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미보를 가르키고 있는 진의환 농촌지도자회장. 그는 “이제 와서 보 문을 열겠다는 건 농민들 더러 농사를 짓지 말라는 말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한다.
▲ 구미보를 가르키고 있는 진의환 농촌지도자회장. 그는 “이제 와서 보 문을 열겠다는 건 농민들 더러 농사를 짓지 말라는 말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한다.


“낙동강 보가 만들어진 뒤 재배 작물과 농사법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제 와서 보 문을 열겠다는 건 우리 농민들에게 농사를 짓지 말라는 말과 다를 바 없습니다.” (진의환 농촌지도자회장)



낙동강 보를 둘러싼 갈등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보의 존치와 해체 뿐 아니라, 수문 개방 여부도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환경단체 등이 낙동강의 수질 개선과 환경 복원을 이유로 보의 해체와 완전 개방을 주장하는 반면, 낙동강에 생계를 의존하고 있는 농민들은 보의 존치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환경단체인 낙동강 네트워크는 지난 11일 경북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낙동강 보 수문 개방과 양수시설 개선을 위한 특별교부세 수용을 촉구했다.



8일 뒤인 19일에는 농민단체들이 칠곡보 생태공원에서는 4대강 보 해체 저지 범국민연합 소속 칠곡보 대책위원회가 보 해체 저지를 위한 규탄대회를 열었다.



보를 해체하면 낙동강 주변의 농민들은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다.



조상 대대로 지어 온 농토를 버리고 떠나야 할지 모른다.



◆보 열었더니 지하수가 ‘뚝’

올해 대구·경북권 낙동강 수계 6개 보 가운데 가장 먼저 수문을 연 곳은 구미보였다.



구미보는 길이 374.3m, 높이 11m의 저수시설이다. 저수용량은 5천270만t, 유역면적은 9천557㎢에 달한다.



환경부는 지난해 중순 구미보를 개방하려다가 구미시와 농민들의 반대로 개방 시기를 늦춰 올해 1월24일 수문을 열었다.



관리수위 32.5ELm(해발수위)를 양수제약 수위인 25.5ELm까지 낮춘 뒤 한 달여 동안 낙동강 수질과 지하수 수위 변화 등을 지켜보기로 했다. 한달여 뒤인 2월22일에는 상주보와 낙단보 문도 열렸다.



▲ 구미보는 길이 374.3m, 높이 11m의 저수시설이다. 저수용량은 5천270만t, 유역면적은 9천557㎢에 달한다.
▲ 구미보는 길이 374.3m, 높이 11m의 저수시설이다. 저수용량은 5천270만t, 유역면적은 9천557㎢에 달한다.


보의 개방은 낙동강 유역 농민들에게 재앙이 됐다.



강 수위가 낮아지면서 가장 먼저 지하수가 말랐다. 부랴부랴 80~100m 깊이의 관정을 새로 팠지만 이번에는 먼저 설치한 50m 안팎의 기존 관정에서 흙탕물이 섞여 나왔다.



직격탄을 맞은 곳은 지하수를 이용해 과일과 야채 등을 재배하던 농가들이었다. 물을 제때 공급하지 못해 농작물 생육이 나빠지는 등 피해가 속출했다.



▲ 칠곡보 전경. 지난 1~2월 구미보와 상주보, 낙단보가 열렸지만 칠곡보는 대규모 취수장이 자리잡고 있어 개방이 일단 보류됐다.
▲ 칠곡보 전경. 지난 1~2월 구미보와 상주보, 낙단보가 열렸지만 칠곡보는 대규모 취수장이 자리잡고 있어 개방이 일단 보류됐다.


수문은 닫혔지만, 보 개방과 관련해 농민들의 피해배상 요구가 이어졌다.



지난 4월2일 구미보 개방으로 피해를 보았다고 주장하는 농민 6명이 환경부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에 5억7천만 원의 피해배상 청구를 했다. 또 같은 날, 낙단보 개방으로 인해 피해를 봤다는 농민 6명도 4억2천700만 원의 피해배상을 요구했다.



구미보 인근에서 농사를 짓는 한 농민은 “보를 개방한 뒤 지하수가 마르자 또 다른 관정을 파는 악순환이 반복됐다”면서 “현재 구미보에서 낙단보에 이르는 좌우 2㎞ 구간에 개발된 관정만 329개”라고 정부의 무책임한 대처를 꼬집었다.



◆보 해체는 천문학적 돈 낭비, 보 개방은 귀중한 물 낭비

구미보 개방을 앞둔 지난해 12월, 농민단체들은 “보 건설 이후 강 바닥은 낮아졌고 주변 농경지는 준설로 나온 흙을 쌓으면서 높아졌다”면서 “지금 상태에서 수문을 다시 개방하게 되면 애써 파놓은 관정 태반이 무용지물이 된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이런 우려에도 환경부는 보 개방을 강행했다.



수문을 열기 전, 민관협의체 회의, 농업용 지하수 전수조사 결과 설명회, 구미보 상류 이장단 간담회 등이 잇달아 열렸지만, 정작 농민들의 목소리에는 귀 기울이지 않았다.



▲ 지난 19일 칠곡보 생태공원 일원에서 농민단체 회원 등 1천여 명이 참가한 ‘칠곡보 해체저지 강력투쟁 13만 칠곡군민 총궐기대회’가 열렸다. 행사장 곳곳에 ‘보 해체 돈 낭비, 보 개방 물 낭비’, ‘칠곡보 해체 전면 재검토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현수막과 피켓이 등장했다.
▲ 지난 19일 칠곡보 생태공원 일원에서 농민단체 회원 등 1천여 명이 참가한 ‘칠곡보 해체저지 강력투쟁 13만 칠곡군민 총궐기대회’가 열렸다. 행사장 곳곳에 ‘보 해체 돈 낭비, 보 개방 물 낭비’, ‘칠곡보 해체 전면 재검토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현수막과 피켓이 등장했다.


