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일반

청송 대전사…부처님 현신 같은 기암단애 큰 법전의 진리 퍼트려 하늘 떠받치네

<18> 청송 대전사

기묘한 자태로 우뚝 솟아 오른 거대한 암봉이 청송 주왕산 대전사를 내려다보고 있다. 가운데 큰 건물은 보광전이고 그 우측이 명부전이다.


박순국 언론인
청송 대전사 기와지붕 뒤로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일곱 개의 돌기둥 단애가 펼쳐진다. 경이롭고 범할 수 없는 위엄이 서려 있어 감탄스럽다. 일주문도 천왕문도 없으니 매표소를 지나자 바로 사찰 공간으로 들어선다. 먼저 ‘뫼산(山)자’의 형상을 한 기암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은산 철벽이 바로 이런 곳이 아닐까. 마치 선가에서 화두를 들 때 극단의 경계 앞에 마주 섰다고 하는 그 장소이다. 거대한 암벽이 앞으로 확 넘어들어오는 것 같은 느낌이기도 하다. 바위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들이 절집 마당 구석구석까지 뻗치는 듯하다.

주왕산(周王山)은 청송의 대표적인 산이자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이다. 그 산의 입구에 서면 기묘한 자태로 우뚝 솟아오른 거대한 암봉이 보인다. ‘기암단애(旗岩斷崖)’ 즉 신기한 깃발바위로 불리는 기암이다. 전설에 의하면 중국 당나라 때 주도(周鍍)라는 사람이 스스로 후주천왕(後周天王), 즉 ‘주왕’이라 칭하고 진나라의 재건에 나섰으나 실패, 그 후 주왕산으로 숨어들었다. 당나라가 신라에게 주왕을 제거해 달라 요청했고 신라 조정은 마일성 장군을 보냈다. 이곳에 은거하던 주왕이 마장군과 싸울 때 거대한 암벽에 볏짚을 둘러 군량미를 쌓아둔 것처럼 위장해 신라 군사들의 판단을 흐리게 했다는 설도 있다. 결국 마장군은 굴에 숨어 있던 주왕을 찾아냈다. 주왕산의 첫 봉우리에 대장기를 세웠다고 하여 ‘깃발바위’ 즉 ‘기암’이라고 부르게 됐다고 한다.

◆창건

신라 문무왕 12년(서기 672년) 의상대사는 기암이 올려다보이는 넓은 남쪽 공간에 청송 대전사를 세웠다고 한다. 현재 조계종 제10교구 본사 은해사의 말사로 사찰에 관련된 통일신라와 고려시대 연혁은 전하지 않고 1530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주방사(周房寺)로 기록돼 있다. 대전사는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 유정이 승군을 훈련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대부분 전각이 소실된 후 조선 현종 13년(1672년)에 중건됐다. 1751년에 이중환이 쓴 인문지리지인 ‘택리지’에 이 절은 신선과 스님이 살기 좋은 곳이라 언급되어 있다.

청송군은 이미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받고 있다. 세계지질공원 홈페이지에는 기암단애의 생성을 설명하고 있다. 화산재가 완벽하게 굳어져서 ‘주왕산 응회암’이라 이름 붙었다. 오랜 시간 동안 비바람에 의해 깎여 지금과 같은 형상을 보여주게 되었다고 한다. 지구과학적 설명으로 백악기 주왕산 일대에서는 아홉 번 이상의 화산 폭발이 있었다. 뜨거운 화산재가 쌓이고 끈적끈적하게 엉겨 붙으면서 굳어졌다. 이렇게 만들어진 암석이 바로 뜨거운 용결응회암인데 급격히 식을 때 수축이 일어나면서 세로로 틈이 생겼다. 이 틈을 따라 침식이 일어나 지금과 같은 단애를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

땅속에서 우뚝 솟아난 듯한 이 암봉 자체가 사천왕이고 금강역사의 형국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큰 절이 들어서기에 훌륭한 입지다. 들어선 절 이름도 대전사(大典寺)이니 큰 법전의 절인 데 여기서 큰 법전은 ‘화엄경’이다. 보광전은 이 경전의 진리가 깃든 주 법당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사찰의 전각 중에 보광전은 원래 비로자나불이 주존으로 되어야 하나 조선조 화엄종의 퇴조와 함께 석가여래불 또는 아미타불을 봉안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따라서 명칭만 다를 뿐 대적광전, 대웅전과 같은 성격의 전각으로 보아도 무방하다고 한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고풍스런 보광전 현판.
◆보광전

보광전은 1985년 10월15일 경북도 유형문화재 제202호로 지정되었다가 불교 문화재적 가치를 높게 인정받아 2008년 7월28일 보물 제1570호로 승격됐다. 지정될 당시에 문화재청은 ‘대전사 보광전은 전형적인 조선시대 목조건축물로 건축연대가 명확하다. 양호한 보존 상태로 회화성이 돋보이는 내부단청과 벽화는 조선 중기 불교 미술 자료로 중요한 가치가 인정된다’며 보물지정 사유를 밝혔다. 1976년 중수 시 발견된 상량문에 의해 그 건축 연대가 밝혀졌었다. 임란 때 불탄 것을 조선 현종 13년(1672)에 중창했다는 기록이 나왔다. 부분 중수 및 단청을 했을 뿐 보광전의 뼈대는 상량한 날부터 오늘날까지 그대로다. 과거 대전사가 쇠락해가는 가운데서도 이 건물은 약 350년을 그 자리에 있다.

