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피소인 포항 흥해실내체육관에 가보니…||이재민들 “이주 지원 해달라” 포항시 상대 소송

▲ 2017년 11월 발생한 포항지진으로 인한 이재민 중 30여 명이 4년째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흥해실내체육관에서 생활하고 있다. 사진은 천장에서 새는 빗물 등을 받기 위해 갔다 놓은 양동이.
▲ 2017년 11월 발생한 포항지진으로 인한 이재민 중 30여 명이 4년째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흥해실내체육관에서 생활하고 있다. 사진은 천장에서 새는 빗물 등을 받기 위해 갔다 놓은 양동이.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11일 오전 포항 흥해실내체육관.

겉으로 봐선 일반 체육관과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한눈에 대피소인걸 짐작케 했다.

실내에 들어서니 후텁지근했다. 1·2층에는 철거되지 않은 텐트 230여 개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2017년 11월 규모 5.4 지진이 일어난 직후 이재민을 위해 설치한 풍경 그대로다.

바닥 장판은 여기저기 뜯겨 있었고, 빗물이 새어 임시방편으로 양동이로 물을 받고 있었다.

텐트에 널어둔 빨래, 2층 난간에 놓인 화분 및 운동기구들은 일반 가정집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재민 대다수가 직장 및 학교에 가거나 외출한 상태여서 사람은 별로 없었다.

텐트 안에 웅크리고 누워 있는 한 노인에게 안부를 물으니 “낮에는 덥고 밤에는 바닥에서 냉기가 올라온다”면서 “천장에서 물이 줄줄 새고 갈수록 금이 간 곳의 틈이 더 벌어지는 집에는 불안해서 살지를 못해 2년째 여기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흥해실내체육관은 지진이 일어난 직후 1천 명이 넘는 이재민이 몰렸다.

그러나 이제는 이재민 대부분이 새집으로 이사했거나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지원한 임시 주택에서 살고 있다.

이제 남은 대피소는 이곳 흥해실내체육관이 유일하다. 현재 이곳에 등록된 이재민은 91가구 208명이다.

이 중 82가구가 한미장관맨션 주민이다. 실제로 숙식하는 인원은 30명 내외로 알려졌다.

이 맨션 주민들은 포항시가 건물 점검에서 소파(小破·일부 파손) 판정을 내린 뒤 귀가하도록 했지만 따르지 않고 대피소 생활을 하고 있다.

사람이 살기 어려울 정도로 건물이 부서져 귀가할 수 없다는 게 이유다.

주민들이 선정한 전문업체의 점검에서는 2개 동이 E등급, 나머지 2개 동은 D등급 판정을 받았다. E등급은 전파(全破), D등급은 반파(半破)에 해당한다.

두 점검의 차이는 저마다 적용한 설계기준에서 비롯됐다. 포항시는 건물 신축 당시인 1988년 설계기준을, 주민들은 2016년 개정된 구조안전성 기준을 적용했다.

논란이 일자 행정안전부는 ‘설계 당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했다. 결국 한미장관맨션 주민들은 이주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억울함을 느낀 주민들은 현실에 맞는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라며 포항시를 상대로 소송까지 제기했다. 하지만 지난 6월 열린 1심에서 패소했다. 그리고 대피소 생활은 현재진행형이다.

이들에게는 이번 추석 명절이 반갑기는커녕 부담스럽다. 집안 곳곳에 금이 가면서 방치돼 차례 지낼 곳도 마땅치 않다.

이모(68·포항시 흥해읍)씨는 “자식들이 포항에 와도 부서진 집에서 명절을 함께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아 오지 말라고 했다”며 “대피소에 합동 차례상이 차려지면 같이 생활하는 이웃과 함께 차례를 지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아예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는 이재민도 상당수였다.

익명을 요구한 70대 노인은 “삶의 터전이 망가지고 텐트에서 비참한 생활을 하는데 무슨 차례를 지내느냐”며 “몸과 마음이 약해지고 명절 기분도 나지 않아 차례 대신 집사람과 인근 사찰에서 조용하게 보내기로 했다”고 전했다.

대피소에서만 4번째 명절을 맞는 한 이재민은 “‘추석’이나 ‘차례’는 우리에겐 사치성 단어”라며 “그저 하루빨리 안전한 보금자리에서 지내는 것이 소망”이라고 했다.



김웅희 기자 woong@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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