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수필대전, 양동 풍경

발행일 2019-11-17 20:00:0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입선 송시내

여름 한낮, 양동은 정적이 흐른다. 강렬한 햇살이 무색하도록 마을은 숙연한 분위기다. 견딜 수 없는 더위에 온몸은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다. 시간은 언제부터 멈추었을까. 낡은 흑백사진 속을 걸어가는 느낌이다. 양동 풍경

마을 입구에부터 구릉의 언덕배기를 올라가며 자리 잡은 기와집들이 주변의 풍경과 더불어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같은 공간이지만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이곳은 단순히‘좋다’와‘나쁘다’로는 표현할 수 없는 묘한 울림이 있다. 관가정(보물 제442호)과 서백당(중요민속자료 제23호), 향단(보물 제412호), 무첨당(보물 제411호)까지 사대부의 고택들이 처음 건축되었을 때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단정하게 서 있다. 담이 나지막한 골목을 걷다 보면 대문이 열리고 열 살 무렵의 댕기를 두른 아씨가 얼굴을 내밀 것만 같다. 키 큰 접시꽃이 호기심 가득한 아씨처럼 담장 밖을 구경한다.

아마도 소작인의 집이었을까, 한길 쪽으로 반쯤 열린 나무 대문이 눈에 들어온다. 이끌린 듯 다가가서 문안을 들여다본다. 가르마처럼 정갈하게 가꾼 텃밭과 반질반질하게 손질한 장독대가 먼저 시야에 들어온다. 잔디를 심은 조그만 마당을 가운데 두고 기와지붕의 본채와 슬레이트 지붕의 아래채가 얌전하게 앉아있다. 모든 것이 친숙한 풍경이다. 방학이면 찾아가던 외할머니댁이 연상된다. 그 집에서 하루를 묵기로 결정한다.

볼이 발그레한 주인 할머니는 열아홉에 영천에서 시집와서 육십여 년을 양동에서만 살고 있다고 하신다. ‘평생을 양동에서만 사셨으면 세월의 파도에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편안하지 않았을까?’나는 알고 있다. 우물 안의 세상은 고요해서 작은 바람에도 오히려 더 크게 흔들린다는 것을.

하얀 머리칼을 곱게 넘겨 짧은 은비녀로 쪽을 찌던 외할머니도 그랬다. 일제 강점기 산청 지리산 자락에서 나고 자라 그곳에서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외할아버지와 결혼을 했다. 아이를 낳고, 해방을 맞이하고, 한국전쟁을 경험했다. 낮엔 국군이, 밤엔 빨치산이 마을로 내려오던 질곡 속에서도 가장 중요한 문제는 먹고사는 것이라 주변으로 곁눈질 한번 할 틈이 없었다. 자녀들이 성장해서 모두 출가하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허리를 펴고 머리 위 하늘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것도 잠시, 중동에서 생때같은 아들을 잃었다. 아들의 시신을 수습하기가 무섭게 며느리는 아들이 남긴 보상금을 챙겨 손주를 앞세우고 떠났다. 평생을 그리움 속에 살던 외할머니는 모든 기억을 놓아버리고 요양원에서 삶을 마감하셨다.

주인 할머니 얼굴에서 돌아가신 외할머니 얼굴이 중첩되어 보인다. 이분은 어떤 삶을 사셨을까, 500년 동안 관습에 굳어진 작은 마을에서 평생을 살아왔다면 그것이 안온한 삶이었을까? 외할머니의 삶이 결코 개인만의 것이 될 수 없듯 이 집 할머니의 삶도 편안한 삶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곳간에 쌀이 얼마나 있는지, 부엌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하다못해 지난 장날에 사온 치마의 붉은색조차 숨길 수 없는 집성촌에서 개인의 삶은 언제나 집단에 귀속되어 왔을 것이다. 옆집 숙부댁, 뒷집 할머니댁, 여강 이 씨, 월성 손 씨의 삶 하나하나는 씨줄과 날줄로 직조되어 양동마을 500년의 역사가 되어온 것이 아닐까.

‘항상성(homeostasis)’이라는 용어가 있다. ‘생물체 내부 환경을 변화시키지 않거나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으로 정의되는 말이다. 이는 외부 환경이 변하더라도 내부 환경은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항상성의 개념은 사회체계와 가족에도 적용된다. 내외부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응해 사회체계와 가정생활의 균형과 안정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집단은 그 구성원들에게 협력과 보충을 요구한다. 적당한 통제와 사회화가 공동체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500년 동안 마을은 하나의 생물체처럼 항상성을 지니게 된 것이 아닐까. 시간과 공간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의식은 변화하였지만, 마을 자체가 스스로 항상성을 유지하도록 애쓰지 않았을까. 그것이 인간의 의식을 지배해서 양동 정신을 이룬 것은 아니었을까. 기쁨과 슬픔이 연대되어 평생을 그루터기처럼 마을을 지키는 양동의 정신이 되어온 것이 아니었을까.

담장엔 봉숭아가 피고, 마당엔 살구나무가, 텃밭에는 오이가 자란다. 아이들은 골목을 뛰어다니며 까르르 웃는다. 저녁이 되면 부엌에서 달그락달그락 도마 소리가 난다. 젊은 새댁은 분꽃을 꺾어 꽃술을 길게 늘어뜨린 귀고리를 만들어 내 귀에 걸어준다. 할머니는 주름진 손으로 낡은 이불을 반듯하게 개어 놓으신다. 할머니의 할머니는 사각사각 속삭이는 소리가 나는 이불을 덮고 누우셨을 것이다.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 품 안 같은 햇살 냄새가 난다.

밤새 꿈을 꾸었나 보다. 문 밖에선 바지런한 주인 할머니의 비질 소리가 들린다. 몇 번쯤은 목이 꺾이었을 낡은 선풍기는 그 밤 내내 밭은기침처럼 바람을 토해내고 있었다.

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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