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배미 길 질컥질컥해서/ 오늘도 삭신 꾹꾹 쑤신다// 아가 서울 가는 인편에 쌀 쪼간 부친다 비민하것냐만 그래도 잘 챙겨묵거라 아이엠 에픈가 뭔가가 징허긴 징헌갑다 느그 오래비도 존화로만 기별 딸랑 하고 지난 설에도 안 와브럿다 애비가 알믄 배락을 칠 것인디 그 냥반 까무잡잡하던 낯짝도 인자는 가뭇가뭇하다 나도 얼릉 따라 나서야 것는디// (중략) 지랄 놈의 농사는 지먼 뭣 하냐 그래도 자석들한테 팥이랑 돈부, 깨, 콩, 고추 보내는 재미였는디 (중략)더 살기 팍팍해서 어째야 쓸란가 모르것다 너는 이 에미더러 보고 자퍼도 꾹 전디라고 했는디 달구똥마냥 니 생각 끈하다// 복사꽃 저리 환하게 핀 것이/ 혼자 볼랑께 영 아깝다야
- 시조집 『해남에서 온 편지』(태학사, 2000)
진한 남도사투리의 정서가 따로 해석이 없어도 통째로 스며든다. 시인이 이 시의 배경에 대해서도 언급한 바 있어 마저 소개한다. “내가 있는 학교의 제자 중에 수녀가 한 사람 있었다. 시를 쓰기 몇 해 전 남도 답사길에 학생 몇이랑 그 수녀의 고향집을 들르게 되었는데 노모 한 분만 집을 지키고 있었다. 생전에 남편이 꽃과 나무를 좋아해 집안은 물론 텃밭까지 꽃들이 혼자 보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흐드러져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엄니도 하늘로 간 ‘애비’를 따라나섰고, 고향집도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그리움은 보고픈 감정이 해결되지 않을 때의 묵힌 정서 상황이다. 사랑하는 사람 사이의 그리움이 별밭에 일렁이는 은하수라면 고향에 계시는 부모들의 대처로 나간 자식들에 대한 그리움은 차라리 겨울비탈에 선 애절한 나목이다. 부모둥지 떠난 자식들의 고향 찾는 횟수가 고작 일 년에 두어 번. 그조차 여의치 않을 수 있다. 너나없이 승용차가 있고 씽씽 고속열차가 달려도 사정은 별반 나아진 게 없다. 힘들게 고향을 찾아와서도 재깍 내뺄 궁리만 앞선다. 처음부터 복귀할 만반의 태세를 갖춘 듯하다. 그래야 잘나가는 자식의 유세처럼 보인다.
어머니 안 계시는 추석을 세 번째 지냈다. 남 보기엔 무심한척 해도 불쑥불쑥 치밀어 오르는 그리움은 어쩌지 못하겠다. 작은 아이와 둘이서 ‘오붓하게’ 차례를 지내고 한 상에서 음식을 먹고 술도 한잔 했지만 좀처럼 적막함은 사위어들지 않는다. 어머니 아버지와는 지방의 ‘신위’ 앞에 절을 올리는 게 고작이고 손녀 지혜와는 영상통화로 만족해야했다. 나도 어쩌다가 ‘노인 홀로 가구’가 되어있지만 우리 자식들이 부모를 받들어줄 것이란 기대는 거의 무망하다. 노후의 경제적 안정 못지않게 정서적 안정과 자립이 필요한 때다. 도리 없다, 저 달은 언제나 둥글고 환한 얼굴이지만 자식에 대한 기대는 팍팍 줄이고 그리움 또한 탈탈 털어내는 수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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