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일반

해마다 꽃무릇

해마다 꽃무릇/ 이규리

저 꽃 이름이 뭐지?/ 한참 뒤 또 한 번/ 저 꽃 이름이 뭐지?// 물어놓고서 그 대답 듣지 않을 땐 꼭 이름이 궁금했던 건 아닐 것이다// 꽃에 홀려서 이름이 멀다/ 매혹에는 일정량 불운이 있어/ 당신이 그 앞에서 여러 번 같은 말만 한 것도 다른 생각조차 안 났기 때문일 것이다// 아픈 몸이 오면 슬그머니 받쳐주는 성한 쪽이 있어/ 꽃은 꽃을 이루었을 터인데/ 이맘때 요절한 그 사람 생각/ 얼마나 먹먹했을까// 당신은 짐짓 활짝 핀 고통을 제 안색에 숨기겠지만/ 숨이 차서, 어찌할 수 없어서, 일렁이는 마음 감추려 또 괜한 말을 하는 것// 저 꽃 이름이 뭐지?

- 시집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문학동네, 2014)

꽃 이름이 헷갈리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상사화와 꽃무릇도 그렇다. ‘화엽불상견 상사화(花葉不相見 相思花)’ 잎이 있을 때는 꽃이 없고, 꽃이 필 때는 잎을 볼 수가 없다. 잎은 꽃을 생각하고 꽃은 잎을 그리워한다고 하여 상사화란 이름이 붙었다. 그러나 한여름에 피는 상사화와 지금이 절정인 꽃무릇은 그 속성에서는 비슷하지만 피는 시기뿐 아니라 색깔과 생김새에 있어서 다소 차이가 난다. 상사화는 잎이 넓고 수술이 짧으며 꽃빛이 연분홍색인 반면에 꽃무릇은 꽃잎이 좁고 수술이 길며 꽃의 빛깔이 붉다. 꽃무릇은 그늘에 숨어 무리 지어 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돌 틈에서 나오는 마늘 모양의 뿌리라는 뜻에서 ‘석산(石蒜)’이라고도 한다.

꽃무릇의 최대 군락지는 함평 용천사와 영광 불갑사, 그리고 고창 선운사 등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붉은 그리움 꽃무릇의 애절함이 절 집 주위로 가득 번진다. 수행 정진하는 승려를 짝사랑한 여인의 애절한 마음이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으면 이토록 붉게 사무쳤을까. 가느다란 꽃줄기 위로 여러 장의 빨간 꽃잎이 한데 모여 말아 올린 자태가 마치 우산살을 펼친 것 같고, 꽃잎보다 훨씬 긴 까닭에 꽃 밖으로 뻗으며 곱게 치켜 올라간 수술들은 붉은 마스카라를 칠한 여인의 속눈썹처럼 요염하다. 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수천수만에 이르는 꽃들이 일제히 활짝 피었으니 현기증이 날 정도로 황홀한 장관이어서 시쳇말로 ‘심쿵’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상징하는 꽃무릇의 꽃말이 ‘슬픈 추억’이란다. 끝없이 이어지는 꽃무릇의 군무에 꽃 멀미가 날 지경이다. 어둑어둑한 숲과 도솔천을 수놓은 꽃무릇의 아찔한 자태에 흐르는 물과 산새조차 숨을 죽인다. 이럴 때 ‘저 꽃 이름이 뭐지?’라며 곁에서 누가 물어온다 해도 주저리주저리 상사화와 꽃무릇의 변별을 위해 아는 척할 필요는 없다. 그저 ‘이쁘지?’ 그러면 될 일이다. 묻는 이도 ‘꼭 이름이 궁금했던 건 아닐 것이다’ ‘꽃에 홀려서’ 이름 따위는 이미 저만치 멀리 있다. ‘매혹에는 일정량 불운이 있어’ 무엇에 빠져들 때는 ‘다른 생각조차’ 나지 않으며 어떠한 이성적 논리도 봉쇄되기 때문이다.

다만 ‘숨이 차서, 어찌할 수 없어서, 일렁이는 마음 감추려’ ‘괜한 말을 하는 것’일뿐. ‘저 꽃 이름이 뭐지?’ 스스로 경탄하면 그만이다. 물이 오를 대로 오른 이즈음, 꽃무릇 축제가 한창이다. 이미 지난 주 끝난 지역도 있고 이번 주까지 이어지는 곳도 있다. 하지만 어디를 가도 이달까지는 절정일 것이다. 태풍도 물러간 마당에 뒤숭숭한 심사도 달랠 겸 다홍빛 꽃무리에 한번 홀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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