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과 잘 지내는 법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일본의 백색국가 제외 결정에 대하여 대한민국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을 구사했다. 백색국가 제외로 대응하고, 한술 더 떠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도 파기하였다. ‘너 죽고, 나 죽자’ 식이다. 화끈하고 시원하다. 그렇지만 갈등이 해결될 기미는 없다. 일본도 한심하긴 하지만 남의 나라에 ‘감 놔라 배 놔라’ 할 순 없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대한민국의 편에 서서 훈수를 떠보는 일은 의미 없진 않을 것 같다.

일본이 백색국가 제외를 결정한 이유로 든 건 화학무기 제조나 핵무기 제조에 쓰일 수 있는 불화수소다. 그 논리는 간단하다. 불화수소를 평소 물량보다 훨씬 더 많이 사갔는데, 그 행방이 묘연하다. 북한으로 넘어갔을 가능성이 있다. 안보상 이유로 전략물자 수출을 심사하겠다. 이건 WTO 위반이 아니다. 견강부회로 명분을 급조한 감은 있지만 논리는 된다. 대한민국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유일하게 일본의 백색국가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젠 믿을 수 없으니 다른 국가와 같이 취급하겠다는 것이다. 막연한 정황만을 트집 잡아 수출할 때마다 일일이 심사해보고 그 허가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말이다.

사법적 판단 내지 정치·외교적 사안에 대한 경제제재를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보는 입장에선 가히 흥분할 만하다. 글로벌 밸류 체인으로 묶여 복잡하게 뒤엉켜서 돌아가는 자유무역체제하에서 정치·외교적 문제로 경제보복을 감행하는 일은 비열한 짓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그 본심이 무엇이든 간에 외형상 안보불신을 명분으로 경제보복을 당했다면, 그 명분에 대한 성실한 해명이 필요하다. 일본이 의심하는 전략물자 수입 분에 대한 사용실태와 재고를 상세히 알려주고, 그 의심을 해소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협상의 실마리가 풀린다. 그런 절차도 없이 감정적으로 맞대응한 조치는, 순진한 건지 무능한 건지, 적절하게 대처한 건 아닌 것 같다. 격분한 상태에서 판단하면 반드시 실패한다는 칭기즈칸의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은 일본이 선공했기 때문에 보복 차원에서 똑같은 제재를 한 것이 되었다. 일본 주장처럼 WTO 규약 위반일 수 있다. 덫에 걸린 꼴이다. 안보불안으로 인한 제재는 WTO 규약 위반이 아니라는 일본이 뺨을 때리고 싶도록 얄밉긴 하다. 그렇지만 계속 당하고 화만 낼 게 아니라 일본의 영리한 면모도 배워둘 필요도 있다.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해 ‘죽창 의병’과 ‘이순신의 열두 척’을 거론하며 일제 불매와 반일을 선동하며 국민을 갈라 친 전략은 거의 초등학생 수준이다. 명분으로 내세운 이유를 성실히 해명하고 물밑으로 본심을 공략하는 세련된 대응이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 일본의 제재는 올 초부터 벌써 예견된 비밀 아닌 비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대책도 없이 손 놓고 있다가 보복을 당하고 나서 허둥거리며 국민의 뒤로 숨는 모습은 정말 무능하고 못났다.

국민들이 흥분하여 일제 불매와 반일을 선동하더라도 정부는 냉정하게 대응해야 하는 것이 정석이다. 흥분하면 진다. 낭창하게 대응해야 이긴다. 일본이 수출을 하지 않겠다는 것도 아니고 일일이 심사하겠다는 것이다. 협상과 동시에 관련 기업에게 당장 도움이 필요한 조치를 해주고, 보란 듯이 대일 투자와 협력을 더욱 돈독히 하도록 장려하는 등 통 큰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한수 위의 대응방법이 아닐까. 이런 고수가 상대방을 더 자극할 수 있다. 글로벌 초연결사회에서 소재·부품·장비 등 모든 부문을 국내에서 생산하는 폐쇄적 독립경제체제는 퇴행적 시스템이다. 글로벌 밸류 체인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국제 분업 생태계에서 수직 계열화를 갖추겠다는 생각은 원시적 사고다. 국가 간 경제전쟁을 불가능하게 하는 묘책은 상호 긴밀히 밀착하는 것일 수 있다. 상호 의존성이 높은 개방경제가 경제전쟁을 원천봉쇄하는 최선책이다.

소재·부품·장비 국산화를 지원하는 인위적 전략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가 마음먹은 대로 다 할 수 있다면 세상에 못사는 나라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국제 분업은 시장에 맡겨두는 것이 최선이다. 기업이 스스로 알아서 할 일이다. 국가는 인력개발과 기초과학 연구개발에 주력하고 기업은 관련 기술 연구개발에 집중하는 식의 역할분담이 장기적 해법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이웃을 바꿀 수 없다면 서로 돕고 협력할 일이다. 분노는 후회를 낳고, 용서와 배려는 상생으로 이끈다. 이웃과 잘 지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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