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질 수는 없다

홍덕률

대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지난 8월2일, 일본이 전면적인 경제침략에 나섰다. 그 전까지 보여온 태도도 무례하기 짝이 없었다. 한국 정부가 기울인 다각도의 외교 노력들은 억지와 대화 거부에 부딪쳤다. 한국의 실무 협상단은 물론 주일 대사, 특사단, 방일 의원단 등도 노골적으로 홀대받았다.

우리 국민은 자존심에 심한 상처를 입었다. 불매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거리 촛불도 등장했다. 대통령도 단호한 대응 의지를 천명했다.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을 것이며 국민을 믿고 정부가 앞장서겠다고 했다. 경제부총리와 장관들도 정부의 대응 방침을 발표했다.

정치권도 나섰다. 여와 야가 함께 일본 규탄 성명을 채택했다. 만장일치였다. 만시지탄이지만 다행이었다. 일본의 경제침략 대응 예산을 포함해 지루하게 끌던 추경 예산안도 통과시켰다. 전열을 갖춘 셈이다.

적지 않은 고통이 따르겠지만 꼭 성공해야 한다. 우리 경제의 일본의존도를 줄이고 경제체질도 튼튼하게 만들어야 한다.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다시는 일본이 한국을 얕잡아 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장기전에도 대비해야 한다. 이번에 확인된 일본의 의도에 비추어 보면 확전의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먼저 참의원 선거용이 아니었음은 이미 확인되었다.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이라는 분석이 대세지만 그 역시 충분한 설명은 되지 못한다. 그것을 넘는 보다 큰 노림이 있다고 봐야 한다.

아베가 그리는 첫째 목표는 평화헌법을 개정하는 것이다. 일본을 전쟁가능 국가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아베는 2007년부터 평화헌법 개정을 주장해 왔다. 참의원 선거가 끝난 날에도 평화헌법 개정을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의회와 국민 여론을 돌려놓는 것이 숙제다. 동아시아에서의 긴장과 갈등이 필요하다. 그동안에는 북한과 북핵이 동아시아 긴장 조성자의 역할을 해 주었지만 앞으로는 안 그럴 수도 있다. 일본이 한반도 평화 기류를 반기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새로운 긴장과 갈등이 필요했던 아베에게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은 긴장 조성용으로 좋은 소재였을 뿐이다.

아베의 또다른 큰 목표는 일본을 태평양전쟁 전의 동아시아 패권국으로 세워 과거 군국주의 시절의 영광을 되찾는 것이다. 여기서도 한국은 가장 성가신 눈엣가시다. 성노예와 강제징용 등, 과거 군국주의 시절 일본이 저지른 만행들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한국은 경제 규모와 실력에서도 일본의 아시아 경제패권을 위협하는 수준으로까지 올라섰다. 최근의 남북한 평화가 한반도 통일로까지 이어지면 더 골치 아프다. 아베가 그리고 있는 동아시아 패권국가의 꿈은 영원히 불가능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잖아도 일본은 장기간의 경제침체와 고령화 등으로 위기의식이 팽배해 있다. 안에서도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지만 밖에서도 한국과 한반도의 상승 기운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다.

그것이 아베의 궁극적인 목표고 현 사태의 본질이라면 일본의 막무가내 시비와 한국 때리기는 계속될 것으로 봐야 한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태클도 노골화될 것이다. 일본 국민의 혐한 정서 부추기기 역시 더 심해질 것이다. 확전과 장기전에도 대비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아베와 일본 극우세력이 그리워하는 과거 군국주의 시절은 우리에게 잊을 수 없는 비극이었다. 일본은 자국민에게까지 원자폭탄의 참상을 겪게 하고서야 항복했다. 마침 오늘은 74년 전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날이다. A급 전범들을 추앙하고 있는 아베와 일본 극우세력은 아직도 그 비극의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역사를 지우고 왜곡하는 일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아시아 패권국가로 다시 서기 위해 집요하게 일을 꾸미고 있다.

또다시 일본의 속국으로 살 수는 없다. 고통이 따르겠지만 반드시 이겨내야 한다. 쉽게 생각해서도 안되지만 일제 식민사관과 패배의식에 빠져서는 더더욱 안된다. 감정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자신감을 갖되 장기전을 각오하고 냉정하면서도 치밀하게 대응해야 한다.

먼저 정부는 촘촘하게 정책을 만들고 밤낮없이 국제무대를 뛰어야 한다. 여와 야도 당리당략을 버리고 국력을 결집하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엔지니어와 노동자, 연구개발자와 소비자 등 국민 모두도 의지를 모으고 실력을 발휘해야 한다. 극일(克日). 2019년 8월이 한국민 모두에게 준 역사적 사명이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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