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이렇게까지 해야 됐나”

발행일 2019-06-06 16:11:19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박준우논설위원 겸 특집부장
오래전 미국에 가족 이민을 간 한 아버지가 10대 아들이 자꾸 말썽을 일으키자 회초리를 꺼내 들었다. 그러자 그 아들은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해 위기를 모면했다. 아버지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참았다. 그 후 방학을 맞아 부자가 한국에 왔다. 공항에 도착한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했다. “내가 너를 지금 혼내 주려는데 어디 이번에도 경찰에 신고해 봐라.” 물론 우스개 얘기다. 그런데 머지않아 한국에서도 자식이 부모를 경찰에 신고하는 상황이 실제로 벌어질 것도 같다.

정부가 민법상 친권자 징계권 범위에서 체벌을 제외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현행 민법 915조에는 ‘친권자는 보호 또는 교양을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에 ‘체벌은 부모의 징계권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내용을 넣을 것이란 얘기다. 법무부는 각계 의견을 수렴해 내년 말까지 민법개정안을 만들 계획이다. 세계적으로는 현재 54개국이 자녀체벌을 금지하고 있고, 친부모 징계권을 명문화해 놓은 국가는 한국, 일본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러나 정부의 법 개정 움직임을 바라보는 장년층들은 별로 탐탁잖을 듯하다. 그들에게는 ‘귀한 자식은 매를 주고, 미운 자식은 밥을 주라(명심보감)’는 구절이 여전히 자녀교육의 금과옥조로 여겨지기 때문일 것이다.

국민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할까. 복지부가 2017년 12월 4일~8일 전국 20세 이상 성인 1천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76.8%가 “사랑의 매가 상황에 따라 필요하다”고 답했다. 대다수의 의견이라고 할 순 없겠지만, 다만 자녀 교육에 체벌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가진 국민들이 여전히 적지 않다는 사실만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내 자식의 장래를 위해서인데 그깟 꿀밤, 회초리 한 대 때리는 것이 체벌이고 학대냐”라는 반응이 나올 법도 하다.

이에 반해 법 개정을 추진하는 정부 입장을 수긍하게 하는 또 다른 현실가정도 분명히 존재한다. 아동보호전문기관 등에 따르면 자녀 학대로 신고된 부모 수가 2013년 5천454명에서 2017년 1만7천177명으로 많이 증가했고, 이들 기관에 2017년 2차례 이상 신고된 재학대 사례 2천160건 가운데 2천53건(95%)이 부모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것이다.

많은 부모가 아이를 엄하게 키우는 것과 아이에게 고통과 모욕을 주는 것을 혼동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오죽하면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에서 2011년 아동체벌금지법 제정을 한국정부에 촉구했을까.

물론 엄한 자식 교육의 전통과 근래 벌어지고 있는 자녀 학대 문제는 근본적으로 결이 다르다. 그래서 말인데, 이 두 가지를 한 데 묶어 법에 규정해 놓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 또 만약 구분해서 법 조항을 마련한다면 그 구분 기준은 어떻게 할 것인지 간단치 않아 보인다.

여기에 이번 법 개정의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결국 훈육인가, 학대인가를 가르는 명확하면서도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해야 할 텐데 그게 그리 쉬워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경찰 등 수사기관에서는 구체적 법조문이 아니라 기존 판례를 잣대 삼아 아동학대 사건을 처리해 왔다 한다. 가령, 아이가 멍들거나 다치도록 때리거나, 주먹으로 배를 때리거나 밀어서 넘어뜨리면 학대라는 식이었다.

앞으로 예정대로 민법이 개정되면 친부모도 자녀를 체벌하면 죄가 된다. 그래서 이 법은 부모에게는 아무리 훈육이 목적이라도 스스로 행동을 하기 전에 한 번 생각해봐야 할 이유가 생기게 하고, 또 매를 들어선 안 된다는 심리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란 게 정부에서 내놓은 긍정적 측면이다. 이밖에 체벌 금지를 사회적으로 합의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렇더라도 찜찜함은 가시지 않는다. 부모 자식 사이가 어쩌다 국가에서 법을 만들어 개입해야 할 지경까지 가게 됐는지, 세태가 씁쓸할 따름이다. 일각에서는 아동학대법 등 기존 법으로도 충분한 억제력이 있는데, 굳이 법을 개정해야 하느냐는 지적도 한다. 일을 풀어가는 데 있어 강도를 높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란 얘기일 것이다.

논설위원 겸 특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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