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사냐 싹쓸이냐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아쉬운 마음이 가셔지지 않았다. 그때 욕심을 냈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 것인데. 그랬다면 내가 호기롭게 앞장서서 식당에 들어갔을 테고 기분 좋게 국숫값을 계산하는 치기도 부렸을 것인데 하는 후회다. 마지막 판 국화 껍데기로 청단을 후려쳤다면 공산 광을 젖혀 판을 싹쓸이하고 게임도 끝낼 수 있었다. 그런데 내 딴에는 국화 쌍피를 기다린다는 욕심에서 손에 쥔 공산 쭉지로 공산 열을 때렸다. 청단을 포기하고 상대의 고도리를 막으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하필 공산 광을 젖혀 설사를 해버린 것이다. 생각할수록 아쉬웠다.

바둑에는 수순이라는 게 있어 어쩔 수 없이 두게 되는 정석이 있고 또 상대의 대응에 따라 다음 수를 생각하고 한 수 한 수를 두게 되는 골치 아픈 두뇌게임이지만 고스톱도 때에 따라서는 여간 잔머리를 굴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게임이다. 그런데 세상에 바둑이나 고스톱만 수순이 있는 것은 아니다. 정치판에도 우리네 인생살이에도 수순은 있기 마련인 것을.

정치인으로 변신한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민생투어라면서 전국을 돌며 문재인 정권 심판론을 부르짖어 큰 성과를 거양한 모양새다. 문재인 정권의 경제 파탄과 외교 무대책 안보 불안감을 추궁하며 무능 무책임 무대책 정권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그 주장이 일부분 먹혀 들어간 것인지 여론조사에서 한국당 지지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보수층 결집을 주도했다고 정치평론가들은 침을 튀긴다.

지난 2017년 대선 당시 한국당 지지율은 12%대를 넘지 못했다. 지난해 지방선거 후 일정부분 회복했다고는 하지만 민주당과 두 자릿수 차이를 보였던 한국당이었다. 전당대회를 계기로 일정부분 만회하더니 최근 황 대표의 장외투쟁으로 탄핵정국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안검사 출신에 법무부장관과 국무총리에다 대통령직무대행까지 경험한 황교안 대표이지만 한 번도 선거를 해 본 적이 없다. 대권을 꿈꾸는 그로서는 당장 내년 4월 총선에서 어느 정도 대망의 밑그림을 보여 주어야 한다. 더구나 그는 현역이 아니어서 국회가 열리더라도 의회 내에서의 활약에는 일정부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로서는 지금 야전 경험을 통해 민심과 스킨십을 늘려가며 몸집을 불리고 정책과 전략도 수립할 필요가 절실하다.

여기에다 정권보다 자신의 차기가 더욱 중요한 국회의원들이 국회를 뒤로 하고 장외투쟁에 투신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현재로서는 대체 불가능해 보이는 공천권을 가진 황 대표와 일체감을 보임으로서 내년 총선 공천경쟁에서 기득권을 확보하고 지역 선거운동도 할 겸 장외투쟁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한국당의 보수세 결집에 내부의 불편한 시각도 있다. 아직 분명한 대안 정책도 없이 20세기식 색깔론으로 문재인 정권을 규탄만 한다고 중도보수층이 한국당에 표를 몰아 줄 것이라는 기대는 너무 이르다는 것이다. 보수의 결집만큼 상대적으로 민주당 지지세력의 결집도 커질 것이라는 불안감도 없지 않다. 구심력과 원심력이 작용과 반작용으로 작동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국회를 뒤로 하고 장외투쟁에 몰입한 손익계산서가 궁금한 이유다.

정치적으로 이런 황 대표의 대권 놀음에 올라탄 국회의원 때문에 5월 국회도 빈손이었다. 국회가 문 닫고 있는 동안 국회에 계류된 법안을 빨리 해결해 달라는 국민들의 국회 항의 집회가 잇달고 있다. 강원도 고성 강릉의 산불 피해보상과 대책은 물론, 포항 지진 피해 보상을 위한 추경안 처리도 미뤄져 있다. 과거사 정리법 개정안을 처리해 6·25당시 민간인 희생자 유족들은 국회에서 울분을 터뜨리기도 했다.

수많은 민생 관련 법안들이 산적해 있는데 정작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신분상 안위를 국민 생활이나 국가 이익보다 앞세우는 것으로 국민들에게 비쳐진다면 득보다 손실이 더 클 것이다. 내년 총선거에서 한국당이 과반을 넘어서고 원내 제일당이 될 것인지 아니면 참패할지는 국민이 판단할 것이다.

싹쓸이와 설사는 한 장 차이다. 뒷장을 볼 수 없는 것은 선거에서나 화투판에서나 비슷하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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