재정지출 규모도 약 5조 원에 이른다.

이쯤이면 고전에 나타난 선조들의 말씀도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세종대왕은 술의 해악을 지적하며 백성들에게 술을 경계하라는 ‘계주교서(戒酒敎書)’를 내렸다. 영조가 대신이하 백관에게 금주를 명할 때 내린 말을 기록한 어제계주윤음(御製戒酒綸音)이라는 책도 전해져오고 있다. 술과 관련된 글을 많이 쓴 다산 정약용은 “술의 참맛은 입술을 적시며 천천히 음미하는 것이다. 술의 정취는 만취가 아니라 살짝 취하는 데 있다”고 했다.

시대가 많이 변했다. 한때 유행했던 두주불사(斗酒不辭)라는 단어를 아직도 써먹는 사람들이 있다. 말술이라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말로 주량이 그만큼 세다는 뜻이다. 하지만 술 많이 마시는 게 자랑은 아니다. 술 앞에 장사 없다지 않은가. 어느 잠언집에서 이런 말을 본 적도 있다. ‘강에 빠져 죽는 자보다 술잔에 빠져 죽는 자가 더 많다’.

그래도 이백은 술 마시는 게 어찌 부끄러우랴고 했다. 하지만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가 보기엔 아주 우울한 풍경이다. 여러 별을 여행하던 어린왕자는 세 번째 별에서 술꾼을 만났다. “뭘 하고 있어요?” “술을 마셔” “왜 술을 마셔요” “잊기 위해서야” “뭘 잊기 위해서요?” “부끄러움을 잊기 위해서야” “뭐가 부끄러워요?” “술 마시는 게 부끄러워!”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한 것이 술이다. 과음을 경계하기 위해 만든 잔인 계영배(戒盈杯)를 옆에 두고 넘침을 경계해야겠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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