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등록된 국립공원 남산과 낭산 포함된 역사문화유적과 아름다운 자연 경관으로 방문객

▲ 경주 우리동네 자랑 3
▲ 경주 우리동네 자랑 3
경주 남부지역은 외동읍과 내남면 지역으로 동쪽은 바다, 남쪽은 울산과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여기에 역사유적지구 남산과 낭산이 포함되면서 경주지역의 전반적인 특성과 같이 역사문화유적이 산재해 있다. 내남은 남산지역이고, 외동읍은 울산과 연접해 공단이 발달하고 있지만 원성왕릉을 비롯한 역사문화유적과 바다를 낀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자랑한다.

▲ 경주 우리동네 자랑 3. 성덕왕릉 귀부
▲ 경주 우리동네 자랑 3. 성덕왕릉 귀부
특히 남산은 국립공원이면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역사유적지구로 국보, 보물 등의 지정문화재를 포함해 비지정문화재까지 700여 점이 넘는 문화유적이 널려있다. 낭산 또한 해발 100여m 구릉처럼 낮은 산이지만 황복사지삼층석탑, 선덕여왕릉, 신문왕릉 등의 국보와 보물 등 문화유적이 즐비해 탐방객들이 줄을 잇는다.

▲ 1. 선덕여왕릉
▲ 1. 선덕여왕릉
1. 선덕여왕릉

신라 제27대 선덕여왕의 능으로 646년경에 낭산자락에 조성됐다. 1969년 사적 제182호로 지정됐다. 사천왕사지 위의 낭산 정상에 있는데 현재의 상태는 봉토 밑에 둘레 돌을 쌓은 원형의 토분이다. 둘레 돌은 잡석을 비스듬히 2단으로 쌓았고, 밖으로 드문드문 둘레 돌의 높이와 비슷한 대석을 기대어 놓았다. 그 외에는 다른 석물은 없고 다만 전면에 상석이 있으나 이것은 후세에 설치된 것이다. 진입로가 소나무 숲과 다양한 초목이 공원처럼 조성되어 있다.

▲ 2. 신문왕릉
▲ 2. 신문왕릉
2. 신문왕릉

신라시대의 고분으로 사천왕사지 동남쪽에 자리하고 있다. 신라 제31대 신문왕의 왕릉으로 비정되어, 1969년에 사적 제181호로 지정된 둥근 모양의 봉토분이다. 벽돌 모양으로 다듬은 돌을 5단으로 쌓고 그 위에 납작한 갑석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삼각형으로 다듬은 44개의 받침돌로 일정한 간격으로 둘레 돌을 받쳐 봉분을 지지하고 있다.

성덕왕릉과는 달리 받침돌 사이의 12지상은 없으며, 무인석과 문인석, 석수 등도 없다. 정남향에 있는 삼각형 받침돌에 한자로 ‘문(門)’ 자가 새겨져 있고, 동쪽에는 크고 긴 돌을 쌓아서 만든 상석이 있다.

▲ 3. 진평왕릉 숲
▲ 3. 진평왕릉 숲
3. 진평왕릉

낭산의 동쪽 보문동에 숲이 우거져 공원으로 조성된 사적 제180호 진평왕릉은 시민과 관광객들의 편안한 힐링의 터전이 되고 있다. 동쪽에 명활산, 남쪽에 보문사 터가 있으며, 서쪽에는 낭산이 있다.

특별한 석물 없이 밑 둘레 지름 약 10m, 높이 약 7m의 원형 토분으로 주위에는 소나무, 느티나무, 버드나무 등의 특별하게 생긴 고목들이 서 있어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평화스러운 분위기로 신혼부부들의 웨딩촬영장소로 인기다.

▲ 4. 황복사지 삼층석탑
▲ 4. 황복사지 삼층석탑
4. 황복사지삼층석탑 국보 제37호

구황동 낭산의 황복사 절터에 남아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황복사는 652년(진덕여왕 6) 의상이 출가한 사찰로 알려졌을 뿐 건립 연도와 창건자 등은 알려지지 않는다. 1943년 석탑을 해체해 복원할 때 나온 사리함에서 사리함 뚜껑의 안쪽 면에 새겨진 명문에 신라 효소왕이 아버지 신문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692년에 석탑을 세웠다고 기록되어 전한다.

▲ 5. 성덕왕릉
▲ 5. 성덕왕릉
5. 성덕왕릉

성덕왕은 신문왕의 아들로 본명은 융기이다. 당나라와 적극적인 교류를 했으며 정치적으로 가장 안정된 신라의 전성기를 이끌어 나갔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737년에 왕이 죽자 이거사 남쪽에 장사지냈다고 하는데 현재 왕릉 북쪽에 이거사로 추정되는 절터가 있다. 이 능은 밑 둘레 46m 높이 5m이다.