결국 농민들도 살길을 찾아 실력 행사에 나섰다. 지난 19일 칠곡보 생태공원 일원에서는 농민단체 회원 등 1천여 명이 참가한 ‘칠곡보 해체저지 강력투쟁 13만 칠곡군민 총궐기대회’가 열렸다. 금강, 영산강에 이어 4대강 보 해체를 반대하는 3번째 대규모 집회였다.



행사장 곳곳에 ‘칠곡보 목숨걸고 사수한다’, ‘보 해체 돈 낭비, 보 개방 물 낭비’, ‘칠곡보 해체 전면 재검토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현수막과 피켓이 등장했다. 농민들은 피를 토하는 심경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장영백 칠곡보 대책위원장은 “칠곡보는 단순한 보가 아닌, 12만 칠곡군민의 삶의 터전이자 생명”이라면서 “정부가 과학적 근거도 없이 자연성 회복이라는 논리로 칠곡보 철거를 결정한다면, 크나 큰 국민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농사를 짓지 않는 지역주민들도 적극 동참했다. 칠곡군 석적읍에 사는 한 주민은 “정부는 농민들의 동의없이 일부 환경단체 주장만 받아들여 보 해체와 수문 개방을 결정해선 절대로 안된다”고 말했다.



◆보 해체와 전면 개방, 신중하게 판단해야



▲ 수문을 연 상주보의 모습. 지난 2월22일 수문을 개방했다.
▲ 수문을 연 상주보의 모습. 지난 2월22일 수문을 개방했다.


본격적인 녹조 발생시기에 접어들면서 낙동강 보를 둘러싼 갈등은 갈수록 깊어지는 모양새다.



최근에는 낙동강 주변 양수장 시설 개선을 위한 특별교부세 수용 여부를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환경단체인 낙동강 네트워크는 지난 11일 경북도청에서 낙동강 보 수문 개방과 양수시설 개선을 위한 특별교부세 수용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예천군과 상주시, 구미시, 성주군, 대구 달성군이 지난 5월 정부가 제안한 취·양수장 개선 사업에 필요한 특별교부세 신청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낙동강 네트워크는 “낙동강 본류 전 구간에 녹조가 발생한 상황에서 상·하류 모든 영남주민들의 안전한 상수원 확보를 위해서는 보 수문 개방이라는 긴급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지난 2월22일 수문을 개방한 낙단보의 모습.
▲ 지난 2월22일 수문을 개방한 낙단보의 모습.


하지만 낙동강 보의 해체와 전면 개방을 환경 회복이라는 논리 하나로 밀어붙이기에는 반대의 목소리가 만만찮다. 농민 뿐 아니라, 지자체 입장에서도 보의 해체와 개방은 그리 달갑지 않다.



낙동강 유역의 지자체들은 늘어난 수량과 강변부지를 활용해 각종 편의시설을 조성하고 관광 컨텐츠를 개발해 왔다.



▲ 낙동강 유역의 지자체들은 보 설치 이후 늘어난 수량과 강변부지를 활용해 각종 편의시설을 조성하고 관광 컨텐츠를 개발해 왔다.
▲ 낙동강 유역의 지자체들은 보 설치 이후 늘어난 수량과 강변부지를 활용해 각종 편의시설을 조성하고 관광 컨텐츠를 개발해 왔다.


보 설치 이후 낙동강변에는 체육공원과 오토캠핑장 등 주민들을 위한 다양한 시설이 들어섰다. 또 낙동강보 주변에서 열리는 여름 야외물놀이장은 여가시설이 부족한 농촌지역에 새로운 활력소가 되고 있다.



▲ 낙동강 유역의 지자체들은 보 설치 이후 늘어난 수량과 강변부지를 활용해 각종 편의시설을 조성하고 관광 컨텐츠를 개발해 왔다.
▲ 낙동강 유역의 지자체들은 보 설치 이후 늘어난 수량과 강변부지를 활용해 각종 편의시설을 조성하고 관광 컨텐츠를 개발해 왔다.


경제적인 이유도 보 해체와 개방에 발목을 잡는다.



낙동강 인근에는 140여 곳의 취수장이 있기 때문에 대책없이 보를 개방하게 되면 식수와 공업용수 부족 사태를 불러올 수 있다.



보를 완전 개방한 뒤에도 식수와 공업용수를 충분히 공급하기 위해선 취수장 16개가 더 필요한 데 필요한 예산만 4천200억 원에 달한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보를 해체하면서 또 다른 공사를 벌여야 할 상황이 된 셈이다.



▲ 구미 여름 야외물놀이장에서 무더위를 날리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 낙동강보 주변에서 열리는 여름 야외물놀이장은 여가시설이 부족한 지역에 새로운 활력소가 되고 있다.
▲ 구미 여름 야외물놀이장에서 무더위를 날리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 낙동강보 주변에서 열리는 여름 야외물놀이장은 여가시설이 부족한 지역에 새로운 활력소가 되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여당 내부에서도 보 해체와 전면 개방에 시간을 두고 판단하자는 신중론이 대두되고 있다.



손정곤 구미보 수문개방반대회장은 “무작정 보를 열어서는 안된다는 말이 아니다. 물이 꼭 필요한 시기를 피하고 수질 개선을 위한 최소한의 개방이라면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면서 “보를 열기 전에 합리적 수자원 활용과 수질오염 최소화를 위해 전반적인 실태조사·분석을 통해 오염 원인과 해결책을 먼저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류성욱 기자 1968plus@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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