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100년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그의 시 ‘불과 얼음’에서 ‘누군가는 세상은 불에 싸여 종말을 고할 것이라고 하고, 다른 누군가는 얼음에 싸여 끝날 것이라고 한다’고 썼다. 이 시구는 종종 타오르는 거대한 불꽃과 같이 인간의 헛되고 과도한 욕망과 열정은 두 말할 것 없고, 얼음과 같이 차가운 인간의 증오심과 냉담함 및 잔인함도 세상을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고 갈 수 있다는 경고의 의미로 차용된다.

그런데 최근 미중 간 경제전쟁이 확전 일로를 걷는 것을 보니, 프로스트의 경고가 이 두 국가 탓으로 현실화될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커진다. 이번 달 초 미국의 중국에 대한 4차 추가관세조치로 다시 불붙은 양국 간 경제전쟁은 미국산 농산물 수입중단과 위안화 평가절하라는 중국의 맞대응을 불러왔고, 이에 대해 미국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고 무역회담을 연기함으로써 전면전으로 치닫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 탓에 안전자산으로 잘 알려진 달러화와 엔화의 가치는 급등한 반면 원화를 비롯한 개도국 통화의 가치는 급락을 유발했다. 소위 공포지수라 불리는 VIX 지수(volatility Index)가 급등하면서 투자자들의 심리도 매우 불안정해지고 있다. VIX 지수는 S&P 500 지수옵션의 향후 30일 간의 변동성에 대한 시장기대를 나타내는 지표로 낮을수록 시장 안정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달까지만 해도 10%대 초반 수준에서 유지되던 이 지수가 10%대 후반까지 급등하면서, 세계 경제의 리스크가 급격히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지금까지 나타난 현상을 두고 프로스트의 경고가 현실화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미국의 중국에 대한 환율조작국 지정 후 조치가 지금과 같이 강경 일변도로만 간다면 그럴 가능성은 커진다.

우선, 이번 조치로 인해 2017년에 3% 정도에 불과했던 미국의 대중 평균 관세율은 2년도 채 안되어 27%를 상회할 전망이다. 또, 중국이 개도국으로서 WTO 최혜국 대우를 받지 못하게 되면 평균관세율은 무려 38% 정도까지 뛰게 된다. 미국에 연간 약 2조 달러의 부가가치를 수출하는 중국의 입장에서는 큰 부담일 수 밖에 없고, 중국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도 막대한 경제적 부담을 안아야 함은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GDP의 약 0.5%에 해당하는 부가가치를 중국을 통해 미국으로 간접 수출하는 실정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무조건 유리하지만은 않다. 예를 들어, 대공황 초기인 1930년에 미국은 약 2만여 개에 달하는 수입품에 평균 59%, 최고 400%의 관세를 부과하도록 한 스무트-홀리 관세법을 통과시켜,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일자리를 보전함으로써 대공황으로부터 빨리 탈출하려 했다. 하지만, 그런 기대와는 반대로 대공황은 더 심각한 수준으로 내달았다. 이번 조치도 마찬가지다. 미국도 최악의 경우에는 약 1% 포인트 정도의 GDP 손실을 감수해야만 한다. 그래서 그런지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미국 FRB가 금리인하 압박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는 생각도 든다. IMF가 미국의 중국에 대한 환율조작국 지정도 근거가 박약하다는 평가처럼 날로 높아지는 세계적인 비판도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그야말로 전쟁이라 불릴 만큼 심각해지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빨리 해소되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오래 갈 것 같다. 그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마도 가장 큰 것은 미국과 중국의 생각이 매우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한 번 미국을 위대한 국가로’라는 슬로건에 담겨 있는 패권국으로서의 욕망과 열정의 불꽃을 영원히 간직하고자 하는 미국과 ‘자력갱생’을 외치며 세상 모든 것의 중심인 ‘중화(中華)’를 재현하고자 하는 중국의 생각은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조정될 수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만약, 빠른 시일 내에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면 이는 마치 폭풍우 속을 걸으면서 옷자락 하나 젖지 않길 바라는 것과 같다. 어쩌면 지금의 미국과 중국은 중세말기에 영국과 프랑스가 그랬던 것처럼 이제 막 ‘100년 전쟁’을 시작한 지도 모른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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