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 / 윤제림

발행일 2019-07-23 15:28:17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손목/ 윤제림

나 어릴 때 학교에서 장갑 한 짝을 잃고/ 울면서 집에 온 적이 있었지/ 부지깽이로 죽도록 맞고 엄마한테 쫓겨났지/ 제 물건 하나 간수 못하는 놈은/ 밥 먹일 필요도 없다고/ 엄마는 문을 닫았지/ 장갑 찾기 전엔 집에 들어오지도 말라며// 그런데 저를 어쩌나/ 스리랑카에서 왔다는 저 늙은 소년은/ 손목 한 짝을 흘렸네/ 몇 살이나 먹었을까 겁에 질린 눈은/ 아직도 여덟 살처럼 깊고 맑은데/ 장갑도 아니고 손목을 잃었네/ 한하운처럼 손가락 한 마디도 아니고/ 발가락 하나도 아니고/ 손목을 잃었네// 어찌할거나 어찌 집에 갈거나/ 제 손목도 간수 못한 자식이/ (중략)/ 손목 찾아오라고 찾기 전엔/ 돌아올 생각도 하지 말라고/ (하략)

- 시집『그는 걸어서 온다』(문학동네, 2008)

.

1984년 발간된 박노해 시집 ‘노동의 새벽’에는 ‘손무덤’이란 시가 있다. 프레스 기계에 손목이 잘린 노동자를 병원으로 이송하는 급박한 상황에서 노동자라는 이유로 멸시당하고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는 현실을 거칠고 직설적인 언어로 고발하였다. 잘린 손을 공장 담벼락 밑에 묻는데, 울분과 분노로 가득하다. 내년이면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지만 40년 전만 해도 노동자의 인권은 유린당하고 착취당했으며 사회로부터 억압당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지금은 노동이 사회 변혁의 주체로 당당히 설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따라서 노동자의 사정도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둘레엔 슬픈 그늘과 사연들이 넘친다. 오랜 시간의 풍화를 겪었음에도 ‘손무덤’이 옛이야기로만 들리지 않는 곳이 있다. 인권 침해와 불평등이 사라지지 않은 외국인 노동자 현장도 그 가운데 하나다. 온갖 위험하고 궂은일을 도맡아하는 그들이지만 임금체불은 내국인의 두 배가 넘고 일을 하다 팔을 하나 잃어도 합당한 보상을 받기 힘든 게 그들의 현실이다. 지난 주 ‘손무덤’이 영화를 통해 노래로 불리어지는 걸 들었다.

작년에 제작되어 제10회 DMZ국제다큐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된 지혜원 감독의 ‘안녕, 미누’에서다. ‘미누’는 1992년 20살에 입국하여 17년을 한국에서 살다가 불법체류자라는 신분 때문에 2009년 강제 추방된 네팔 인이다. ‘손무덤’은 한국에서 이주노동자 밴드의 보컬로 활동할 때 만든 노래다. 그가 식당에서 일할 때 ‘식당 이모’에게서 배운 ‘목포의 눈물’은 한국인보다 더 구성지게 잘 부른다. 미누는 고국인 네팔로 돌아가서도 청춘을 다 보낸 한국을 잊지 못한다. 한국에 들어가는 일은 좌절되지만 옛 동료들과 함께 네팔에서 공연을 갖는다.

2004년 고용허가제가 실시된 이후, 한국은 현재 이주노동자 60만 명의 시대를 맞았다. 네팔에서만 한해 6천여 명이 일자리를 찾아 한국 땅을 밟는다. 영화는 한국에 있는 많은 이주노동자들의 애환과 그들에 대한 편견이 없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2006년 독일월드컵 때 ‘친구를 만들 시간’ ‘인종차별 반대’라는 FIFA의 슬로건이 생각난다. 당시엔 우리와는 별 상관이 없는 문제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지금 세계는 ‘자국민 우선주의’, 반이민자 정책’, ‘난민 혐오’의 광풍에 휩싸여있다. 과연 우리는 모든 ‘생명’들과 차별없이 ‘소통’하며 ‘평화’를 꿈꾸고 있는가. 영화 ‘안녕, 미누’가 제작 발표되고 얼마 뒤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미누가 소망한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저작권자ⓒ 대구·경북 대표지역언론 대구일보 .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Tags 순진 손목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