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선 강대식



비가 흐느적거리며 내린 다음 날 찾은 봉정사 영산암은 고요하기만 하다. 일요일이라 방문객이 많을 법도 한데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이상하리만큼 사람의 발자국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영산암을 혼자 차지한다는 것은 복 받은 일이다. 이런 큰 횡재를 언제 해 보았던가. 평소에 큰 공덕을 쌓기 전에는 불가능할 것 같은 행운이 따라온 것이다.

툇마루에 걸터앉아 하늘을 보니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평화롭게 하늘을 유영한다. 나만큼이나 한가롭다. 살아오면서 앞만 보고 뛰다 보니 잠시 여유를 가지고 뒤를 돌아본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내가 하지 않아도 일할 사람은 많고, 세상은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잘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예전에는 왜 몰랐던 것일까. 내가 직접 처리해야만 직성이 풀리고 안심이 되었기 때문에 힘이 들어도 누구의 손을 빌리기보다 직접 처리하려고 애썼다. 그런 고집스러움 때문에 늘 시간에 쫓기고 일에 파묻혀 살다 보니 가족들과 같이 편안하게 시간을 보냈던 기억도 별로 없다. 가족들과의 추억이 없다는 것은 아이들이 다 성장하고 떠나가니 더 허망하게 다가온다. 아이들 손이라도 붙잡고 해외는 아니더라도 국내여행이라도 해둘 걸 그 흔한 여행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했다는 무관심이 미안하고 미안하다. 아비로서 아이들에게 가족여행이라는 추억을 만들어 주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가슴을 친다. 자꾸만 속에서 솟아오르는 부화가 가슴을 두드린다. 둥둥 북소리가 날 것 같다. 힘차게 법고를 두드리는 스님의 손놀림처럼 더 심장의 울림이 커져간다. 이런 산사라도 경건한 마음으로 찾아왔었더라면 하는 늦은 후회가 눈가에 눈물을 글썽이게 했다.

혼자인 줄 알았는데 스님이 안에 계셨나 보다. 객이 주인인 양 허세를 부리고 앉아 있었다는 죄스러움이 두 손을 모으게 한다. 편한 옷차림으로 나오셨던 스님도 툇마루에 제집처럼 편안하게 걸터앉은 처사를 보고 당황하셨는지 합장을 하시더니 이내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가신다. 아마도 객이 누리고 있는 이 평화와 산사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은가 보다.

영산암 출입문인 우화루 밑을 지나면 한옥의 아름다움을 한껏 표현해 내며 건축된 ㅁ자 모양으로 건축물들이 들어서 있다. 작은 마당에는 한쪽 귀퉁이를 할애하여 만든 화단과 건물에 비하여 큰 암석 위에 자리한 소나무가 있다. 소나무 가지는 송암당 하늘을 모두 가릴 정도로 자라 내부가 옹색해 보여도 건물의 멋들어진 배치는 인상적이었다. 마당에는 작은 석등이 앙증스럽게 서 있다. 오랜 세월 암자와 함께 했을 것이다. 부드러운 화강석을 다듬어 동서남북 구멍을 내고 머리에는 갓을 올려놓았다. 단아하고 우아한 것이 기품이 서려 있다. 석등은 이 암자의 세월만큼이나 세상의 희로애락을 보고 들어왔을 게다. 오래전 내가 처음 이 암자에 왔을 때 난 한눈에 석등에 반해 버렸다. 나한전 앞에 온몸이 온통 녹색 이끼를 덮어쓴 모습이었다. 아무 말 없이 시간의 흐름을 읽게 해 주었던 석등은 여느 사찰의 석등과 다르게 정겨웠고 편안했다. 영산암을 찾는 사람들을 제일 먼저 맞이해 주는 역할을 맡았는지 입구에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위치에 서 있다. 오랜 시간 석등과 대화하며 촬영을 하였고 사진을 인화하여 전시회에 출품했던 인연도 있다. 고전미나 세월의 흔적이 없었다면 촬영조차 하지 않았을 게다. 웅장하지는 않았어도 한국의 전통적인 미美와 수백 년 세월을 비바람을 맞으며 감내하며 왔다는 사실에 더 정(情)이 갔고 고귀한 품격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요즘 젊은이들은 어른들을 존경하는 미덕(美德)이 많이 줄어들었다. 뭐든지 새롭고 빠르게 반응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이 든 어른들을 꼰대라고 무시하기도 한다. 세상이 변하면 변화하는 세상에 맞추어 살아야 하겠지만 늙고 지친 몸이 어디 젊은이처럼 빠르겠는가. 그렇다고 모두 폐물(廢物)은 아니다. 어른들이 살아오면서 몸으로 습득하고 익힌 노하우는 삶의 지혜가 녹아든 소중한 경험이다. 문제가 발생하면 젊은이들보다 쉽게 대처하고 해결한다.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힘만으로 할 수는 없다. 이런 사실을 쉽게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쉽게 내쳐서는 안 된다. 조상들의 숨결이 묻어있는 건축물이나 문화유적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것을 새것으로 대체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니겠나.

세계인들이 인정한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봉정사에 있다. 그 속에 수줍은 아낙네처럼 요사채 뒤편 끝자락 계단을 한참이나 걸어 올라가야 나타나는 영산암은 우리에게 보물처럼 영원히 기억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와 우리 후손들이 대를 이어 보존하고 지켜나가야 한다. 영산암 툇마루에 쏟아지는 맑은 햇살의 눈부심은 불편한 것이 아니라 희망이고 배려이다. 내려가는 길, 소담스럽게 피어난 수국의 풍요로움이 달콤한 향에 실려 달려온다. 머릿속도 개운해진다.













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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