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를 보며 배운 한 수

이현숙

재미수필가

말이 힘차게 달렸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말을 사진에 담으려는데 총알처럼 지나갔다. 100m 기록이 약 5초이고, 시속 60∼70㎞ 정도라더니 실감 났다.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아케디아에 위치한 산타애니타 파크 경마장은 산으로 둘러싸여 아늑하다. 최근 2달 사이 경주마 20마리가 이유 없이 숨졌기에 일시적으로 폐쇄했다가 열어서인지 많은 사람으로 북적였다. 조카는 경마 정보지를 검토하며 우승마를 예상했다. 또 보조 경기장에 가서 경주마와 기수가 자신을 뽑아달라며 몸매를 자랑하는 모습을 살폈다. 걸음걸이가 힘이 있는지, 몸의 균형과 털의 윤기를 살펴야 한다고 했다. 경기 전에 출전마들이 관람객들에게 선을 보이는 절차는 우승 예상마 판단에 도움이 된다. 마권을 발급받는 기계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고, 경마 준비를 알리는 안내방송에 따라 관람석으로 우르르 몰려 들어갔다. 출발 신호가 떨어지고 1~2분 이내에 승부가 갈리는 스피드의 세계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자신이 예상한 우승마가 1등으로 들어오기를 응원하는 소리가 요란하다. 단단한 근육을 움직이며 박진감 넘치게 달린 말은 순식간에 결승선에 도달했다. 요란한 말발굽 소리를 따라 승리의 환호성과 우승이 빗나가 한탄하는 소리가 엇갈렸다. 다음 경주를 준비하는 동안 사람들은 TV 스크린으로 눈을 돌렸다. 열두 개의 다른 도시에서 생중계로 진행되는 경마에 다시 배팅했다. 나는 말의 이름이 마음에 들어서 혹은 내 생일이 있는 달이라는 이유를 달며 2불이나 5불씩을 걸었다. 번번이 돈을 잃었지만, 우리는 처음부터 기준을 정하고 했기에 큰 부담 없이 즐겼다. 그래도 아쉽기는 했다.

승패에 격하게 반응하던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은 화가 났는지 마권을 꾸겨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이미 휴지가 되어버린 마권이 이리저리 뒹굴며 누군가의 지갑을 텅텅 비게 한 흉물로 전락하여 사람들의 발길에 차였다. 일확천금을 노렸기 때문인가. 저게 다 돈인데. 아니 돈이었는데. 원수진 사람에게 복수하고 싶으면 경마를 가르치라던 말이 떠올랐다. 중독성이 강해 예로부터 패가망신하는 길이라고 했다. 몸을 푹 담그지 말고 적당히 한다면 스트레스를 푸는 오락이 될 터인데 아쉬웠다. 달리는 말에 자신의 인생을 건다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 아닐까.

지난달 미국 최고의 경마대회인 켄터키 더비에서 챔피언이 실격된 사건으로 사람들은 경악했다. 145년 역사상 처음이다. 7번 말(맥시멈 세큐리티)이 열여덟 마리의 경쟁을 따돌리고 결승선에 들어섰다. 20번 말(컨트리 하우스)이 그 뒤를 따랐다. 일등을 한 기수와 조련사는 꿈을 이뤘다며 서로 부둥켜안고 축하의 인사를 나눴다. 그런데 2등을 한 기수가 감독관에게 이견을 제소했다. 진로 방해를 받았다는 것이다. 판정 결과가 나오기까지 20여 분을 기다리는 동안 두 기수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였다. 첫 번째로 들어온 7번 말의 기수는 관람객들이 내지르는 환성에다 비도 오고 땅이 미끄러워 말이 당황해 살짝 진로를 비켜 나간 것일 뿐, 잠시 리듬이 깨졌던 것일 뿐, 문제 될 일이 아니라고 애써 담담하게 말했다. 입술에 계속 침을 바르고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는 것이 불안해 보였다. 반면 차등으로 들어온 기수는 미소를 지으며 동료들과 여유롭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둘의 대조적인 모습이 TV 화면을 반으로 가르며 비교가 되었다.

비디오를 돌려본 감독관들은 다른 말의 진로를 방해했다고 판정을 내렸다. 결국 실격 처리되며 7번 말(맥시멈 세큐리티)은 1등에서 17위로 밀려났다. 우승의 기쁨도 잠시 반칙했다는 불명예로 비난을 받았다. 2위에서 1위가 된 경주마는 우승확률이 65분의 1로 미미했었다. 이 뜻밖의 우승으로 마주는 186만 달러의 상금을 받았고, 단 2달러로 이 말에 우승을 걸었던 사람들은 65배인 132.40달러의 이익을 챙겼단다. 켄터키 역사상 두 번째로 알찬 횡재라고 뉴스 미디어는 신나서 알렸다. 생애 최초 켄터키 더비 우승컵을 들어 올린 말의 조련사는 인터뷰에서 우리가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게 경마라고 했다.

새옹지마. 인생은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다. 켄터키 더비 경마대회를 보며 불확실한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한 수 배웠다. 잠시의 눈속임으로 이득을 취할지 모르지만, 진실이 밝혀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뛰어봐야 안다. 그리고 끝까지 가도 그곳이 끝이 아닐 수 있다. 지금 내 앞에 펼쳐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면 결과는 따라올 것이다. 인생은 한방이 아니다. 미래의 행운은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흙먼지를 날리며 질주하는 경주마는 끊임없는 훈련으로 다져진 몸과 온 힘을 다해 결승점을 향한다. 한눈을 팔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고 달린다. 그거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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