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민족통일국가에 대한 환상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문 대통령은 ‘한반도 운전자론’을 내세우며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완화하고 북핵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주요국 정상들의 동조를 이끌어내려고 동분서주하여 왔다. 단일민족통일국가라는 위업을 달성하여 우리민족끼리 잘 살아보겠다는 순수한 열정에서 온갖 수모와 오해를 마다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상이한 이념체제를 가진 나라를 평화적으로 통일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 방법 중 하나가 연방제통일방안이다. 이러한 구상은 김대중 대통령의 지론이었고, 북한의 주장과 궤를 같이했다. 연방제는 양 체제의 과도기적 연결고리다. 남북이 합의한다면 가능하겠지만 최종적으로 어느 체제로 갈 것인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북한은 체제의 전투력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연방제통일방안을 주장했다. 모택동 전술에 능한 북한의 눈엔 느슨한 남한의 적화는 식은 죽 먹기로 보였을 것이다. 인구에서 열세이긴 했지만 사상교육에 철저한 공산체제가 유약한 자유 민주체제를 제압한다고 봤다. 우파가 연방제통일방안을 종북 논리로 몰아붙인 연유다.

그 결과는 별론으로 하고, 연방제가 현실적으로 가능하자면 양 체제가 유사할 필요가 있다. 양 체제가 접근해야 한다면 북한체제가 바뀌길 기대하는 것보다 대한민국 체제를 바꾸는 것이 더 수월한 선택이다. 헌법 제4조 위반으로 위헌이긴 하다. 지금 대한민국이 직면하고 있는 전대미문의 혼돈은 그 과정일 수 있다. 그런 다음에 경과적으로 연방제로 가고, 종국적으로 단일민족국가로 통일하는 수순이다. 그렇게 보면 한미일 체제를 깨고나와 북중러 체제에 접근하려는 움직임과 포용경제, 소득주도성장을 위시한 사회주의 정책의 기저에 단일민족국가라는 큰 그림이 깔려있다. 통일만 된다면 자유민주주의가 승리할 것이란 야무진 희망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유란 바이러스와 같아서 쉽사리 박멸할 수 없는 측면이 있긴 하다. 그렇지만 불확실한 미래를 입맛대로 재단할 순 없다.

북한은 한반도를 적화함으로써 체제경쟁에서 승리하고자 했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며 전쟁 준비에 매진했지만 선전·선동과 교란을 통한 체제 전복도 도모했다. 연방제통일방안도 대한민국을 적화하기 위한 통일전선전술이었다. 김일성과 김정일 시대엔 남북 인구격차가 크지 않았고, 유일지도체제가 굳건했기 때문에 연방제통일방안의 최종승자는 공산체제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김정은 시대를 맞아 북한은 내적 조건이 확 바뀌었다. 주민통제가 느슨해지고 경제격차가 확대되었지만 핵 개발이란 대어를 낚아채었다. 대한민국도 크게 변했다. 자유가 고도로 신장되었고, 경제는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하였다. 북한이 평화적으로 적화하기에 부담스러운 환경이다. 북한체제로 통일한다고 하더라도 세습독재체제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어렵게 된 셈이다. 허나 북핵은 모든 변화를 압도했다. 확고한 체제유지는 물론 일약 군사강국으로 올라섰다. 어느 나라도 흔들 수 없는 나라가 되었다. 그렇지만 자유 시장경제체제하의 글로벌 개방국가를 통합한 단일민족국가란 득템이 체제붕괴의 덫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복병일 수 있다. 자연스런 귀결이다. 그런 연유인지 김정은은 우리민족끼리란 통치담론을 국가제일주의로 변경했다. 하나의 조선을 포기한 듯하다. 북한 개정 헌법에 민족성보다 국가성을 강조한 점이 그 증좌다. 홍콩사태에서 드러난 일국양제의 한계도 하나의 조선을 폐기하는데 일조했을 법하다. 남쪽의 좌파에겐 닭 좇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다.

상황이 급변하였다면 그 변화에 대응하여 좌파 정권도 지금까지 지향했던 큰 그림을 대폭 수정할 필요가 있다. 북한을 감성적 관점에서 같은 민족의 통일 대상 집단으로 다룰 게 아니라 이웃하는 호전적인 독립국가라는 시각에서 이성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대한민국 헌법 제3조(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와 제4조(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는 논의대상이다. 영토와 통일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 우파와 좌파의 대립을 발본색원하여 엉뚱한 곳에 국력을 낭비하는 일을 없애야 한다. 단일민족통일국가는 시대에 뒤떨어진 그릇된 신화다. 한미동맹이 삐걱거리는 판에 미북의 밀월관계가 심상찮다. 방치하면 재앙이 될 수 있다. 미국이 중국과 수교하면서 대만을 내친 일은 타산지석이다. 명분보다 실리가 우선이다. 알량한 자존심보다 한미일의 신뢰회복이 실리이고 국익이다. 힘이 없으면 자존심도 없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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