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칠곡 석전상온전통주가

1969년 영국와인주류연합회와 호텔레스토랑연합회가 와인전문가 양성을 위해서 MS(마스터 소믈리에)제도를 도입했다. 매년 시험을 통하여 선발한다. 지난 50년 동안 257명만이 MS의 배지를 달았을 뿐이다.

▲ 칠곡 애련재
▲ 칠곡 애련재
한국인으로는 2016년에 뉴욕의 미쉐린2스타 레스토랑인 ‘더모던’의 소믈리에 김경문씨가 선정된 것이 유일하다.

▲ 칠곡 애련재
▲ 칠곡 애련재
한국인 최초의 MS인 김씨가 최근 한국의 전통주을 찾아 귀국했다. “한식과 가장 잘 어울리는 한국 술은 무엇이냐?”는 고객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한 것이 계기가 되어, 한국의 전통주을 찾아내고 알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 칠곡 애련재
▲ 칠곡 애련재
전통주란 그 땅에서 자란 곡물과 누룩, 물만을 이용해 만드는 술이다. 가문과 지역마다 특유의 맛과 향을 가진 다양한 전통주가 있었다. 근래에는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는 소주나 맥주 등에 밀려나 일반인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 칠곡 애련재
▲ 칠곡 애련재
이러한 어려움을 견디고 9대에 걸쳐 300년 간 가문의 전통비법을 지키면서 전통주를 만드는 강소농이 있다. 칠곡군 왜관읍에서 찹쌀과 멥쌀, 우리밀로 만든 누룩과 백련꽃을 이용해 전통주를 만드는 ‘석전상온전통주가’의 곽우선(72·전통식품명인) 대표와 남편 이기진(76)씨가 그 주인공이다.

▲ 칠곡 애련재
▲ 칠곡 애련재
상호인 석전상온전통주가(石田尙醞傳統酒家)의 석전(石田)은 마을 이름이다. 상온(尙醞)은 조선시대 궁중에서 술과 간장 등을 제조하던 기관의 이름이다. 최고의 술을 만들고 전통을 이어간다는 생각에서 지은 이름이다.

▲ 칠곡 애련재
▲ 칠곡 애련재
◆9대를 이어 온 300년 전통의 가양주

석전상온전통주가에서 만드는 ‘설련’과 ‘홍로’는 9대에 걸쳐 300년 간 전통을 이어온 전통주다.

▲ 칠곡 애련재
▲ 칠곡 애련재
칠곡의 명문가인 광주이씨 문중에서 접빈(손님을 접대함)과 제사를 모시기 위해 만들고 있는 가양주(집에서 빚은 술)이다. 청와대와 여수세계박람회 만찬주로도 선정되었다.

곽우선 명인이 술을 처음 빚은 사연은 남다르다.

▲ 칠곡 애련재
▲ 칠곡 애련재
이조판서를 지낸 ‘문익공 이원정’대감이 숙종 5년(1680년) 당파싸움으로 혼탁해진 나라를 보고 자손들에게 ‘백련처럼 진흙에서 나고 자라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은 물에 씻기어도 요염하지 않게 세상을 살아라’고 하는 ‘애련설’을 전파하고 마음에 새길 것을 당부했다.

그 후 문익공의 뜻을 기려 문중에서 연못의 백련꽃 으로 전통가양주를 만들어 접빈과 제사, 혼사에 사용했다.

‘설련’은 문익공의 손부인 ‘풍양 조씨’ 때부터 시작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제 강점기 가정에서 술 제조를 금지하자, 집 뒤편 대나무 숲에 술독을 묻어놓고 숨어서 술을 빚었다. 가문의 전통주 제조비법의 명맥을 이어가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지금은 9대째로 전통식품 명인으로 지정된 곽우선 대표가 맥을 이어가고 있다. 곽 명인은 1970년 광주이씨 문중으로 시집을 온 후, 시어머니로부터 설련의 제조비법을 전수 받았다.

