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 문인수

무슨 일인가, 대낮 한차례씩/ 폭염의 잔류부대가 마당에 집결하고 있다/ 며칠째, 어디론가 계속 철수하고 있다/ 그것이 차츰 소규모다/ 버려진 군용 텐트나 여자들같이/ 호박넝쿨의 저 찢어져 망한 이파리들/ 먼지 뒤집어쓴 채 너풀거리다/ 밤에 떠나는 기러기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몇몇 집들이 더 돌아와서/ 또, 한세상 창문이 여닫힌다.

- 시집 『동강의 높은 새』 (세계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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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도 중순을 지나면서 완연한 가을 기운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아직도 8월 더위의 잔류부대가 완전히 철수하지 않아 간헐적으로 30도를 웃도는 날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차츰 소규모다’ 간간이 방안에서는 선풍기가 돌고 있지만 앞으로 에어컨을 가동할 일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역시 추석 지나고 9월 중순쯤 되니 계절은 가을의 영역임을 분명히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그럼에도 어쩌면 매복중인 더위가 한두 차례 기습을 가해올 수 있겠고, 곳에 따라서는 ‘대낮 한차례씩 폭염의 잔류부대가 마당에 집결’해 있는 것을 볼지도 모르겠다.

‘호박넝쿨의 저 찢어져 망한 이파리들’ 어쩌면 저 망한 이파리들은 수정받지 못한 호박꽃과 함께한 운명일 수도 있겠다. 호박꽃은 얼른 보면 비슷하게 생겼지만 자세히 보면 암꽃의 아래쪽엔 구슬만한 호박이 달려 있는 반면 수꽃은 그냥 꽃만 있다. 암꽃의 암술에 수꽃의 꽃가루가 벌 나비에 의하여 수분이 되어야만 호박으로 자란다. 역할을 다한 수꽃이나 수정을 못 받은 애기호박은 자라지 못하고 꽃과 함께 떨어진다. 그럴 수 있고 아닐 수도 있겠으나 ‘먼지 뒤집어쓴 채 너풀거리’는 후줄근한 신세들의 표정이다.

한편 그늘진 곳 양치식물은 빳빳이 줄기를 세우고, 기러기들은 군사시설 철조망 위로 힘껏 날아오른다. ‘밤에 떠나는 기러기 소리’에 어린 갈대가 저절로 흔들린다. 그러나 폭염과 싸우고 고달픈 인생과도 싸웠던 ‘몇몇 집들이 더 돌아와서’ ‘또, 한세상 창문이 여닫힌다.’ 이렇게 시간은 흘러 다시 9월의 한복판 속으로 들어와 있다. 간이역 투명한 햇살을 받으며 ‘귀향 환영’ 현수막이 늦도록 내걸렸다. 그러나 내 고향 가는 길 저 멀리 새털구름 한 자락 덩그러니 걸려있을 뿐 어디에도 고향에 온 것을 반기는 현수막은 뵈지 않는다.

문인수 시인의 고향인 성주 가는 길은 햇살의 농도와 상관없이 여전히 일상이 접혀있다. 황금빛 몸살을 앓는 고향 사람들은 지난 수년간 밤마다 한 곳에 집결해 내내 지난여름을 추억하듯 지글지글 끓었다. 코스모스는 살래살래 철없이 손짓하지만 어디로 가지 못하고 꼼짝없이 9월의 길목에 퍼질러 앉아있었던 것이다. 가을의 순한 햇살은 은총처럼 쏟아지는데 들판의 평화는 온전히 찾아온 것 같지 않다. 언제쯤이면 지난날들을 뿌듯하게 추억하며 들녘의 환한 웃음으로 되돌아올까. 지긋하게 노을을 바라보고 귀뚜라미 울음도 맑게 들을 수 있을까.

닫힌 창문 다시 열고 약속이 소망으로 열매 맺는 고향땅을 볼 수 있으려나. 저 시리도록 푸른 하늘에 떠있는 양떼구름 한 틀 짊어지고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생기려나. 고향 땅 무흘 계곡은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의 학문을 이어받은 한강 정구 선생의 숨결이 고스란히 스며있는 곳이다. ‘선지후행, 경의협지’ 새삼 그의 깊은 학문과 애국애민의 정신을 기린다. 가을에 들어서서 몸을 더욱 덥게 하는 것은 세상의 기류다. 누구는 배코를 치고 또 누구는 밥을 굶는단다.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가을의 삽상한 기운을 느끼기는 당분간 어려울 것 같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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