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소리 / 임영조

발행일 2019-08-22 14:35:13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매미소리/ 임영조

감나무 가지 매미가 악쓰면/ 벚나무 그늘 매미도 악쓴다/ 그 무슨 열 받을 일이 많은지/ 낮에도 울고 밤에도 운다/ 조용히들 내 소리나 들어라/ 매음매음… 씨이이… 십팔십팔/ 저 데뷔작 한 편이 대표작일까/ 경으로 읽자니 날라리로 읽히고/ 노래로 음역하면 상스럽게 들린다.

- 시집『그대에게 가는 길』(천년의 시작, 2008)

.

휘파람새는 수컷이 암컷에게 구애를 할 때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고 한다. 암컷은 수컷의 가창력도 살피지만 무엇보다 레퍼토리의 다양성에 더 점수를 준다. “호오, 호케꼬, 케꼬” 노래하며 간간히 바이브레이션을 뽑는다. 노래를 잘하는 수컷이 암컷의 선택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사랑의 고행은 매미도 마찬가지다. ‘여름이 뜨거워서 매미가 우는 것이 아니라 매미가 울어서 여름이 뜨거운 것’이라며 안도현 시인은 말했다. 그 뜨거운 여름도 꺾여 처서의 끝물에 밤낮없이 줄기차고 맹렬했던 매미울음도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오랜 땅속 굼벵이 생활 끝에 지상에서의 한 달 남짓한 삶이니 암놈을 부르는 러브콜은 타는 목마름이고 지금은 처연하게 들릴 수밖에. 그래서 열 받을 일이 많아서가 아니라 스스로 열을 낸다고 해야 옳겠다. 만약 정말로 열 받은 매미가 있어 ‘씨이이.씹팔씹팔’ 한다면 아마도 구애 작업이 신통찮거나 열불 나게 하는 인간들 때문일 것이다. 시인은 그 소리가 마치 데뷔작 한 편 달랑 대표작으로 내놓고 내내 우려먹는 시인의 경전처럼, 소품종 소량 생산으로 오랫동안 심각하게 남은 시인의 넋두리처럼 들렸던 모양이다.

하지만 매미의 입장으로 관찰하면 날라리일 수가 없다. 우리 귀에는 같은 레퍼토리가 귀에서 공명하듯 들리지만 매미들에겐 그렇지 않다. 매미울음소리도 따지고 보면 지구온난화현상에 따른 기온 상승과 인간이 만들어낸 불빛 때문이라고 한다. 매미의 체온이 일정수준 이상이라야 울음을 울 수 있는 조건이 되며 기온이 떨어지면 울라고 애걸복걸해도 울지 않는다. 또 그래야 구애가 되고 사랑도 이뤄져서 스스로 강한 생존의 에너지와 번식력을 키워갈 수 있겠다.

좀 예민한 분들도 얼마 남지 않은 이 여름 탓이고 세상 돌아가는 꼬락서니 탓이려니 여기며 꾹 참아야지 별 도리 없겠다. 그런데 매미가 물러가도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에 대한 깔 쥐어 물어뜯기는 점입가경 찬바람이 불 때까지 계속될 태세이며, 그 소음은 매미소리의 두 배쯤인 160데시벨은 되는 것 같다. 세상 온통 이 소음에 파묻혀 그동안 안보와 경제, 민생이니 하며 떠들어대는 것들도 다 빈 소리처럼 여겨진다. 야당은 청문회를 최대한 뒤로 미루면서 이를 즐기고자 하는데, 이쯤 되면 진영 간의 진검승부나 다름없이 되었다.

그럴 수 있다는 양해의 수를 쌓아올리면 우리사회에서 모두 이해하고 넘어갈 일들이지만, 부도덕과 비양심의 기미를 추출하여 낙인을 찍어버리면 죽어도 장관을 시킬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조국과 조국을 위해 벌이는 싸움처럼 비쳐지지만 이 싸움은 오래 전부터 준비되어왔다. 양쪽 모두 고난을 벗 삼아 당당하게 싸움에 임하고 있으나, 국민들로서는 애국으로 읽자니 ‘날라리로 읽히고’ 정파 싸움으로 음역하면 ‘상스럽게 들리니’ 어쩔 노릇인가. 매미소리는 머지않아 소멸되겠으나 우우 피 끊는 우리들의 속울음은 언제쯤이나 사라질까.

<저작권자ⓒ 대구·경북 대표지역언론 대구일보 .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