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려상 이윤희



포탄에 찢겨 휘어진 철골 기둥이 교각의 상판을 아리게 붙들고 있다. 여기저기 스친 탄흔들이 그날의 생채기를 풀어헤치기라도 하는 듯 허공에 노니는 햇살을 튕겨낸다. 솜구름 조각들이 푸른 강물에 빠져 흐르고 오래전 상흔을 잊고자 철교는 연두색으로 화사하게 단장했다.

옛 왜관철교다. 6·25 전쟁 때 폭파되어 수많은 피난민이 희생된 애환의 전적지다.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역과 왜관역 사이의 낙동강을 가로지른다. 당시 파죽지세의 북한군 전진을 막아 승리한 이 낙동강 전투에서 국군은 북진의 계기를 마련한다. 그 연유로 ‘호국의 다리’로 부른다.

오늘은 하늘이 높기만 한데 그날은 온통 포연으로 자욱했으리라. 내게 전이되는 아릿한 통증을 뿌리치지 못해 송두리째 파묻힌 이곳의 잔상들을 꺼내 보려고 보챈다. 끊겼다가 다시 이어진 다리의 철골이 바람 소리를 낸다. 그 아래로 어우렁더우렁 출렁이는 강물은 휩쓸려간 수많은 넋의 아우성을 가둔 채 말이 없다.

백상아제를 생각했다. 피붙이 하나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다. 마을에서는 이름 대신 성씨 뒤에‘상’자를 붙여 불렀다. 농사일이 많은 옆집 일손이 되어 평생을 보냈다. 우리 집 뒤편 작은 땅뙈기에 일자형 집 한 채를 지어 기거하게 했다. 동녘이 허옇게 밝아질 때면 가장 먼저 아침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 백상이었다. 옆집 식솔이지만 우리 집 식구와도 친했다. 부침개 한 장을 부쳐도 백상을 불러 막걸리 한 사발 건넸던 일들이 떠오른다. 한여름에도 한쪽 다리는 천으로 칭칭 감고 있었다. 6·25 전쟁 때 총탄에 맞아 입은 상처였다. 진물이 배어나며 검게 변한 부위에 아버지와 할머니가 약을 발라주는 걸 자주 보았다. 어릴 때였지만 아저씨를 볼 때마다 짠했다. 가족은 이북에 두고 혼자 왔다. 전쟁포로였다. 가끔 함께 남으로 넘어온 사람들을 만나러 외지에 다녀오곤 했다. 입은 옷이라고는 물 빠진 옅은 국방색 작업복에다 정수리 부분이 눌려 후줄근한 챙모자 하나가 모두였다. 상처에 물기가 젖어들까 봐 늘 장화를 신고 다녔다.

우리가 도회지로 나온 뒤에도 가끔 안부를 물어왔다. 결혼식 날, 신부대기실에 아제가 내 이름을 큰 소리로 부르며 들어왔다. “아이고 윤희가 요렇게 커서 시집가는구나, 참 이쁘다. 잘살아라. 알았제.” 많은 지인이 들락거렸지만, 입을 함지박만 하게 벌리며 좋아하던 백상아제의 모습이 가장 오래 남는다. 아제도 북에 딸 하나 있다는 말을 들었던지라 애잔한 마음이 일었다. 폭이 큰 웨딩드레스로 치장하고 손에 부케를 든 나는 불쌍한 백상아제의 손을 잡아 드리지도 못했다.

초여름 산들바람이 내리쬐는 햇살을 흔든다. 호국의 다리를 걸으며 강을 훑어가는 바람을 마신다. 눈을 지그시 감고 한동안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 선다. 아제도 인민군 대열에서 이 다리를 넘으려 했을까.

다리 북쪽 작은 공원에서 폭파 당시의 상황을 기록한 안내판을 마주한다. 참혹한 희생을 감내하면서도 그리할 수밖에 없었던 군의 고뇌를 읽는다. 아물지 않는 동족상잔의 상처에 다시 통증이 아려온다. 지금 호국의 다리란 이름 앞에 관광객이 몰려들지만, 또 끊어질 일을 우리가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머리가 무겁기만 하다.

다리를 되돌아 건너 산기슭 언덕에 올랐다. 호국평화기념관이 우람하게 자리 잡았다. 옥상엔 하늘을 덮을 듯 장대한 태극기가 휘날린다. 그날 낙동강 전선의 승전보를 알리는 산화한 영령들의 몸짓처럼 펄럭댄다. 내부엔 전쟁의 참상이 빚어낸 아픔과 슬픔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가슴을 울리며 지금의 살아가는 이유를 곱씹어보라고 한다. 총탄이 관통한 구멍 난 철모 앞에 멈췄다. 고개가 숙여진다. 쓰러져간 영령들 앞에 때늦은 애도를 바친다.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한다는 무명용사의 절규가 들린다. 선생님 손에 끌려 기념관을 한 바퀴 돌고 나온 꼬마들의 눈빛이 초롱인다. 이 언덕을 지켜낸 용사들의 대를 이을 아이들이다.

눈 아래 낙동강 전망을 눈조리개로 죽 당겨 들인다. 왜관철교, 칠곡보, 양안 둔덕의 생태 공원, 관허산성 둘레길, 강변의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가 푸르게 이어졌다. 칠곡군이 전쟁의 모진 역사를 붙잡아두려 팔을 걷어붙였다. 이 전적지 일대에 평화 공원을 조성하여‘호국의 메카’로 만들어나가고 있다. 지나치기만 했던 왜관철교의 풍경이 6월의 한가운데서야 찾아온 나의 무심함에 매질을 한다.

멀리 다리를 되돌아본다. 강은 은빛 물비늘을 만들며 유유히 흘러내린다. 강물에 사라진 사람들은 말이 없다, 산자의 애틋함만 강바람을 탄다. 백상아제의 눈물을 이제야 제대로 가슴에 담는다. 본래 아군 적군이 어디 있었겠는가. 반도의 같은 사람들이 나라 만드는 생각이 달라 벌인 싸움이었다. 힘센 객군들에 휘둘린 역사의 아픔이었다.





































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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