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고 있는 ‘지방자치’

발행일 2019-12-05 15:14:35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서울공화국이니, 지방소멸이니 하는 얘기가 자주 들린다. 그럴 때면 지역에서는 너나 할 것 없이 지방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이 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낸다. 과연 균형발전과 지방분권만으로 가능할 수 있을까, 아니면 실질적으로 이를 뒷받침할 완전한 지방자치를 하는 게 해법이 될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본격 지방자치는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 선거가 동시에 있었던 1995년 7월1일을 대개 그 출밤점으로 본다고 한다. 그런데 그때부터 20년이 넘게 세월이 흘렀지만 ‘지방정치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가’란 물음은 여전히 계속된다.

사정은 현 정부 들어서도 별로 나아지지 않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취임 초기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을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그렇다. 얼마 전에는 지방분권전국회의가 지방분권을 국정 혁신의 중심 화두로 삼아야 한다는 성명까지 냈다. 애초 약속과 달리 정부가 지방분권 실현 의지와 구체적 실천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정부도 불만이 있을 것 같다. 계획한 지방분권 관련 법안이 몇 개월째 국회에 발목이 잡혀 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 지방이양총괄법, 자치경찰제 관련 법안, 주민조례 발안법, 주민투표법, 주민소환법 등이 그것인데, 특히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에는 주민참여 확대와 자치조직권 확대 등 지방정부의 제도, 인사와 관련된 중요한 내용이 들어 있다.

지방자치는 지방분권과 재정분권을 두 축이라고들 한다. 지자체가 살림살이를 스스로 꾸려 갈 수 있게 하는 재정분권은 지방자치가 제대로 굴러가기 위해 필요한 본질적 요소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재정분권 실천을 촉구하는 지방정부의 호소는 여전히 메아리 없는 아우성일 뿐이다.

자치단체 대다수는 곳간이 비어 있다. 그래서 정부의 지원으로 겨우겨우 살림의 균형을 맞춰가고 있는 형편이다. 재정자립도(2018년 기준)를 보면 대구 54.2%, 경북 33.3%이고, 전국 평균도 53.4%에 그치고 있다. 정부는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현재 8대2 수준에서 최대 6대4까지 높이겠다고 제시했지만 그 목표 달성은 요원해 보인다.

현재와 같은 지자체의 재정 구조는 정부와 지자체를 종속적 관계로 만들어 놓아 결국 그 피해는 국민이 떠안을 수밖에 없게 된다.

예산편성 때면 모든 지자체는 단체장과 간부 공무원들이 총동원돼 중앙정부를 찾아야 한다. 또 국회의 예산심의 철엔 여의도를 찾아다니느라 열심이다. 이 과정에서 지자체는 정부 고위인사 중에 지역 출신이 누가 있는지를 찾느라고 시쳇말로 사돈의 팔촌까지 모든 연줄을 동원하고, 또 지역 국회의원들한테는 예산확보에 도움을 받기 위해 온갖 비위를 맞춰가며 아쉬운 소리를 하게 된다.

다시 말해 불완전한 지방자치로 인해 국회의원, 자치단체장, 지방의원의 사이에 갑을 구조와 줄서기 행태가 만들어지게 되고, 이는 결국 지역에서 건강한 견제와 균형을 사라지게 해 그 피해가 지역민들에게 다양한 형태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이를 두고 “자치는 없고 지방선거만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나마 어렵게 받아 낸 예산이지만 또 현장에서는 허투루 사용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상황이 딱 맞지 않을 순 있겠지만 구조는 대개 유사하다. 연말이면 지역마다 멀쩡한 보도블록을 갈아엎고 새로 까는 공사를 흔히 보게 된다. 구청이나 시, 군으로서는 남은 예산을 반납하게 되면 다음번 예산편성 과정에서 혹시라도 삭감당하는 불이익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되기 때문에 일단 쓰게 된다는 것이다.

자기 돈이라면 절약해서 더 긴요한 데 쓰려는 게 상식적인 판단이고 행동일 텐데, 지금과 같이 중앙정부에 의존하는 지자체의 입장에서는 이런 일이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회는 받는 돈으로 한해 한해 쓰는 살림이다 보니 장기 계획보다는 치적 쌓기나 보여주기식 사업에 눈을 돌리게 된다는 것이다.

지방소멸을 막으려면 국가의 균형발전이 돼야 할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지방자치가 제대로 뿌리내려야 한다는 데 모두 공감한다. 그렇다면 완전한 지방자치의 핵심축인 지방분권과 재정분권은 미뤄 둘 수 없는 최우선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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