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려상 김정화

스무 해 전 직접 보았던 미라가 있을까. 안동대 박물관에 들어서면서 마음이 설레었다. 그러나 흙 묻은 출토품이 뒤죽박죽 널려있고 그 옆에 미라가 평온히 잠든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그 대신 얼룩진 옷이 기나긴 잠에서 깨어나 하얀 주름을 펼친 채 벽에 누워있다.

유리 무덤 안 미투리가 눈에 들어왔다. 짚 대신 삼실과 머리카락을 섞어 지은 미투리였다. 뒤꿈치 두 기둥은 삼으로 휘돌아 감았고, 발목과 발가락이 닿는 끈 둘레는 한 겹 한 겹 한지로 감침질했다. 그 짜임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실보다 가느다란 머리카락을 올올이 엮는 아낙의 정성이 느껴진다. 미투리만 보고 가기에는 아쉬움이 남아 북쪽 월영교로 향한다.

비 그친 오후는 새벽 달밤처럼 고즈넉하다. 싱그러운 공기가 코끝을 스친다. 수면 위로 모락모락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안개는 산등성이만 남기고 물속 산 그림자를 하얗게 지운다. 흰 구름과 잿빛 구름 그리고 물안개가 피워내는 월영교를 멀리서 보니 한 편의 수묵화이다.

월영교 상판은 짙은 밤색이다. 하판은 보름달 허리 자른 듯 무지개 이어 놓은 듯 아치형 곡선으로 이어졌다. 곡선과 곡선이 만나는 자리에 굵은 물기둥이 놓였다. 물기둥에 얹힌 하판의 굽은 등 위쪽 좁은 틈 사이로 비스듬한 살이 교직하여 촘촘하다. 가만히 바라보니 상판은 미투리 바닥의 머리카락 빛깔을 닮았다. 하판 사선은 머릿결처럼 보이고, 발을 감싼 삼모양 같기도 하고, 미투리를 거꾸로 엎어 놓은 듯 보인다.

미투리에는 한 아낙의 애절한 사랑이 서려있다. 원이엄마는 미투리를 삼기 위해 맑은 샘물에 깨끗이 머리 감고, 참빗으로 곱게 빗어 가지런하게 잘랐다. 혼魂을 공그르고 신身을 다해 머리카락을 엮었다. 낮에는 매운 연기 마시며 탕약을 달이고, 밤이면 희미한 호롱불 아래서 미투리를 삼았다. 한 올 한 올 머리카락 모아 달빛이 사라질 때까지 얼마나 많은 날을 바쳤을까. 지아비가 완쾌해 신기를 간절히 바라며 미투리를 완성했다. 그러나 지아비는 일어나지 못했고 미투리는 편지에 쌓여 지아비 머리맡에 놓이고 말았다.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당신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사백십이 년 긴 시간이 흘러 지아비는 미라가 되어 세상에 나왔다. 얼마큼 그리움이 사무쳤으면 어둠의 땅속 빛을 멈추어 놓았을까. 가슴에 품고 백골에 스민 편지, 울다 지친 그리움이 땅속 긴 침묵을 깨트렸다. 지아비가 우주의 질서를 어기지 않았더라면 미투리는 시간의 징검다리를 건너올 수 없었고, 둘 사랑은 영원히 잊힐 뻔했다.

예전에는 요즘처럼 머리카락에 무지개 감정을 담지 않았다. 개성을 표출하려 마음껏 멋을 부리지 않았다. 부모에게 받은 머리카락을 훼손하는 것은 불효이므로, 소중히 여겨 한 올도 함부로 훼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낙은 지아비를 위해 효도 어기고 만다. 자신의 혼 같은 머리카락을 뽑아 사백 년 동안 꿈속을 걸어도 해지지 않을 신을 엮었다. 짚은 오래가지 못하기에, 썩지 않는 희망을 영혼으로 자아 오래오래 신으라고 머리카락으로 미투리를 짰다.

나는 그들의 나이보다 스무 해나 더 살고 있다. 하지만 그들 같은 사랑을 나누지 못했다. 그들의 빛나는 사랑 앞에 내 작은 사랑은 너무나 초라해 고개조차 들지 못한다. 사랑인지 의무인지 모호한 굴레에 갇혀 부랴사랴 여기까지 온 듯하다. 서로를 아낀 날보다, 흘기며 산 날만 떠올려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을 위해 티격태격 사는 것인지,

나는 원이엄마의 아가페적 사랑 반대편에만 서 있다. 순간의 위기 앞에도 내 이기심을 앞세우고 양보할 시점에도 자존심을 꺾지 않으려 버티었다. 반려를 수없이 죄었다가 멍에로 결박하다 보니 굽이마다 흠집이 났다. 그 통증은 뾰족하게 자라 상대를 찔렀다. 상처가 나면 사랑이 필요하므로 지푸라기로라도 사랑을 엮어야 하는 시기였다. 그러나 나는 지아비를 위해 마음속으로도 양말 한 켤레도 엮어 보지 못했다.

“이 신, 신어 보지도 못하고…”

아낙의 애절한 한탄이 캄캄한 땅에 누운 귀에까지 파고들었다. 그 메아리가 사백 년 만에 응답했다. 시신조차 애착의 끈을 잡은 듯하다. 끝내 신어 보지는 못했지만, 편지를 꼭 품고 사랑을 얹어 외출했다. 지아비를 흔들어 깨웠던 원이엄마, 삽시간에 편지를 맺었던 첫 자리처럼 다시 태어났다. 사연 한 자 한 자가 내 심금을 울린다.

지아비가 깨어난 남쪽에서 유리 무덤이 있는 곳을 향해, 월영교를 향해, 아낙은 돌비석으로 환생한다. 담장 밖을 내다보는 능소화처럼 지아비를 기다린다. 세 방위 삼각형 그리며 다시 사랑의 꼭짓점을 향해 그리움을 만진다. 혼魂을 뽑고 신身을 다해 미투리를 짠 원이엄마, 그 신, 그 사랑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은 전설이 되었다.

400여 년 지나 달빛으로 승화된 사랑, 비가 오나 눈이 와도 영원한 보름달이 떠 있는 곳. 물안개 피어나는 월영교를 거닐며 달빛 전설을 가슴에 담는다. 그리고 생각해본다. 오늘날의 사랑에 관하여….

오늘 환생해 미투리를 신고 나란히 걷는 것일까. 저만치 앞서가는 연인이 원이엄마 부부의 환영처럼 보인다.









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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