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바보로 만들지 마라

발행일 2019-11-28 14:47:26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국민을 바보로 만들지 마라

자유한국당이 21대 총선에서 현역의원의 절반을 물갈이 하겠다고 방침을 정한 모양이다. 지역구 국회의원의 30%를 아예 공천에서 배제하겠다는 말도 나온다. 하긴 역대 선거때마다 이런 물갈이론이 회자됐고 또 실제로 이뤄졌던 전례로 미뤄 아주 허풍은 아닐 것이다.

내년 총선에서 현역 의원을 다시 뽑겠느냐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50% 이상을 물갈이해야 한다는 응답자가 38.5%나 됐다는 조사 결과(코리아리서치, 중앙선관위 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고)도 있다. 하긴 역대 총선에서 초선의 비율은 늘 40%를 유지했다. 20대는 44%였고 19대는 49.3%, 18대는 44.8%, 17대는 62.5%가 초선이었다.

총선을 앞두고 여기저기서 불출마 이야기가 나오면서 야당인 자유한국당을 압박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에서도 3선의 김세연 의원이 불출마 선언을 하면서 ‘존재 자체가 민폐’인 ‘좀비정당’이라고 돌직구를 날렸다. 그러면서 황교안 대표나 나경원 원내대표를 포함, 한국당 의원 전원이 오늘의 사태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자기가 살던 집에 불을 지른 것이다.

당의 지지율을 끌어 올리는 방법으로 새 물을 바꿔 놓는 것도 한 방법이 된다. 3당 합당으로 대권을 거머쥔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4년 15대 총선에서 새 물을 바꿔 총선을 이겨보고 싶었다. 그 때 등장하는 인물이 이명박 서울시장과 모래시계 검사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 민중당 출신의 이재오 김문수 등 재야운동가들이었다. 이회창 이홍구 전 총리들도 그때 가세했다. 전국 253개 지역구 중 121개 선거구에서 압승하면서 전체 139석을 챙겨 제1당이 됐다.

박근혜 정권의 20대 국회의원 물갈이는 어떻게 됐나. 지역출신 초선의원의 면면을 한 번 보자. 대구의 12개 선거구 중에 자유한국당은 11명의 후보밖에 내지 못했다. 친박 논란의 진원지인 대구에서 친박과 진박, 원박 간 이전투구는 유승민 후보의 공천을 놓고 동구을은 끝내 후보조차 내지 못했다. 결과 대구 12개 지역구 중 자유한국당은 8명의 당선자를 내는 데 만족해야 했다. 그 중 5명이 초선이었다.

경북은 13개 지역구를 한국당이 싹쓸이했다. 워낙 이 지역 정치색이 보수 일색이어서인지 제대로 된 야당 후보를 만나지 못해 무투표 당선이나 다름없는 쉬운 본선을 치른 의원들도 많았다. 이 중 절반이 넘는 7명이 초선이었다.

그러나 이들 중 2명은 임기도 채우지 못하고 중도에 강제 탈락당했다. 전국적으로 적폐의 타깃이 된 인사들이 대구·경북 지역에 똬리를 틀었고 온갖 루머의 원인제공자가 된 의원들도 지역에 있다. 지난 해 6월 지방선거에서 자신의 지역 단체장 후보를 잘못 공천해 작대기만 꽂으면 당선된다는 지역에서 단체장을 무소속이나 또는 민주당 후보에게 내주는 패전의 용병술을 보인 의원들도 여럿 있다.

그뿐 아니다. 그들은 지역 발전에도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했으니 시간만 나면 문재인 정권의 지역차별 탓만 할 뿐 정작 자신들의 역량 부족이나 게으름 탓으로 돌리는 국회의원은 보지 못했다. 더구나 자신이 그렇게 성공시키겠다고 다짐하던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구속돼 실형을 선고받을 때까지 누구도 책임진다거나 부끄럽다며 의원직을 내놓는 의원도 없었다. 이러고도 다시 이런 국회의원을 공천한다면 이번에는 지역민이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괜히 하는 말이 아니다. 지난 선거에서 그 본보기를 보여주었다. 대구에서도 민주당 국회의원이 당선됐고 경북에서도 민주당 단체장을 뽑았던 경험을 갖고 있다. 지역민의 뜻에 반하는 의원, 눈높이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후보라면 이젠 더 이상 이 지역에서 막대만 꼽으면 당선되는 행운을 누릴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유권자들도 교육 되고 수준도 높아졌다.

자신을 희생할 줄 모르고 일신의 영달을 위해 금뱃지를 달겠다는 사람, 다른 곳에서 단물 다 빨아먹고는 그 영향력이나 유명세로 정치지도자 반열에 오르려는 사람을 걸러내는 수준에 도달했다. 그것이 보수를 보수답게 만드는 길이라는 것을 터득한 셈이다.

물갈이도 좋다. 그러나 더 이상 국민을 바보로 만들지 마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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