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지난 현충일 추념사를 두고 논란이 들끓는다. 김원봉의 조선의용대 광복군 합류를 독립운동 집결의 계기로 평가하고, 이를 국군창설의 뿌리 나아가 한미동맹의 토대로까지 연결시켰다. 이는 터무니없는 비약이다. 김원봉 서훈을 위한 사전 포석이거나 보수진영에 친일 프레임을 씌우기 위한 ‘독립운동 띄우기’라면 이는 생각이 짧은 하수다. 누울 자릴 보고 발을 뻗으랬다. 타이밍도 전혀 아니다. 상식이 안 통하는 느낌이다.

김원봉은 조선의열단장, 조선의용대장,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부장 등으로 활약하면서 항일무장투쟁을 이끌었다. 그의 현상금은 당시 100만 원으로 김구의 60만 원보다 많았고, 현재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320여억 원에 해당한다. 이는 약 540여억 원의 ‘오사마 빈 라덴’ 이전엔 세계 최고 현상금이었다고 한다. 일제를 가장 괴롭혔던 인물이 김원봉이고, 그래서 가장 제거하고 싶었던 인물도 또한 김원봉이라는 사실을 일제 스스로 공인한 셈이다. 하지만 독립운동 노선에 있어서 그는 주류인 임시정부 요인들과 많은 갈등을 빚었다. 외교적 노력에 치중한 이승만은 말할 것도 없고, 임시정부의 김구와도 사사건건 갈등하였다. 함께 일하기 힘든 독불장군냄새가 난다. 김원봉의 조선의용대도 최창익을 비롯한 주력부대가 북한 연안파의 모체가 된 화북지대로 분열하였다. 이런 상황을 보면 그 당시 광복군의 분열상이 얼마나 극심했는지 충분히 감이 온다. 시대가 바뀐 지금의 객관적 시각으로 보면 그 어느 노선도 독력으로 독립을 쟁취할 실력이 있었다고 보기 힘들다. 미군 참전과 핵 투하가 종전과 광복을 가져다준 결정적 사건이었고 광복군의 역할이 미진한 상태에서 내분은 실망스럽다 못해 부끄럽기 짝이 없다. 어쨌거나 김원봉은 광복에 대한 그 기여도 여부를 떠나 항일무장투쟁을 이끈 빼어난 독립투사였음은 분명하다.

해방 후, 김원봉은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하였다. 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초대내각 국가검열상으로 북한 정권 서열 7위였다. 6·25 전쟁 중에 국가검열상과 노동상을 역임하였고, 1952년 그 공을 인정받아 최고훈장인 노력훈장을 받았다. 1958년 김원봉은 또 다시 노력훈장을 받았다. 이런 전력으로 보아 김원봉은 6·25 전범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기 힘들다. 1958년 숙청당했다. 독립 영웅이 반드시 정치 승자가 되는 건 아니다. 적에게 숙청당했다는 것이 그의 허물을 덮어줄 수 없다.

김원봉은 두드러진 독립투사였지만 6·25 전범이기 때문에 6·25 순국선열을 추모하는 현충일추념사에 거명할 인물은 절대 아니다. 남북으로 갈려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쪽을 선택한 사람에게 남쪽이 독립유공자로 서훈해야 한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남쪽은 독립운동가 중에서 대한민국을 선택한 분을 그 공헌도에 맞추어 서훈하고, 북쪽은 그중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선택한 사람을 그쪽 기준에 따라 서훈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싸움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남쪽의 성과가 북쪽의 핵에 의해 송두리 채 빼앗길 개연성이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양쪽이 한 사람을 모두 서훈해야할 당위성은 없다.

세계는 지금 자국제일주의로 무장한 채 무역전쟁을 벌릴 태세다. 미국과 중국이 패권을 두고 힘겨루기를 하는 가운데 세계 각국은 줄서기를 강요받고 있다. 그야말로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질 지경이다. 이런 위중한 상황에서 리더는 무슨 생각인지 이념싸움을 돋우는 말들을 쏟아낸다. 편을 갈라 싸워보자고 팔을 걷어붙이는 꼴이다. 적전 분열은 필멸이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한일합병 등 국난에 임하여 나타났던 적전 분열 폐습이 나라 없는 암담한 처지에서도 똑같이 되풀이되었음을 봤다. 막강한 적을 눈앞에 두고 벌렸던 헤게모니 다툼 내지 이념 투쟁이 지금 또 다시 우리 앞에 재현될 조짐이다. 서로 편을 갈라 피 터지게 싸우는 작태는 과거의 뼈아픈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까닭이다. 나라가 안팎으로 총체적 위기에 처한 지금 상황에서 과거와 똑같은 과오를 왜 또 다시 저지르고 있는지 정말 모를 일이다. 지금은 정신 바짝 차려도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다.

김원봉은 독립투사로서의 명성을 인정받아 북한에서 장관급까지 역임하고 최고 훈장을 두 차례나 받았다. 그의 독립운동에 대한 대가이자 서훈이다. 김원봉이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했다면 대한민국에서 그 정치적 성공은 장담할 수 없겠지만 독립유공자 최고 서훈만은 확실히 받았을 것이다. 그의 완벽한 평가는 통일 후에나 기대해 볼 일이다. 더 이상 논란은 국력낭비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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