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대/ 허정분



어린 시절에도 미래가 있다고 여겼다/ 하얀 가루 떡가루를 자꾸자꾸 뿌려줍니다/ 노래가 현실이 된다면 흰 죽사발 가득 고봉으로 얹힌 떡 마른 침을 삼켰다/ 봄꽃이 지고 오래된 농담처럼 입하나 덜겠다던 아버지가 산으로 가셨다/ 지병을 만장처럼 앞세운 불혹의 나이셨다/ 꺼이꺼이 곡소리 장단을 맞추는 오라비와 상여꾼 틈에서 오줌을 갈기는 동생도 미웠다/ 아버지 생전에도 철천지원수와 산다던 어머닌 부뚜막을 헐고 노구솥을 꺼냈다/ 워낭을 매단 소달구지가 낡은 이불과 그릇 몇 개를 허름한 초가 행낭채에 부렸다/ 날품 팔러간 들판 개망초 흰꽃이 옥양목처럼 펄럭였다/ 밤이면 반딧불이 허공을 선회했고 섬광을 그으며 유성별이 떨어져 내렸다/ 산자락 소나무 켜켜이 쌓아가는 흰 눈의 무게에 생살을 찢는 그 겨울 첫 달거리를 했다/ 덧없이 미래에 기댄 까마득한 날이 흘러 흘러갔다

- 시집『울음소리가 희망이다』(고요아침,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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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 성장기는 삶의 과정에서 가장 보편적인 통과의례이자 가혹한 변화의 시기다. 좋든 싫든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성장을 멈추기란 불가능하고, 누구도 그러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어른들은 흔히 십대 시절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라고 말한다. 그 시절엔 생에 대한 심각한 고민도, 세상에 대한 두려움도 없이 마냥 좋기만 한 순수의 시간들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건 돌이켜 보았을 때 그렇단 얘기지, 그 시기의 그들은 동의하기 힘들 것이다. 어른들의 말과 달리 십대엔 대개 시험과 입시에 시달리는가 하면 또 더러는 일찌감치 불우한 환경에 맞서야하고 사춘기도 겪는다. 이래저래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시기다.

바람만 불어도 흔들리며 그 요동은 통증으로 반응한다. 십대들이 겪는 아픔도 고역도 방황도 실패도 모두 삶의 한 요소이다. 성장통은 지나고 보면 짧은 순식간의 바람처럼 여겨지지만 그 시기에는 조바심과 지루함으로 가득한 순간순간들이다. 그 순간들을 떠올리며 아무렇지 않게 미소 짓거나 추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만, 미래를 위해 혹독한 대가를 지불했거나 견디기 힘든 질곡의 나날이었을 경우 울컥 암울한 고통들이 역류되어 먹먹해지곤 한다. 가족들은 덫이자 굴레일 뿐이었다. 비루하고 신산한 삶들이 불운을 원망할 겨를도 없이 천형처럼 몸을 옥죈다. 어서 빨리 질척대는 가난과 고단에서 벗어나 세상 밖 미래로 뛰쳐나가야 했다.

반세기 전의 전태일도 그러했으리라. 추운 날씨에 수능시험을 치루는 수험생도 온몸에 불안을 휘감고 있다. 전태일은 “대학생 친구 한 명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대학생이 사방천지 널려있는 세상이다. 대학진학률이 80% 넘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그럼에도 수능시험은 여전히 인생의 전부가 걸려있는 최대 관문이라 여긴다. 적성에 맞는 대학이라는 등 말로는 둘러대지만 출세하고 대접받고 행세부리기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안간 힘들이다. 대학 나와도 별 볼일 있기가 쉽지 않은 세상이지만 여전히 대학을 나오지 않고는 사람 취급을 못 받는다. 6~70년대엔 ‘가정 형편상’ 대학진학을 포기하는 일이 여사였다. 시인의 십대에도 물론이거니와 여자는 더욱 그랬다. 눈물을 삼키고 입술을 깨무는 일이 잦았다. 그런 가운데서도 시인은 ‘미래가 있다고 여겼다.’ 그 미래가 문학이었던 셈이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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