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것 같아요”는 책임회피다

박운석

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9일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어 반포한 지 573돌이 되는 날이다. 매년 한글날을 전후해 각 기관단체 혹은 기업에서 ‘우리말 바로 쓰기’ 캠페인, 우리말 겨루기, 외국인 여행객 한글 이름 써주기 등의 관련 행사를 개최한다. 그나마 1년에 한번 정도이지만 이런 행사들이 바른 한글 사용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킬 수 있어 다행이다.

필자는 한때 일간신문 교정기자로 근무한 적이 있다. 편집국 각 부서에서 써낸 기사를 보면서 맞춤법에 맞게 오탈자를 잡아내는 것부터 잘못 쓰여진 단어, 문맥에 맞지 않는 표현을 걸러내 바로잡고, 기사 내용의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일이 주된 업무였다. 그 때 이후론 책을 봐도 오탈자가 먼저 눈에 들어오고,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도 내걸린 현수막의 오탈자만 눈에 확 들어오는 부작용 아닌 부작용을 겪고 있다.

요즘은 TV 보는 것조차 신경 쓰인다. 올바르지 못한 표현들이 난무해서다. 대표적인 것이 ‘~하는 것 같아요’라는 말이다. 마이크를 갖다 대면 어른 아이 가리질 않고 이 말로 끝맺는다. 지난해 한글 창제 572돌을 맞아 개최한 어느 한글축제 현장에서 인터뷰에 응한 네 명의 대답을 보자.

“문제가 좀 어려웠던 것 같아요” “한글날 쓰는 거라 더 남다른 것 같아요” “결혼하고는 손편지 처음인 것 같아요” “아이들한테도 교육적으로 좋은 것 같아요” “한글날을 더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아요”

사회자의 질문에 짤막하게 답한 네 명이 다섯 번이나 “~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이 말은 “문제가 조금 어려웠어요” “더 남달라요” “결혼하고는 손편지 쓰는 게 처음이에요” “교육적으로도 좋아요” “계기가 되었어요”로 바꿔 말하는 게 맞다.

이름만 대면 아는 어느 지방자치단체의 단체장도 아무 거리낌 없이 이 말을 사용하고 있었다. “행정용어 중에는 외래어가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아마 행정용어 중의 수많은 외래어를 우리말로 순화시켜 사용해야 한다는 뜻인데 이를 두루뭉술하게 표현했다. 왜 이를 “행정용어 중에 외래어가 너무 많다. 지금부터라도 우리말로 바꿔 쓰는 노력이 필요하다”하고 이야기하지 못할까?

올바르지 않은 말의 남용은 어른 아이, 지위의 높고 낮음을 가리질 않는다. 특히 인터뷰에 응하는 사람들은 왜 하나같이 “~ 같아요”를 쓰는지…. 이는 자신이 없는 말투다. 책임을 회피하는 말투다. 자신의 말을 책임지지 않겠다는 취지다. 곰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넣어 국물이 짜졌다. 종업원을 불러서는 “조금 짠 것 같아요. 국물 추가해 주세요”라고 한다. 소금을 많이 넣은 건 자기자신 아닌가. 당연히 “짠 것 같아요”가 아니라 “짜다”라고 말해야 한다. 이뿐인가? ‘재미있다’ 혹은 ‘재미없다’로 표현해야 할 말을 “재미있는 것 같아요”라고 얼버무린다.

“제 스타일인 것 같아요”는 더욱 희한한 말이다. 자기 스타일을 자기가 정확하게 모른다는 말인가? 내 스타일이다, 아니다라는 명확한 말을 두고 자기 스타일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는 표현은 또 뭔가.

“~ 같아요”와 함께 몇 년 전부터 끊임없이 제기되어온 우리말의 문제 중의 하나가 사물에 대한 높임말이다. 수많은 문제제기에도 ‘같아요’처럼 여전히 고쳐지지 않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요즘도 카페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 있다. “커피 두 잔에 총금액이 8천원 나오셨어요” 이라거나 “8천원이세요”라고 한다. 직원들이 손님들에게 높임말을 쓸 요량으로 하는 말인데 결과적으로 사람이 아닌 사물을 높여 말한다.

문제는 카페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젊은 종업원들이 잘못된 표현인지도 모르고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객에 대한 친절만을 강조하다보니 생기는 잘못된 존칭인데도 말이다.

이처럼 지금은 국적 불명의 신조어와 줄임말만이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전 연령대에서 무의식적으로 남용하고 있는 “~ 것 같아요”라는 말이나 젊은층에서 당연한 듯 말하는 사물존칭은 굳어지기 전에 바로잡아야 할 시점이다. 반복해서 듣다보면 처음에 느꼈던 어색함마저 익숙해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매년 어김없이 찾아오는 한글날이지만 지금부터라도 우리말의 적절한 사용에 관한 캠페인이라도 벌여보자.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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