신라왕릉 중에서 호석과 함께 회랑을 갖추고 12지신상, 사자상, 석인상 등의 석물이 최초로 등장한 왕릉이다. 왕릉 앞에 비석과 이수가 사라진 대형 귀부가 있다.

▲ 6. 용산서원
▲ 6. 용산서원
6. 용산서원

정무공 최진립을 향사하기 위해 1699년(숙종 25) 경주 부윤 이형상이 지방 유림과 함께 건립한 경북기념물 제88호로 지정된 문화재다. 서원의 입구에 300년이 넘은 은행나무가 보호수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가을이면 노랗게 물든 낙엽이 절경을 연출해 방문객들이 줄을 잇는다. 사액서원이었지만 고종 때 훼철되었다가 다시 중건됐다. 최진립 장군은 경주 최 부자의 전설을 남기고 있는 원조다.

▲ 7. 포석정
▲ 7. 포석정
7. 포석정

경주 남산 서쪽 계곡에 전복의 형태를 띠고 있어 포석정으로 이름이 붙은 문화재로 제1호 사적지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현재 정자는 없고 풍류를 즐기던 물길만이 남아있다. 물길은 22m이며 높낮이의 차가 5.9㎝이다.

좌우로 꺾어지거나 굽이치게 한 구조에서 나타나는 물길의 오묘한 흐름은 뱅뱅 돌기도 하고 물의 양이나 띄우는 잔의 형태, 잔 속에 담긴 술의 양에 따라 잔이 흐르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다고 한다.

유상곡수연은 중국이나 일본에도 있었으나 오늘날 그 자취가 남아있는 곳은 경주 포석정뿐이다. 경애왕이 이곳에서 견훤에게 죽임을 당하면서 신라가 멸망에 이르게 됐다.

▲ 8. 탑곡마애불상군
▲ 8. 탑곡마애불상군
8. 남산탑곡마애불상군

통일신라시대에 신인사라는 절이 있었던 곳으로 9m나 되는 사각형의 커다란 바위에 40여 점의 불상과 승려, 비천상 등을 회화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북면에는 좌우로 목탑형태의 9층과 7층 탑 2기가 있다. 기반부터 상륜부까지 완비되어 신라 목탑 양식 고찰에 중요자료로 연구되고 있다.

남쪽 바위 면에는 삼존불과 독립된 보살상이 배치되어 있고, 동쪽 바위 면에는 불상과 보살, 승려, 그리고 비천상을 표현해 놓았다.

▲ 9. 용장사지 삼층석탑
▲ 9. 용장사지 삼층석탑
9. 용장사지

남산에서 가장 큰 절터이다. 특히 둥근 형태의 특이한 3층 대좌 위에 몸체만 남아 있는 용장사지 석불좌상은 신라 고승 대현 스님이 염불을 하며 불상 주위를 돌면 불상도 따라서 얼굴을 돌렸다고 하는 신비로운 전설이 전해진다. 마애석불좌상과 삼층석탑 등 보물 3기가 한곳에 있다.

학술적 가치 또한 높으면서 경치가 특히 아름다워 등산길이 험해도 탐방객이 많이 찾는 곳이다.

▲ 10. 원원사지 삼층석탑
▲ 10. 원원사지 삼층석탑
10. 원원사지 삼층석탑

원원사는 통일신라시대에 김유신 장군이 바다를 통해 침략해오는 왜를 방어하기 위한 호국사찰로 울산과 경주 경계지역에 건립했다. 사찰의 동서쪽에 쌍탑을 세웠는데 탑의 기단에 12지신상을 새기고 1층 탑신에 사천왕상을 새긴 독특한 양식이다.

부조로 새긴 사천왕상은 조각수법이 뛰어나 지금도 예술인들의 공부가 되고 있다.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이 두텁게 입체적으로 새겨 예술적 가치도 높게 평가된다.

▲ 경주 우리동네 자랑 3. 용산서원
▲ 경주 우리동네 자랑 3. 용산서원
*경주 남부: 외동읍, 내남면, 낭산, 남산

-외동읍: 입실, 구어, 모화, 문산, 석계, 녹동, 냉천, 제내, 북토, 방어, 신계, 괘능, 활성, 말방, 죽동, 개곡, 연안리

-내남면: 용장, 노곡, 명계, 월산, 이조, 부지 덕천 안심, 상신, 박달 비지, 화곡, 망성리



▲ 경주 우리동네 자랑 3. 삼릉
▲ 경주 우리동네 자랑 3. 삼릉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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