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의 힘 / 최승호

발행일 2019-08-08 15:44:58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인식의 힘/ 최승호

절망한 자들은 대담해지는 법이다----니체

도마뱀의 짧은 다리가 .

날개 돋친 도마뱀을 태어나게 한다

- 시집 ‘대설주의보’(민음사.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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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한 자는 대담해지는 법이다’라는 니체의 철학적 경구를 앞장세웠다. 이 짧은 시는 절망에 대한 인식이 곧 절망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먹이를 찾아 끝없이 먼 사막을 통과해야 하는 도마뱀에겐 ‘짧은 다리’가 한계이고 곧 절망이다. 더 이상 기댈 것이 없고 잃을 것도 없다. 자신의 한계를 뼈저리게 인식하고 꿈틀하는 순간 겨드랑이가 스멀거리기 시작한다.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 식의 대담한 용틀임이, 그 몸부림의 적분으로 DNA가 형성되고 결국 ‘날개 돋친 도마뱀을 태어나게 한’ 것이다.

자신의 다리가 최대의 핸디캡이란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으면 어림없는 몸짓이다. 한계를 인식하고 절망의 지점에서 대담해질 때 가능한 도약이다. 자기보다 신체적 조건이 좋은 천적에게 쫓기며 수없이 많은 도마뱀들이 절벽 아래로 몸을 날렸으리라. 그런 수천만의 절망이 날개를 돋게 했고 새의 시조인 ‘익룡’이 되었다. 그렇다면 절망이야말로 새로운 도약과 혁명의 출발점인 셈이다. 떠먹여주는 밥에 길들여지고 만족한 돼지는 우리 밖의 세계를 꿈꾸지 않는다. 절망적인 자신의 상황을 분명하게 인식할 때 비로소 절망을 극복할 수 있다.

절망을 두려워하거나 상황을 외면하려고만 하면 평생 짧은 다리의 불안한 도마뱀으로 살아가도 도리 없는 일이다. 어찌 절망을 두려워하랴. 절망과 도전이 아니었다면 이 세계는 이만큼 진보하지 않았으며 어쩌면 존재 자체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까지 했다. 그만큼 절망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 상황이며 치명적인 마음의 상처인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역사 속의 숱한 터닝 포인트와 위대한 인물들의 생애에서 보듯 절망은 희망의 다른 이름이었다.

‘지구는 좌절의 별’이라는 볼프 슈나이더한의 말처럼 우리는 좌절과 고통이 함께하는 별에 살고 있다. 누구에게나 좌절과 절망의 순간은 있기 마련이지만 중요한 것은 절망의 도가니에 갇혀 내내 머리를 쥐어뜯으며 시간을 보낼 것이냐 ‘인식의 힘’을 발휘하느냐에 달려있다. 그 ‘인식의 힘’으로 기적이 일어나는 것은 스포츠에서는 흔한 일이다. 극적인 승리의 많은 경우는 그렇게 해서 쟁취한 것이리라. 불치의 병이란 절망적인 진단을 받고서도 이를 이겨낸 많은 사람들의 불굴의 의지 또한 ‘인식의 힘’이라 할 수 있겠다.

“난 이제 끝났어. 여기가 끝장이야”라고 스스로 규정지으며 주저앉지만 않는다면 사람이 빠져나올 방법이 없는 절망적인 상황은 없다. 오히려 절망의 끄트머리에서 이보다 더 나빠질 수 없다는 결기의 날을 세울 때 겨드랑이가 가려워지고 찬란한 날개가 돋는 법. 국가나 한 집단이 위기 상황을 극복하는 문제도 그렇다. 절망적인 상황은 비관적인 마음에서 나오지 않는가. 자기 내부에서 스스로를 무릎 꿇게 하고 끊임없이 야단만 칠 때는 기가 모아지지 않고 힘도 빠진다. 불가능한 일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불가능한 생각이 존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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