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서는 내 삶을 좀 더 단단하게 채워준다. 한번쯤 생각해봤던 문제를 좀 더 깊이 들여다 볼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이번에 소개할 책은 평소 생활하면서 인지하지 못했던 나의 모습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할 시간을 열어주고, 우리가 몸담고 있는 제도를 돌아보게 한다.



◆위험한 사전

전해자 지음/초록비책공방/348쪽/1만6천 원

이 책은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말들을 들여다본다.

친구가 약속에 또 늦는다. 이때 ‘가끔 늦은 적이 있으니 좀 더 기다려보자’ 대신 ‘약속시간을 어기다니, 약속은 지켜야만 하는 거잖아’라는 생각이 든다면, 괜스레 더 화가 나고 그 친구가 왜 늦었는지 물어보고 싶지도 않게 된다.

생각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그것은 나와 세상을 바라보는 신념과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관계나 상황에 부딪혔을 때 ‘그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 대신 ‘그럴 리가 없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불행해진다. 그리고 후자의 생각처럼 당연히 해야 하고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당위에 사로잡힌 신념과, 그에 강박적으로 매달려 자신과 타인을 힘들게 하는 태도를 슈디즘이라고 한다.

슈디즘(shouldism)이란, 영어 단어 should(당위)와 ism(-주의)의 합성어로 독일의 정신 분석학자 카렌 호나이(Karen Honey)가 만든 용어이다. 지금 그대로의 현실을 인정하지 못해 자신을 못살게 굴고, 상대를 못살게 굴고, 세상을 못살게 만드는 ‘당위(~해야만 한다)’의 영향에 주목한다.

이름은 생소하지만, 그 모습은 매우 친숙하다. “반드시 …해야만 하고”,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당위에 사로잡힌 믿음이기 때문이다. 당위의 강도에 따라 성공의 엔진이 되기도 하고 강박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문제는 강박의 원인이 될 때이다. 이 경우 특정 부사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마땅히’, ‘반드시’, ‘절대로’가 그 주인공. 우리가 뱉는 말, 삼킨 말, 품은 말, 믿는 말, 그 어떤 형태로든 ‘마땅히’는 도리를, ‘반드시’는 계율을, ‘절대로’는 금기를 일깨운다. 준엄하고 단호하고 명료하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말속에서는 은밀하고 교묘하고 완곡하게 작동한다.

평소 사람과 사람 사이, 즉 ‘존재-관계-성장’에 관한 주제로 다양한 활동을 해온 이 책의 저자는 우리가 무심코 내뱉는 말들 속에 우리의 삶과 관계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위험한 말버릇이 있음을 깨닫고 저자 자신의 말과 주변의 말부터 작정하고 지켜보았다고 한다. 그중 우리가 흔히 쓰는 123개의 말버릇을 골라 말의 의미와 맥락 속에서 슈디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 책에서 펼쳐 보여준다.

아울러 ‘나는 어쩌다가 슈디즘에 빠지게 된 걸까?’, ‘그것만이 진정한 나인가’, ‘완벽주의자에게 현실은 왜 악몽인가’, ‘어쩌다가 나는 몸의 말을 듣지 못하게 되었나’, ‘나의 감정사전에는 몇 개의 단어가 있나’, ‘내가 말할 수 없는 것과 말해선 안 되는 것들은 무엇인가’와 같은 10개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게 해, 자신을 돌아보고 변화하는 삶을 모색할 수 있도록 돕는다.



◆도시는 어떻게 삶을 바꾸는가

에릭 크라이넨버그 지음/웅진지식하우스/372쪽/1만7천500원

세계 각국 구성원들은 어느 때보다 분열되고 고립되고 사회적 응집력은 약화된 시기에 살고 있다. 고령화는 심화하고 1인 가구는 급속하게 늘고 있으며 사회 구성원은 오프라인 커뮤니티 교류보다 온라인에 빠져 산다. 그 결과 사회는 불안정해지고 개인의 삶은 팍팍해졌다. 해결책은 뭘까. 저자는 사회적 인프라에 주목한다.



브루클린의 어느 도서관을 방문한 저자는 소외된 노인들이 도서관 커뮤니티룸에 모여 볼링 경기를 하는 모습을 우연히 목도한다. 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가 말한 ‘제3의 장소’와 에밀 뒤르켐이 말한 ‘집합적 열광’이 교차하는 희망의 순간이었다. ‘사회는 건물처럼 설계될 수 있다’고 믿게 된 그는 앞으로 민주사회가 이처럼 작은 방식으로 연결되 수 있는 공동의 장소나 필수적인 인간관계가 형성도는 공간들을 기반으로 건설될 것이라고 말한다.

나아가 가상의 온라인 공간이 아닌 실재하는 오프라인 공간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학적, 철학적, 건축학적 전망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또 버려진 건물들의 관리 여부와 주변 폭력 사건 증감과의 관계, 카페나 녹지의 수가 범죄 감소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 소규모 학습 공동체 형성으로 학업 성취도를 높이고 학생 범죄를 감소시킨 사례, 공동체 텃밭와 농장을 지어 지역민의 건강 문제를 해결하고 관광자원으로도 발전시킨 사례, 평시에는 삶의 질을 개선하는 공원과 광장이 재해 시 어떻게 주민 보호시설의 역할을 수행하는 지 등 전세계의 사례들을 보여준다.

총 6장에 걸쳐 우리 사회를 둘러싼 쟁점들을 다루며 도시와 가치와 미래를 조명하며 저자는 나와 다른 이들과 의미 이는 관계를 형성하는 것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진격의 독학자들

인문학협동조합 지음/푸른역사/260쪽/1만5천 원

‘독학자’란 무엇인가. 사전적으로 ‘스승이 없는 사람 혹은 학교에 다니지 아니하고 혼자서 공부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스승’이나 ‘학교’는 어디까지나 제도적 측면에 국한된 단어다. 진정한 독학자에게는 만인이 스승이며, 도처에 있는 게 학교다. 그런 점에서 독학자는 기성 제도로부터 탈주하거나 소외된 인간이지만 역설적으로 그 탈주와 소외로부터 수많은 배움의 단서를 풍부하게 획득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독학자는 지금 우리가 몸담고 있는 제도를 되돌아보게끔 한다.

저자들은 공부가 스스로를 만들어가고 발견하는 창조적인 과정이 아니라 그 자신을 체계적으로 소외시키는 노동으로 전락해버린 지금, 그 시스템 밖에서 스스로 길을 찾아 나섰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 책은 인문학협동조합에 몸담은 필자들이 중심이 돼 기존 제도 밖에서 독창적으로 배움의 길을 걸었던 스무 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역사적 인물에 대해서는 풍부한 자료 조사를 통해 여태 알려지지 않았던 측면들을 적극적으로 조명했고,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인물의 경우는 직접 찾아가 현장의 분위기를 담아냈다.

역사적으로 정치적 지배층이 지식의 생산과 유통을 독점하고 통제했던 예는 드물지 않다. 그건 앎과 배움이 협소한 지식의 문제를 넘어 정치적 지배의 문제와 밀접히 연관돼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민주주의는 단지 투표권의 획득에 불과한 것일 수 없다. 민주주의는 앎과 배움의 평등을 통해 만인이 통치의 주체가 될 자격을 지니는 정치 체제인 것이다.

저자들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평등의 조건으로서의 앎과 배움이라고 말한다. 현 교육은 특정 재화와 권력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합리적으로’ 구획하는 사회적 분할선으로 고착화되고 있다고. 이 책은 앎과 삶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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