결혼 전에는 친정인 현풍에서 친정어머니가 현풍곽씨 문중의 가양주를 만드는 것을 어릴 때부터 보고 거들면서 자랐기 때문에 가정에서 술 만드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당연한 일로 알고 만들었다. 지금은 곽 명인의 장녀가 전통을 이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정통식품 명인

곽명인은 2016년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전통식품 명인 74호로 지정됐다. 문중의 가양주인 설련주의 제조기술과 전승계보, 현재의 활동상황 등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전통식품명인은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이 전통식품의 계승·발전과 가공기능인의 명예를 위해 지정하여 보호·육성하는 제도로 2018년 현재 전국에 80명이 지정되어 있다. 대구.경북지역에는 안동소주의 박재서 명인(5호)을 시작으로 8명이 있다.

설련주의 9대 전승자인 곽명인은 일 년에 단 두 번만 수작업으로 전통주를 만든다. 대량생산보다는 모든 작업을 수작업으로 하는 소량생산이다.

수작업을 고집하는 것은 손맛이 배어 있는 명주를 만들겠다는 생각에서다. 또한 일 년에 두 번만 술을 담그는 것은 제조공정이 길어 더 많이 만들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한번 만드는데 소요되는 기간이 100일이나 걸려 여러 번 만들 수도 없다.

다른 술과 차이점은 삼양주(三釀酒, 3차 담금에 의한 곡주의 제조방법)라는 것이다.

처음 만드는 밑술은 고두밥이 아니라 쌀가루를 끓는 물로 반죽을 해 범벅을 만들고 여기에 누룩을 섞어 3일간 독에서 누룩균을 배양한다.

그 다음에는 누룩균을 배양한 밑술에 진(무른)고두밥을 섞고 다시 3일간 숙성을 시킨다. 여기에 다시 고슬고슬한 고두밥을 섞어서 100일간 저온 숙성을 시킨다.

이과정이 2차 덧술이다. 이때 연꽃과 연자육, 연근을 넣어 연향이 배이도록 한다. 70일 정도 숙성시키면 맑은 술이 위에 고인다. 이것을 100일까지 저온에서 분히 숙성시키면 백련의 은은한 향이 배어 있는 설련주가 완성된다.

이 설련주를 소주고리에 넣고 증류를 시킨 술이 알콜함량 45%의 홍련주다. 증류과정에 한약재인 지치(자초)를 통과시키면 붉은색으로 변한다.

진도지역의 전통주인 ‘홍주’를 만드는 방법이 같다. 제조공정이 복잡하고 기간이 길기 때문에 전통의 맥을 잇는다는 사명감이 없이는 만들기 어렵다. 이런 노력 덕분에 2014년 경북도 우리술 품평회에서 약주·청주 부문 명주로 선정됐다.

◆전통의 맥을 잇는다.

현재 설련주를 만드는 곽우선 명인은 9대 전수자다. 9대조 할머니인 풍양조씨로부터 며느리에서 그 며느리로 300년 동안 제조비법이 전해져 내려왔다.

10대를 이어갈 전수자는 며느리가 아닌 장녀인 이선규씨다. 이씨는 경북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다시 대구대학교에서 재활과학을 공부한 재원으로 전통식품명인 전수자 교육을 받고 있다.

전통식품명인 전수자는 식생활의 서구화와 명인의 고령화 등으로 전승 단절 우려가 커지고 있어 우수한 전통식품의 명맥을 이어가도록 하기 위하여 전수자를 지명하고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시책이다.

◆전통주 비법 전수

곽 명인의 꿈은 두 가지다. 가문에서 300년 동안 이어져 오는 설련주의 전통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이 첫 번째 꿈이다. 300년을 넘어 천 년을 이어가는 것이다.

이제 그 꿈은 착착 진행되고 있다. 자녀 셋 중에서 장녀가 전통식품명인 전수자 교육을 받고 있다.

또 다른 꿈은 전통주의 대중화다. 이를 위해 제조비법을 공개하고 농업계학교 학생들에게 전통주 교육을 계획하고 있다.

현재 대구농업마이스터고등학교와 전주생명과학고등학교 측과 일주일 과정의 전통주제조과정 강좌를 개설하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

각종 축제장을 비롯한 행사장에서 무료시음행사를 하고, 전통주 제조 교육을 하는 것 역시 전통주의 대중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거두면 선조들의 삶의 애환과 풍류가 배어 있는 우리의 전통주가 MS들이 인정하는 세계 속의 명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

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



이홍섭 기자 hslee@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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