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어지는 결혼생활, 늘어나는 황혼이혼

윤정대

변호사

과도한 단맛에는 쓴 맛이 존재한다. 단맛이 입안에서 사라질 때 쓴 맛이 남듯이 인생도 단맛과 쓴맛의 아이러니-모순으로 가득 차있다. 그 중의 하나가 이혼이다. 아담과 이브의 행복한 결혼의 결말이 이혼이라니! 누구나 결혼을 할 때는 이혼을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통계에 따르면 2018년 혼인건수는 25만7천 쌍인 반면 같은 해 이혼건수는 10만8천 쌍이다. 그해 결혼해서 그해 이혼하는 것은 아니므로 단순비교 하는 것은 무리지만 56만4천명이 결혼하고 21만6천명이 이혼하였으므로 결혼하는 3쌍 중 한 쌍이 이혼에 이른다고 보더라도 틀린 것은 아니다.

이혼은 결혼 초반에도 많이 하지만 20년 이상 혼인생활을 한 부부의 이혼율이 가장 높다. 오래 함께 산다고 해서 서로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쌓인 것이 아니라 부부가 함께 살아오면서 문 정부의 구호인 적폐처럼 불만이 오래 동안 누적돼 이혼에 이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제 이혼법정에서 황혼이혼 부부들을 보는 것은 흔한 일이다.

며칠 전 이혼법정에서 본 풍경이다. 젊은 여자 판사 앞에서 70대 부부가 서로를 비난하고 있었다. 원고석에 있는 할머니는 화장을 해서인지 모르겠지만 혈색이 좋고 통통하게 보였다. 반면에 피고석에 앉은 할아버지는 키는 크지만 구부정했다. 할머니의 이야기는 남편이 평생을 술을 마시고 바람을 피웠다는 것이고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아내의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고 자신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 가족들을 부양했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뭔가 목소리가 기어 들어가고 수세에 몰려 있는 반면 할머니의 목소리는 더 크고 더 단호하고 확신과 자신감에 차 있었다. 법대 위의 판사는 여기는 싸우는 곳이 아니라 재판을 하는 곳이라고 말했지만 할머니의 할아버지에 대한 비난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대부분 변호사들은 이혼 사건을 맡아 가정법원에 드나든다. 이혼이 자주 벌어지는 일이고 협의이혼이 아니라 소송으로 이혼하는 경우가 전체 이혼 건수의 1/3 정도이기 때문이다. 흔히 사람들은 이혼사건을 많이 맡는 변호사라고 하면 부정적으로 본다.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부부가 이혼하도록 부추기는 것으로 의심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혼을 원하는 의뢰인에게 이혼사유를 찾아주려는 변호사는 있지만 이혼하라고 권유하는 변호사는 없다. 이혼을 권유한다고 이혼하는 사람도 없다. 결혼 초반에 새로운 출발을 원하여 이혼을 원하거나 오랜 결혼에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이혼을 하는 것일 뿐이다.

이혼을 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협의이혼과 재판상 이혼이다. 협의이혼은 소송을 거치지 않고 부부가 합의하여 이혼하는 방법이다. 협의이혼을 하고자 하는 부부는 먼저 가정법원에 이혼의사확인신청을 하면 가정법원은 부부에게 미성년 자녀가 있는 경우는 3개월, 미성년 자녀가 없는 경우는 1개월의 숙려기간이 지난 후 이혼의사확인서를 발급해준다.

부부 중 한쪽이라도 이 이혼의사확인서를 첨부하여 관할 시, 구, 읍, 면사무소에 이혼신고를 하여야 법률적으로 이혼한 것이 된다. 그런데 가정법원으로부터 이혼의사확인서를 발급받더라도 이혼신고를 접수하기 전에 부부 중 한쪽이라도 시, 구, 읍, 면사무소에 미리 이혼의사를 철회하면 이혼의사확인서는 효력을 상실하여 원점으로 돌아간다.

재판상 이혼은 부부 중 한쪽 또는 쌍방이 이혼사유를 들어 소송을 제기하는 방법이다. 법원이 이혼청구를 인용하는 판결이나 이에 준하는 결정을 하면 판결이나 결정을 받은 때에 법률적으로 이혼한 것이 된다. 이혼신고는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다. 도중에 이혼소송을 취하하거나 패소 당하지 않는 이상 원점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다.

이혼 재판을 마치고 범어동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선배 변호사와 같이 오게 됐다. 선배 변호사는 “원래 부부는 전생의 원수끼리 만난다는 말도 있다”면서 이야기를 덧붙였다. TV에서 노부부들이 나와 상대방이 설명을 듣고 단어를 맞추는 프로그램인데 아마 답이 백년해로였던 것 같았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당신과 나 사이”라고 설명하니 할머니가 “웬수”"라고 대답하여 당황한 진행자가 네 글자라고 알려 주었더니 할머니는 “평생웬수”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수명이 늘어나면서 결혼기간도 늘어나고 있다. 결혼기간이 늘어남에 따라 어쩌면 결혼생활이 지루한 일이 되고 불만이 더 많이 쌓여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결혼생활이 길어질수록 배우자에 대해 더 관대하고 더 현명하게 대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한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