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과 보상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한 법학교수가 ‘한일협정 청구권에 포함된 것은 적법행위에 대한 보상이고,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은 남아있다”고 강제징용 배상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독창적으로 평석(評釋)했다. 법이라면 괜히 쪼그라드는 문외한인지라 이에 대해 감히 왈가왈부 토를 달기가 망설여진다.

적법한 침해에 대해 물어주는 것을 손실보상(보상)이라 하고, 위법한 침해에 대해 물어주는 것을 손해배상(배상)이라 한다. 여기까지 보면 위 평석은 꽤 참신해 보인다. 하지만 기초적인 사항을 놓친 것 같다. 적용법원과 효력범위에 대해 고민하지 않은 모양이다.

강제징용을 일본기업과 피징용자 간의 관계로 보면 그 배상은 민법관계이지만 일본이라는 국가권력이 개입된 정황으로 보면 행정법관계다. 어느 나라 법을 적용해야할지 문제다. 대한민국이 존재하지 않았던 일제식민지 시대의 일이고 보면 상황은 복잡해진다. 그 당시 한반도에 일본법이 적용되었으므로 일본법이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재판시점 관할법원을 기준으로 적용법원을 판단할 수도 있다. 그 법이 상대방에게 미칠 지는 별개다.

설사 한일합병이 원천무효라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대한 논란은 있을 수 있다. 한일합병이 원천무효라면 국권이 일단 대한제국에 회귀된다. 국권이 어떻게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합법적으로 승계되는 것인지는 그 다음이다. 계통이 다른 민주국가가 승계절차도 없이 어떤 제국의 적통을 고스란히 이어받았다하기엔 미심쩍은 면이 있다. 하다못해 제국에 대한 혁명이나 쿠데타라도 있었다면 단순명쾌할 텐데.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북한의 정체성과 법통도 문제다. 대한제국 이씨왕조의 종손에게 나라를 통째로 넘겨줘야 한다는 논리도 불가능하진 않다. 각설하고.

행정법의 효력범위는 영토 안으로 제한된다. 이는 민법이나 형법에서도 같다. 법의 효력이 상대국 영토나 국민에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강제징용 배상은 일제식민지 시절 일이라 적용법원과 범위가 불분명하다. 한일합병 자체를 무효로 보는 입장에선 더욱 모호하다. 적법성과 위법성을 따질 계제가 아니다. 적법성이나 위법성을 따져 보상과 배상으로 현 상황의 돌파구를 찾으려 한 발상은 그 토대가 약하다. 법학자의 주장치고는 어설프다.

강제징용 배상을 법으로 일도양단 해결하긴 무리다. 조약으로 해결하는 것이 정도다. 이 경우 적용법원이나 효력범위 문제도 해결된다. 그 결과물인 한일협정이 옳은 방향이었다. 국가 간 핫이슈가 끝까지 합의되지 않는다면 전쟁으로 가는 일이 흔하다. 전쟁에서 패한 국가는 천문학적인 전쟁배상금까지 덤터기쓴다. 이게 또 불만이라면 다시 싸워 승리할 일이다. 이에 대한 생생한 교훈이 제1,2차 세계대전을 위시한 인류의 전쟁사다.

한일협정은 전후 한일관계를 정리하기 위한 조약이다. 이를 뒤엎으면 다시 충돌할 수밖에 없다. 힘센 나라가 중립적인 입장에서 중재해준다면 충돌을 피할 순 있다. 그런 경우 중재자가 어떤 형태로든 커미션을 요구하게 마련이다. 예컨대, 인도·태평양 전략 참여, 화웨이 제재 동참, 호르무즈 파병 등이 도마에 오를 수 있다. 이 부담도 적지 않다. 약한 나라의 운명이다. 국제관계에서 유리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힘의 우위가 전제된다. 불리한 조약을 강요당하지 않으려면 주먹이 굵어야 한다. 굳이 주먹을 쓰지 않더라도. 당하고 나서 비명을 질러봐야 입만 아프다. 약한 나라는 국제질서와 조약을 잘 지켜 침략의 빌미를 제공하지 말아야 한다. 봉변당하고 뺏기기 싫으면 눈치 잘 보고 강한 나라와 손잡고 있을 필요가 있다. 그게 싫으면 힘을 기르든가. 원교근공도 살아남는 한 방법이다.

일본은 N개 국가 중 하나다. 자국우선주의에 충실하고 얄미울 정도로 영리한 이웃이다. 현재 대부분의 국민들은 해방 후 세대라 일본을 증오할 직접적 이유가 없다. 비교적 중립적이다. 국민에게 선조의 묵은 감정을 강요한다면 역사는 퇴행한다. 고난의 과거사를 이고서 밝은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 일본의 경제제재에 국민이 흥분하여 뛰쳐나오더라도 국가는 감정적 항일을 자제시키고 냉정히 매듭을 풀어야 한다. 제압할 힘이 있어 전쟁을 하지 않을 거면 상대의 본심을 잘 파악하여 어렵겠지만 협상해야 한다. 국민은 감정을 갖는 인간이지만 국가는 감정이 없는 조직체다. 지금 상황은 거꾸로다.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애국과 친일로 편을 갈라 정쟁에 이용하는 것은 나라를 망국으로 이끄는 길이다. 엘리트 법학교수의 언행이 실망스럽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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