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장/ 손남주

나도 완장이었다/ 밥 때문에, 목숨 때문에/ 완장이 됐다/ 주인은 높은 곳에 있어 잘 몰랐지만/ 그의 충직한 하수인이 된 순진한 완장이었다/ 완장은,/ 권력이었고, 아부였고, 횡포였고, 비굴이었고,/ 분노였다// 하찮은 헝겊과 비닐조각이 팔뚝을 끼면/ 어떻게 그 엄청난 변신을 할 수 있었는지/ 사람들은 구태여 따지러들지 않았다/ 완장은 그저 오랫동안 서로가 함께 살아왔다/ 여기도 완장, 저기도 완장......, // (중략)//이제 ‘완장’은 지난 이야기가 되고/ 거리에서 사라져가고 있지만/ 눈에도 보이지 않는 더 무서운 완장이/ 우리들 몸속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갑질’이란 괴질은 언제 주먹질, 발길질,/ 욕질로 발병할지 겁나는 일이다

- 시집 ‘문득,’ (학이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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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이나 지위를 나타내기 위해 팔에 두르는 이 물건을 차면 정말 사람이 달라질까. ‘주번’이나 ‘안내’ 완장 말고는 평생 여태껏 완장다운 완장을 차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다. 군대있을 때 잠깐 ‘MP’완장을 찰 뻔했으나 ‘다행히’ 복무기간 내도록 내근에 그쳤다. 완장을 차면 대개는 우쭐해지면서 누군가 위에 군림하여 누르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고 한다. 그 맛에 길들여지면 뭔가 저지르고 싶은 충동에서 벗어나기 힘들다고도 한다. 자신은 별다른 능력이나 권한이 없음에도 누군가를 등에 업고 자신이 권력자인양 행세하는 완장도 있지만, 실제로 능력과 권한을 갖춘 막강한 완장도 있다. 과거 무소불위의 검찰이 그랬고 지금도 그런 조짐을 본다.

문학작품에서 ‘완장’이라면 윤흥길의 소설이 유명하다. 저수지 낚시터 관리인으로 취업한 ‘종술’은 감시원 완장을 차고부터 사람이 달라진다. 종술은 낚시꾼들에게 기합을 주기도 하고 고기 잡던 초등 동창 부자를 폭행하기도 한다. 완장의 힘에 푹 빠진 종술은 읍내에 나갈 때도 완장을 두르고 활보한다. 완장의 힘을 과신한 종술은 급기야 자신을 고용한 사장 일행의 낚시질까지 금지하게 되고, 결국 관리인 자리에서 쫓겨난다. 하지만 해고에도 아랑곳없이 그는 저수지 지키는 일에 몰두하다가 가뭄해소책으로 물을 빼야 한다는 수리조합직원과 마찰한다.

그 과정에서 열세에 몰리자 종술은 완장의 허황됨을 일깨워주는 술집 작부 부월이의 충고를 받아들인다. 종술이 완장을 저수지에 버리고 부월이와 함께 떠난 다음날 소용돌이치며 물이 빠지는 저수지 수면 위로 완장이 둥둥 떠다닌다. 30년 전 MBC드라마에서 종술 역을 맡은 조형기의 연기가 일품이었다. 완장이라는 상징적 소재를 통해서 부조리한 한 사람의 행적과 몰락을 그린 해학과 풍자가 돋보이고, 작건 크건 권력을 쥐면 업무 외적인 부분까지 사용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속물적 근성과 권력의 생태를 꼬집은 작품이다.

오래전 남산 분수대 둘레에서 사진사를 했다는 노인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다. 그 분수대 관리인에게 뇌물을 주지 않으면 일을 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걸핏하면 분수를 꺼버리고 막 사진을 찍으려는데 분수가 꺼진 일도 있었다고 한다. 완장은 그 직분에 맞는 역할을 하라는 것이지 자리 자체를 즐기고 남용하라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아직도 지금을 ‘완장의 시대’라고 말한다. 완장은 문명할수록 더욱 은밀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갑질’이란 괴질도 늘 상수로 존재한다. 주로 자기보다 센 것을 물어뜯으며 희열을 느끼는 특이 취향의 완장도 있긴 있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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