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방위비협상에 대한 단상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한미방위비분담금협상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주한미군이 감축돼도 미국의 대폭 인상 요구를 수용해서는 안 된다’는 응답이 68.8%, ‘주한미군이 감축될 수 있으므로 수용할 필요가 있다’는 응답이 22.3%였다. 20~30% 퍼센트 정도 인상하고 마무리하라는 의미로 읽힌다. 일시에 여섯 배 인상해달라는 요구는 터무니없다. 한미동맹을 돈벌이 대상으로 보는 시각은 천박하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독단과 집착이 요지부동이라 치밀한 대응이 절실하다. 총선을 앞 둔 상황이라 여론 동향을 무시하기는 곤란하겠지만 국가 중요정책을 여론조사로 결정할 수는 없다.

국가 간 협상은 총성 없는 전쟁이다.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병법의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상대방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상대방인 미국의 본심을 파악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미국을 이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바가지를 씌우고 있다. 가난한 나라라면 그래도 참을 만하다. 대한민국은 미국과의 무역에서 엄청난 흑자를 보는 부자나라다. 미국은 더 이상 봉이 아니다. 더 이상의 공짜 안보는 없다. 주한미군에 대한 정당한 비용을 받아야 한다. 미국의 본심에 대한 첫 번째 가설이다.

대한민국은 미국만큼 부자도 아니고 강대국도 아니다. 미국은 세계 패권국이긴 하지만 봉이었던 적은 없다. 대한민국은 주한미군에 대해 정당한 비용을 부담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정당한 비용이 주안점이다. 미국은 헤게모니를 지키기 위해서 중국과 러시아와 북한을 견제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그 최전선에 있고 주한미군은 자연스런 귀결이다. 따라서 주한미군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은 원칙적으로 미국 부담이다. 대한민국도 북한을 비롯한 이웃나라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군대를 보유한다. 양국의 잠재적 적이 일치하는 점이 한미동맹의 바탕이다. 협상 목적은 정당한 비용배분일 뿐이고 미군 철수는 의제가 아니다. 비용배분은 그 수혜 정도에 비례한다. 대한민국이 필요한 군사력 총량에서 한국군의 전력을 뺀 나머지를 주한미군이 감당한다. 그 부분을 환산한 금액이 대한민국 부담분이다. 한국영토 내에 미군 주둔을 허용하는 특권과 그 주둔지에 대한 토지임차료는 상호 정산해야 할 부분이다. 반면 중국과 러시아를 방어할 수 있는 군사력 총량에서 주한미군의 군사력을 뺀 나머지가 한국군의 기여분이다. 시너지도 발생한다. 결과적으로 주한미군은 윈윈전략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부분을 잘 이해해야 한다.

한편, 미국의 본심이 방위비 협상이 아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주한미군철수가 히든카드일 수 있다. 무리한 인상을 강력히 요구하는 저의가 미군 철수에 있다는 가설이다. 주한미군 3만 2천 명을 집으로 데려오고 싶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은 이러한 가설을 뒷받침해 준다. 일본, 필리핀, 대만, 베트남, 인도를 태평양·인도 전략의 방어선으로 설정한다면 주한미군은 철수대상이다. 비용편익분석으로 그런 결론이 날 수도 있다. 북·중·러 라인에서 북한을 떼어내어 북방동맹을 약화시키고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한국과 일본까지 견제하는 전략을 황당하다고 배제하긴 어렵다. 공산독재국가 북한을 미국의 동맹국으로 만들긴 어렵겠지만 주한미군을 철수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우호국 수준으로 끌고 갈 순 있다. 김정은에게서 아름다운 편지를 받았다는 트럼프의 말을 허투루 들을 수 없다. 최악의 시나리오다.

만약의 경우에 대비한 플랜 B를 준비해야 한다. 일본, 대만과 협조하여 핵을 함께 보유하는 전략을 모색할 수 있다. 중국과 러시아를 당겨와 미국을 견제하는 ‘벼랑 끝 전술’도 선택지다. 최근 한국, 중국 간 해군·공군 직통전화 논의 등을 압박 카드로 활용할 여지가 있다. 협상 카드를 넘어 ‘한중 밀착’으로 이어지지만 않는다면 유용한 제스처일 수 있다. 힘이 지배하는 국제사회엔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 힘을 기르는 방법이 최선이겠지만 지정학적 위치와 영토 그리고 인구라는 주어진 제약으로 인해 그 한계가 있다.

독재자 김정은을 다정한 친구라면서 혈맹을 태연히 압박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기가 막힌다. 전통적 동맹을 지원하는 것을 ‘나쁜 거래’라 생각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점에서 한미 불화가 비롯됐다는 지적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존심을 접고 살아남는 지혜를 찾아야 한다. 분수에 맞는 처신으로 정체성을 지키는 전략적 선택이 필요한 시점이다. 역사 속에서 사라져간 약소국들의 운명을 생각하며 지금의 굴욕을 극복해야 한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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