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봉 논설위원

“높은 분들은 코빼기도 안 비친다.” 울릉도 소방헬기 추락 사건 이후 유가족이 내뱉은 자탄이자 하소연이다. 유가족들은 국무총리실에 전화했지만 자리에 없다는 이유로 통화조차 못했다며 섭섭해했다. 대형 사건사고 현장마다 곧잘 터져 나오는 목소리다.

희생자 가족들은 정부 고위층과 경북도지사 및 대구시장이 대책본부와 현장을 찾지 않은 데 대해 섭섭함을 토로했다. 그러자 사고 6일 만인 지난 5일에야 진영 행정안전부장관이 실종자 유가족을 만났다. 다음 날엔 이철우 경북지사와 권영진 대구시장이 찾았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사고 열흘 만에 실종자 가족과 대면했다. “이제 와서 미안합니다. 실종자 수색을 절대 포기하지 않겠습니다”라며 머리를 조아렸다. 지난해 7월, 군 장병 5명이 숨진 포항 마린온 헬기 추락 사고 때도 유가족들은 정부의 미온적인 대응과 국무총리 및 국방부장관이 현장을 찾지 않은 점을 극렬 성토했었다.

천안함과 연평해전 유가족들은 지난 3월 열린 ‘서해 수호의 날’ 행사에 문재인 대통령이 2년 연속 불참하자 몹시 섭섭해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유가족은 문 대통령이 한 번도 공식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며 서운해했다. 모두 ‘코빼기(코의 속된 말)’를 안 비친 소통 부재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사회 곳곳 소통 부재, 국민 불만 쌓여 저항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을 약속했지만 지금까지 소통은 없었다. 취임 2주년 때는 기자회견 대신 KBS 기자와의 대담으로 대신했다. 출범 때 약속한 소통은 오간데 없었다. 소통이 단절되면서 사회 곳곳에서 불만이 쌓여갔다. 저항은 커져 갔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야당은 대통령이 소통과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박근혜 정부 때는 대통령을 불통의 ‘아이콘’이라고 몰아붙였다. 그랬던 것이 불과 2년 반 만에 역전됐다.

공자도 소통을 중시했다. 공자는 노나라에서 사구(司寇) 등의 관료로 잠시 정치에 몸담고 덕치를 실행하려 했으나 이루지 못했다. 그 후 여러 나라를 떠돌며 군주들에게 덕치를 주창하고 자신을 써 주기를 바랐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덕치는 공염불이 됐고 공자는 실패한 정치인이 됐다. 하지만 그는 인류의 큰 스승이 됐다. 공자의 성공 비결은 제자들과의 소통이었다.

공자가 위나라를 방문했을 때다. 군사를 담당하는 왕손가가 공자를 찾았다. 왕손가가 공자에게 물었다. “공자께서는 우리 신하들과 함께 있겠습니까. 아니면 왕과 함께 하겠습니까”라며 공자의 의중을 떠봤다. 왕도정치를 주창하는 공자는 결국 왕과 만나지 못했다. 답답해하던 공자는 어느 날 남성 편력이 심한 위나라 왕 영공의 부인인 ‘남자’에게 부름을 받는다. 아무도 만나 주지 않아 초조했던 공자는 남자의 청을 수락한다. 그러자 자로가 공자에게 따졌다. 이에 공자는 “부끄럽구나. 하늘이 나를 벌할 것이다”라고 말하며 고개를 떨궜다.

비슷한 사례는 논어 곳곳에서 발견된다. 조급증에 빠진 공자가 불의한 군주들의 부름에 응했다가 제자들의 빈축을 사고 자책한 후 곧바로 돌아서곤 한다. 이것이 공자의 위대한 점이다.

-공감과 소통은 사회 변화의 원동력

공감과 소통은 인간관계에 깊은 정서적 유대감을 갖게 해 사회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소통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굴러간다. 소통은 아무리 두터운 벽이라도 깰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곳곳에서 소통 부재를 외치는 소리가 넘쳐난다. 사회 한 축이 단단히 탈 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임기 반환점을 돌며 경제정책과 관련해 국민과의 소통 강화를 1순위 과제로 정했다. 19일에는 TV 생중계로 진행되는 국민과의 대화에 나선다.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것이다. ‘쇼통’을 걱정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공자는 ‘군자는 두루 어울리되 사사로이 무리 짓지 않고, 소인은 사사로이 무리 짓지만 두루 어울리지 못한다(君子周而不比 小人比而不周)’고 설파했다. 소통의 중요성을 일깨운 말이다. 대통령부터, 기초단체장까지 높은 분들은 국민 앞에 자주 ‘코빼기’를 내비치시라. 그래야 세상이 덜 시끄럽다.



홍석봉 기자 dghong@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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