보광전 내부의 화려한 단청은 회화성이 돋보이는 빼어난 작품으로 조선 중기 불교미술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보광전의 외형은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현판 외에는 고풍스런 큰 특징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로 조선 중기 다포양식의 목조건물로 세워졌다. 내부로 들어가면 넓고 넓은 빛이라는 보광(普光)의 의미처럼 찬란한 불교 미술의 정수를 보여준다.

보광전에 봉안돼 있는 경북도 유형문화재 356호 석조여래삼존상. 가운데 석가모니상은 세 마리의 사자상이 떠받치고 있는 대좌에 앉아 있다.
내부는 건축의 뼈대와 회화, 단청이 어우러진 미의 세계이며 적멸이 흐르는 선(禪)의 공간으로 장엄되어 있다. 법당 좌우벽면에 관음, 문수, 보현보살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중창 당시의 것으로 짐작되는 내부의 단청은 회화성이 돋보이는 빼어난 작품으로 평가된다.

보광전에는 경북도 유형문화재 356호 석조여래삼존상이 봉안돼 있다. 본존불은 석가모니, 좌우 협시불은 각각 보현보살과 문수보살이다.

보광전 법당의 좌우벽면에는 관음, 문수, 보현보살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찬란한 불교미술의 세계이며 적멸이 흐르는 공간으로 채색되어 있다.
삼존상은 복장조상기문이 나와 숙종 11년인 1685년에 조성됐음이 확인됐다. 본존불인 석가모니상은 세 마리의 사자상이 떠받치고 있는 특이한 대좌에 앉아 있다. 불상에 있어서 대좌는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이다. 원래 한반도에는 없는 사자가 그리스와 인도를 거쳐 중국을 통해 들어와 왕릉이나 석탑 주위에 새겨지게 됐다. 이곳처럼 불상대좌 아래에서도 귀여운 사자가 되어 부처님을 지키고 있다. 약 30㎝ 정도의 앙증스런 크기의 작은 사자들이 앞발을 위로 치켜들어 대좌를 힘차게 들어 올리고 있다. 축생의 몸을 타고난 사자들이 긴 세월 업장 소멸하는 장엄한 순간을 보는 듯하다.

◆명부전

보광전 바로 옆에는 또 다른 당우인 명부전이 있다. 이 건물은 지장보살을 모시고 죽은 이의 넋을 인도해 극락왕생하도록 기원하는 전각이다.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구원하므로 ‘지장전’이라고도 하고 지옥의 심판관인 시왕을 모신 곳이므로 ‘시왕전’이라고도 한다.

지난 9월 경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명부전의 지장삼존상과 시왕상 일괄. 조성 연대가 확실한 조선 후기 명부세계의 대표적인불상이다.
지난 9월 이 명부전에 봉안된 지장삼존상과 시왕상 일괄(十王像 一括)이 경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일괄 안에는 판관상 2구, 사자, 금강역사상 2구 등 도합 18구로 구성돼 있다. 최근 발견된 조성발원문에 의하면 숙종 29년(1703년) 조각승인 수연이 조성해 대전사에 봉안했다고 한다. 이는 연대가 확실한 조선 후기 명부세계의 대표적인 불상이므로 불교조각 연구에 있어서 학술적 의미가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에 명부전 불상들과 함께 유형문화재로 새로이 지정된 불화도 있다. 대전사 신중도는 다섯 폭의 비단을 잇대어 하나의 화폭을 이루는 채색 탱화이다. 이 불화의 아랫부분에는 무장한 호법신들이 서로 마주 보듯 배치되어 있으며 화면의 윗부분에는 제석천과 범천 위태천이 그려져 있다. 그 사이에 사천왕을 비롯한 수호신들이 상반신만 모습을 드러낸 채 서로 마주 보듯 시선을 맞춰 도열해 있다.

2000년 도난을 당했다가 14년 만에 고미술품경매시장에서 다시 환수된 대전사 신중도.
이 문화재는 도난사건에 관련됐던 사연이 있다. 보광전에 있던 이 불화는 2000년 9월4일 모두 도난을 당했다. 그 후 어느 사립박물관장이 숨기고 있다가 2014년 고미술품경매시장에 나왔다. 도난품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문화재청 단속반과 경찰에 의해 환수하게 되었다. 지금은 교구 본사인 은해사 성보박물관에 보존 중이다. 현재의 대전사 보광전에는 도난 이후 그린 신중도 탱화 모사본이 봉안되어 있다.

대전사의 부속암자로는 백련암(白蓮庵), 주왕암(周王庵) 등이 있다. 보광전 앞마당에는 과거 유적 발굴 당시 경내에 흩어져 있던 잔해들을 모아 세운 삼층석탑이 있다.

통일신라 때의 석탑 잔해를 모으고 오늘날의 석재와 함께 다시 세운 보광전 앞 삼층석탑.
석탑의 처음 조성 시기는 통일신라 말기로 추정된다. 오늘날의 석재와 천 년 전의 탑신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석탑으로 다시 자리 잡았다.

청송 주왕산은 입구에서 보면 거대한 바위인 기암이 전부인 것처럼 보이지만 안으로 들기 시작하면 끝이 보이지 않는다. 자연은 사시사철 변하고 있다. 하늘의 구름도 단 한 순간도 머무는 바가 없다. 대전사를 떠나면서 한 번 더 뒤돌아본 거대한 기암단애는 은산 철벽이 아니라 부처님 형상의 큰 바위 얼굴이었다.

글·사진= 박순국 언론인

문정화 기자 moonjh@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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