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공단 50주년, 역사함께 해 온 코오롱인더스트리, 폴리이미드 필름으로 업계 주목

발행일 2019-09-17 20:00:0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1970년 한국폴리에스텔 창업주 고 이원만 사장이 착공, 화섬업계 탈피해 첨단소재로 산업구조 다각화

구미국가산업단지 제1단지 내 코오롱인더스트리 구미공장 전경.
구미공단이 조성 50주년을 맞았다.

50여 년 간 구미국가산업단지에는 많은 기업이 생겨나고 또 사라졌다. 제조 기업의 평균수명이 12~15년인 점을 감안하면 당연한 결과다.

그런데 변화와 혁신을 거듭하며 구미국가산단과 운명을 같이해 온 기업이 있다.

구미국가산단 제1단지에 있는 코오롱인더스트리다. 창립 당시 이름은 한국폴리에스텔이다.

코오롱인터스트리는 최근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 국내 모바일업체는 물론 글로벌 기업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 회사는 한국폴리에스텔 창업주인 고 이원만 사장이 1970년 3월18일 구미가 입지적으로 적합하다는 판단에 따라 착공한 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화섬산업의 발전과 함께 성장하던 코오롱인터스트리는 2000년대 초반 큰 위기에 봉착한다.

중국의 물량공세로 화섬업계 전반에 위기가 닥치면서 2002년 말 800여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결국 2003년 말 구조조정이란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노조와의 갈등을 피해갈 순 없었다.

노조는 근로조건 유지와 고용보장을 요구하며 2004년 6월부터 8월까지 64일간 장기파업을 벌였다.

2005년에도 사측의 추가 정리해고에 맞서 노조는 본관과 정문 앞 집회와 출근 방해는 물론 코오롱 제품 불매운동, 구미공장 송전철탑 점거시위, 이웅렬 코오롱 회장 사택 점거 등 강경투쟁을 이어갔다.

하지만 해마다 거듭하는 파업과 무노동 무임금에 지친 근로자들 사이에 위기감이 커졌다.

결국 2005년 7월 온건파인 김홍열 위원장이 새로운 노조위원장에 당선되면서 사측과 갈등을 빚었던 민주노총과 결별했다. 노조의 변화는 회사의 안정적인 성장을 뒷받침하고 신규투자를 이끌어냈다.

회사는 노조의 협조에 힘입어 원사 부문 분할, 코오롱유화 합병, 폴리이미드(PI) 필름 합작법인 설립 등 굵직한 현안들을 처리하고 첨단 신소재와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으로 재편하는 등 사업구조 고도화에 박차를 가했다.

2010년까지 총 1천500억 원을 투자해 고기능 첨단 산업용 소재 설비를 증설하고 130명을 신규 채용했다.

또 2016년 투명 폴리이미드 필름 CPI를 개발한 코오롱인터스트리는 미래 디스플레이 시장을 주도하기 위해 구미에 1천200억여 원을 투자해 2018년 구미에 생산라인을 구축했다.

이 생산라인은 현재 연간 300만 대의 폴더블폰에 적용할 수 있는 투명폴리이미드 필름을 생산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국내외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현재 1개 라인을 가동 중인데 시장 수요에 따라 증설을 계획 중이다”고 말했다.

투명폴리이미드필름 CPI는 일본이 수출규제 대상 품목으로 지목한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를 대체할 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코오롱인더스트리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투명폴리이미드 필름인 CPI는 유리처럼 투명하고 강도가 세면서도 수십만 번을 접어도 흠집이 나지 않아 개발 당시부터 관심을 모았던 차세대 디스플레이 핵심소재다.

화섬산업의 쇠퇴와 동종업체들의 도산에도 변화를 거듭해 온 코오롱인더스트리는 구미국가산단과 닮았다.

최근 구미국가산단은 대기업들의 해외·수도권 이전과 중소기업들의 가동 중단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산업다각화와 구조고도화, 신기술 개발 등을 통해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코오롱인더스트리가 어려운 국내외 여건에도 노사가 함께 상생을 다짐하고 새로운 신기술 개발에 나서 이룬 성과에 주목해야 한다.

신승남 기자 intel887@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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