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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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복이 지났다. 더위도 이제 서서히 물러날 채비를 하는지 금세라도 시원한 바람이 창으로 쏴~불어들 것만 같다. 매미 소리 요란하지만 머잖아 잠자리 날아다니는 까슬까슬한 공기가 찾아들 것도 같다.

가을이 다가오지만 대구는 여전히 더위로 이름값을 하고 있다. 더위를 달래기 위해 말도 적게, 몸 움직임도 최소한으로 하며 지낸다. 낮 기온이 35도까지 오르겠다는 예보에 얼른 냉커피로 속을 달랜다.

유명커피숍에서는 시원한 커피를 주문하자 ‘아아’요? 라고 한다. 처음 들었을 때 무슨 뜻인지 짐작하기도 힘든 이 단어는 첫음절만을 따서 만든 신조어라고 한다. 너무 더워 질러대는 감탄사인가 했는데 ‘아아’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줄임말이란다. 단어에 특별한 뜻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럿이 와서 주문할 때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어 그렇게 부른다니. 그러면 뜨거운 커피는 “뜨아‘라고 부르느냐고 물었더니, 따뜻한 아메리카노여서 ‘따아’라고 한다며 꼰대를 대하는 듯한 표정으로 웃는다. 그래 ‘아아’와 ‘따아’ 사이에 우리의 가을이 찾아오지 않을까 싶어 머릿속에 ‘아아/따아’ 하고 새겨본다. 어찌 됐건 마음만은 시원하게 냉 음료를 들이키며 마지막 더위를 즐겨야 하지 않겠는가.

덥다! 덥다고 하는 것도 이제 며칠 남지 않은 것 같다. 아침저녁 견디기가 훨씬 수월하다는 이들이 많은 것을 보니. 이 무더위도 지나고 나면 지겹다는 생각은 어느새 추억이 되어 언젠가는 그리워질 날이 오지 않으랴. 농부가 부지런히 씨를 뿌려 더운 여름 땀 흘리고 가을에 열매를 거두듯이 우리가 흘린 땀도 열매를 거둘 수 있지 않겠는가. 더운 여름 동안 부지런히 애쓴 덕분으로 가을이 되면 그 수고가 기쁨의 열매로 맺어지게 되길 바라야 하지 않겠는가.

지루한 장마는 햇볕의 소중함을 기억하게 하고 목마른 가뭄은 단비의 소중함을 잊지 않게 한다. 달콤한 일상을 바라는 이는 자신의 성장을 위해 아무리 덥더라도 성실한 일상을 꿋꿋이 가꾸어 나가야 한다. 그리하여 기쁨의 열매를 가득 담을 수 있는 가을이 되어 마음껏 행복하기를 희망한다.

사람이 가장 쾌적하게 느끼는 온도는 18도에서 20도 사이라고 한다. 에어컨을 틀어도 실내온도가 외부 기온과 너무 차이 나지 않도록 25도 전후로 맞추어 생활하기를 권장하는 것과는 큰 차이다. 이 쾌적한 온도로 항상 유지하는 곳은 어디일까. 작품을 보호하기 위해 일정한 기온을 유지하는 바로 박물관, 미술관 등이다. 그러니 이처럼 늦더위가 몰려오는 계절이면 가장 마음 편하게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곳은 바로 이런 곳이라 사람이 몰린다. ‘뮤캉스’를 즐기는 이들이다. 뮤지엄 바캉스! 여름의 막바지에 많은 훌륭한 작가들의 전시회도 있어서 이번 여름의 늦더위는 지치지 않고 보낼 수 있는 새로운 휴가가 아니겠는가. 시간을 내어 박물관도 가보고 미술관도 찾아가서 더위도 식히고 그림 전시도 보면서 여름을 잘 보내는 이들은 참 행복한 마음으로 더위를 영양가 있게 이겨내는 이들이지 않겠는가.

폴 스미스의 작품 전시를 위해 차표를 예매한 지인은 시원한 그곳에서 그의 독특한 작품들을 보면서 그동안 가까운 이로부터 상처를 받아서 말하지 않고 지냈던 꽁함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며 문자를 보냈다. 더위를 벗어나게 하는 시원한 실내 온도가 그의 마음마저 정화하여 주지 않았는가 싶어 다행스럽다.

누군가에게 꽁하는 감정으로 서로가 소원하게 지나는 것만은 더위가 가시는 이맘때쯤이면 꼭 극복해야 할 숙제가 아닐까 싶다. 해리슨 포드의 말대로 우리는 모두 인생에서 만회할 기회라 할 수 있는 큰 변화를 경험한다. 더위로 지친 몸을 추슬러 가까운 이들과 멀어졌던 관계나 벌어진 틈새를 잘 메꾸어 나가야 할 때인 것 같다. 사람의 일생에는 수많은 기회가 있지 않던가. 더러는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치기도 하고 때로는 그것이 아니라고 외면하기도 하지만, 세월이 지난 뒤에 생각해보면 그것이 나에게 찾아온 ‘절호의 기회였는데’라고 무릎을 친 경우도 있지 않은가. 우리네 인생은 언제나 좋은 결과만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면서 살아가지 않던가. 중요한 것은 실패했을 때 좌절하지 않는 것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 도전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날씨가 아직 더위가 남아있지만, 언제나 밝고 긍정적인 기운으로 많이 느끼고 감동하며 좋은 하루를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어느 순간 ‘아아’에서 ‘따아’를 주문하며 더위를 그리워할 날도 있으리니.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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